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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을 위해 남기신 기업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644회 작성일 2024-01-14 17:37

*** 순종을 위해 남기신 기업 / 사사기 2:16-23

 

사사기 2:16-23, “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 하였은즉 21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이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하시니라. 23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지 아니하셨더라.

 

** 들어가는 말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문화가 세계에 확산하면서 국격이 올라가고 온 세계가 열광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이 현상을 확인해보려고 각 선진국의 방송사나 유튜버들이 공개적인 사회 실험을 많이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시민의식에 관하여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물건을 훔쳐 가지 않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외국에서는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다니지도 못하며,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테이블 위에 함부로 물건을 두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페에 지갑이나 노트북을 두고 가져가지 않는지를 지켜보기도 하고, 길거리에 의도적으로 지갑을 흘리고 반응을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무인 가게, 무인 우산 판매대 등.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을 파헤치고는 다들 놀라곤 했습니다. 분명하게 짚고 가야 할 내용은 대한민국을 높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이루시고자 하시는 뜻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정직하고 정이 많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민족임이 사회 실험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 실험을 하나님께서도 하십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사회 실험을 하신다니! 읽었던 본문 말씀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사사기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정착하면서부터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셨습니다. 사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명을 수행하는 통치자였습니다. 사사는 선지자였으며 동시에 제사장이었고 왕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자 아직 점령해야 할 가나안 땅은 많아서 지파들은 서로 협력하면서 땅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파마다 쫓아내지 못한 일부 민족들이 남게 되었습니다. 남겨진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이 강성해지면서 노역하는 사람들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서로 상생(相生)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방 민족과 어울리게 되면서 이스라엘은 이방인들과 통혼(通婚)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 이방인들의 신을 따르는 우상숭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문 앞쪽의 11-15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우상숭배를 택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다른 이방 민족을 일으켜 징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고난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이방 민족을 남기셔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도록 하셨겠습니까? 그 이유를 본문 2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지를 시험(Test)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하신 사회 실험입니다. 만일 하나님만을 섬기고 순종한다면 형통하게 될 것이지만,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미리 경고하신 대로 고통과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 하나님께서 왜 이런 사회 실험을 하시겠습니까?

 

사사기 3:4절입니다.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이 말씀과 본문 22절에서 사용된 ‘시험하다.’라는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 prove로 번역했습니다. 이 단어는 ‘입증하다’ ‘증명하다’ 등의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을 이스라엘이 행동으로 증명하여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하시는 신앙적 사회 실험입니다. 이 실험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주(主)되심을 입증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개인에게도 이같이 실험하십니다. 창세기 22:1-14절에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2절을 봅시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 말씀에서 사용된 “시험하다”라는 단어는 영어 성경(NIV, KJV)에서 “tempt”로 번역했습니다. 이는 test나 prove와는 그 쓰임새가 달라서 ‘좋지 않은 일을 하도록 유혹하다.’ ‘어떤 행위를 유도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일은, 아브라함이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는지를 알고자 유도하신 것입니다. 이는 test보다 더 강력한 입증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러한 시험을 하시는 것입니까?

출애굽기 16:4절입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이 말씀에서도 “시험하다.”라는 단어를 ‘tempt’를 사용했습니다. 로마서 9:33절에서는 이사야 28:16절을 인용하여 말씀합니다. “기록된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에서 사용된 “걸림돌”이라는 단어는 ‘proskomma’라는 단어인데, 나무의 그루터기처럼 ‘넘어질 기회’ ‘배신의 기회’를 의미합니다. 문턱 같은데 발가락이 차이는 것과 같은 걸림돌을 말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2:8절입니다.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이 말씀에는 “부딪치는 돌”이라고 했는데, 앞의 걸림돌과 같은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사용했는데, ‘걸리게 하다.’라는 ‘skandalon’(덫, 함정)이라는 단어를 겹쳐서 사용하므로 뜻을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신구약을 통틀어서 이 모든 시험의 목적이 ‘말씀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마음에서 거부감이 일어나거나 실족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마음을 입증하도록 하시겠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2:11-12절을 봅시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는 목적이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뜻에 합당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디모데후서 2:21절도 봅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하나님의 시험 기준에 합당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선한 일을 위한 준비된 그릇이 됩니다. 많은 성도가 복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고, 목회자들로부터 축복받기를 원하지만, 기도하고 축복받는다고 그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0:12-1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내가 잘 되기를 바라고, 복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오래전 일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어느 목사님이 월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시내 중심가에 있는 교회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운전 기사에게 차비를 내면서도 목사님은 교회 일 생각에 골몰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리에 앉아서야 그 운전사가 거스름돈을 더 준 것을 알았습니다. 동전들을 만지작거리면서 얼핏 떠오른 생각은 ‘하나님께서 내게 돈을 더 주시는구나.’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리에 앉아 있을수록 자꾸만 불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심이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드디어 교회 근처에 이르러 차에서 내리려고 문 앞으로 걸어 나온 목사님은 운전기사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까 기사 양반이 잘못해서 내게 거스름돈을 더 주었더군요.” 이때 운전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잘못 거슬러 드린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어제 목사님 교회에 가서 정직에 관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시험해 보려고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목사님.”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순간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라고 기도한 것들을 주시기에 합당한지를 시험하십니다. 그 시험대를 통과해야만 우리는 그것을 받아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어떤 것을 요구할 때에 아이가 그것을 사용하기에 합당한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2024년이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 인정받도록 영적인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합니다. 유대인 지혜서인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 한 편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길 가던 나그네가 지나는 마차를 만났습니다. 너무나 다리가 아파서 태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부는 기꺼이 태워주었습니다. 나그네가 마부에게 물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여기서 얼마나 먼가요?” 마부가 답했습니다. “이 정도 속도라면 30분 정도 걸리지요.” 나그네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잠시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30분 정도가 지났습니다. “예루살렘에 다 왔나요?” 그러자 마부가 말했습니다. “여기서 1시간 거리입니다.” “아니, 아까는 30분 거리라고 했고, 그새 30분이 지났잖아요?” 마부가 말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이 마차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문 말씀의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유혹이나 시험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달아보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회 실험에서 믿음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본문 20-22절에서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 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이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라고 하십니다. 우리 대복교회는 하나님의 시험에 믿음을 입증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과 은혜를 누리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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