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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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29회 작성일 2024-02-25 16:15

***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 / 야고보서 4:13-17

 

야고보서 4:13-17,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 들어가는 말

 

오늘 제목이 도전적이지요?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는가? 여러분은 자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 자기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의 계획, 생각, 판단, 행위 등. 자기가 마음으로 혹은 행동하는 모든 것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이사야 2:22절입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그리고 시편 146:3-4절입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이든지, 다른 사람이든지 도무지 의지할 가치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장사꾼은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를 장담하면서 행동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하고 미련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기 확신’이라고 부릅니다. 자기 확신이란, 본래의 기준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기준을 믿고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13절에서 그 예를 보여줍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이 말이 왜 잘 못 되었습니까? 14절에서 지적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단 몇 초 앞에 일어날 일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일 년 후의 일을 장담하고 있으니 잘 못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자기 확신입니다. 혹시 나는 이렇게 자기의 생각이나 결정을 100% 옳다고 확신하는 어리석음은 없는지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자기 확신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장사꾼은 보부상들입니다. 실크로드 이야기에도 등장하듯이 각 도시의 특산물을 다른 도시에 가서 팔아서 이득을 보는 사람입니다. 이 장사꾼은 자기 생각과 지식, 경험 등을 믿고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말씀의 내용처럼, 그렇게 매일을 계획하고 결정하며 생활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 이 말씀처럼, 여러분은 매일 어떤 일을 계획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아니면, 별다른 생각 없이 경험을 따라 늘 하던 대로 합니까? 사실 매일,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행동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잘못된 확신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찾고 행동해야 할 내용은 올바른 확신과 올바른 행동입니다.

 

※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미국의 예일 대학교에서 TV공개실험을 했습니다. 주제는 ‘사람들의 비교심리연구’였습니다. 첫 번째 실험으로 다섯 명의 젊은 여성들의 심리 테스트입니다. 다섯 여성들이 테이블을 중심으로 둘러앉게 하고 관계자가 실험에 대한 설명을 했습니다. “이 실험은 스타킹 제품의 질과 색상, 신축성, 편의성 등을 비교 평가하는 것이며, 자신의 소감을 솔직하게 기록해 주십시오.” 그리고 번호를 붙인 스타킹이 1번부터 차례로 5번까지 순차적으로 주어졌습니다. 여성들은 다섯 제품을 동시에 모두 비교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다섯 명의 여성들이 각각 제품에 대하여 자신이 느낀 장. 단점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평가 내용은 다섯 제품 모두가 달랐고 다섯 명의 여성이 모두 달랐습니다.

두 번째 실험은 다섯 젊은 남성들에 대한 심리 테스트였습니다. 역시 다섯 남성들이 테이블을 중심으로 둘러앉았고, 실험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다섯 제품의 청바지에 대하여 질과 색상, 신축성, 편의성 등을 비교해서 자신의 소감을 솔직하게 기록해 주십시오.” 그리고 번호가 붙은 청바지가 1번부터 5번까지 순차적으로 주어졌습니다. 참가자들은 다섯 제품을 서로 비교하며 꼼꼼하게 비교했습니다. 발표 시간에 여성들과 같이 다섯 명이 모두 제품에 대한 의견이 달랐고, 다섯 제품에 대한 평가도 모두 달랐습니다.

모든 평가를 들은 후, 실험 관계자가 제품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본 제품은 한 공장에서 동일한 날짜에 동일한 라인에서 생산된 동일한 제품입니다.“ 모두들 ‘이럴 수가!“라는 충격적이고 허탈한 표정들이었습니다. 관계자가 실험에 대한 의도를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의 뇌는 비교분석을 명령하면 서로 다른 점을 가상하여 비교검토하게 됩니다. 그래서 같은 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점을 찾게 되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사람의 마음은 믿을 것이 못 된다.’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감정을 신뢰합니까? 사람들은 강한 척하며, 똑똑한 척하지만, 본문 14절 말씀처럼 우리 인생들은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정체에 관하여 분명하게 앎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분명하게 의뢰할 수 있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4:7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에서 “질그릇”은 사람의 연약한 육체를 나타냅니다. 즉, 우리가 이렇게 연약한 존재가 된 것은, 모든 능력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기를 원한다면, ‘나는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9절에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라고 합니다. 이렇게 ‘모든 능력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게 하려고 우리의 약함을 알게 하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내가 약한 것들을 아는 것이 구체적으로 왜 중요하겠습니까?

그 이유를 본문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 좀 더 쉽게 번역한 공동번역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 보겠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일을 내가 능력이 있어서 이루었다면, 당연히 내가 자랑스럽고 또 자랑하겠지요. 하지만 나는 연약하지만 어떤 일이 잘 이루어졌다면,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자랑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26-29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나타내게 하시려고, 우리의 약함을 알게 하시고, 자신을 믿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해결법은 17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뜻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된다고 하십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뜻을 알면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거나 깨닫거나 확신하는 것과 순종하고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진정한 믿음은 깨닫고 이해한 하나님 말씀을 행동으로 나타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 당시의 잘못된 신앙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로마서 10:2-3절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저 자신도 두렵게 여기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열정으로 행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나타내고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덫에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경고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저나 여러분이나 주님의 이름으로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며 능력 있게 일했다 하더라도,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한 것’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휴일에 모처럼 편히 쉬려던 남편이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이불 빨래를 하게 되었습니다. 빨래를 마치자 안 그래도 좋지 않던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 왔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 남편은 부인에게 허리통증을 호소하며 말했습니다. “허리에 파스 좀 붙여 줘.” 아내 역시 피곤하고 졸려서 “좀 참고 그냥 자.”라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남편은 어두운 방안을 더듬거리며 겨우 서랍에서 파스를 찾아 허리에 붙이고 누웠습니다. 파스를 붙이자 통증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허리에 붙였던 파스를 떼어냈습니다. 그런데 파스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중화요리. 만리장성으로 시켜주세요. 전 지역 5분 총알 배달’

 

남편은 중화요리 스티커를 파스인 줄 알고 편한 잠을 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확신입니다. 이는 마치 위약효과(僞藥效果.placebo effect)와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듯한 착각에 빠져서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인간의 자기 확신은 교만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았으면 작은 것 하나라도 행동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행동하는 순종의 삶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진정한 형통함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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