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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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같이하는 사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743회 작성일 2023-11-05 16:58

*** 뜻을 같이하는 사람 / 빌립보서 2:19-25

 

빌립보서 2:19-25, “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3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에게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됩니까?

저는 가끔 인간적으로 볼 때,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옛날 젊은 시절에 친했던 친구들은 신학을 하면서 모두 떨어졌고, 목회의 길에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물론 보통의 친구나 동역자는 많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래서 주님만 바라보고 산다고는 하지만, 때로 인간적인 외로움이 들기도 합니다. 잠언 18:24절에는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생길에는 마음을 나눌 친구가 소중하고, 신앙의 길에는 뜻을 함께하는 영적인 친구가 필요합니다. 전도서 4:12절에서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특히 힘들고 어려울 때, 세상을 홀로 이기기 어려울 때는 뜻을 같이하고,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어야 그나마 쉽게 이겨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나눌 친구는 우연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신학을 할 때 옛 친구들과의 만남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행복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것입니다. 사막이 처음부터 사막은 아닙니다. 아무리 토질이 좋은 옥토라 할지라도 물이 없으면 사막이 됩니다. 옛말에 “일등 답(畓)이 아니라 일등 작인(作人)이라.”고 했습니다. 즉 좋은 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옥토가 박토가 될 수도 있고, 박토가 옥토가 될 수도 있다.’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메마르고 칙칙한 곳이라도 그곳을 밝게 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로 인하여 세상은 분명 달라집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러한 모든 것도 뜻을 함께하는 사람과, 노력이 없으면 힘들어집니다. 그렇다면, 뜻을 같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 본문 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봅시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유럽의 빌립보 지역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참 소망과 기쁨을 전하고 고난까지도 은혜로 받아 능히 이겨내도록 격려합니다. 그래서 1:29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십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초대교회의 신실한 사역자 두 사람에 대하여 대단히 신뢰할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입니다. 디모데는 일찍이 사도 바울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서 또는 목회자로서 충성스러운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에 남아 있도록 하여 사역을 맡기기도 했습니다(딤전 1: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또 한 사람인 에바브로디도는 사도 바울이 “나의 형제”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로 표현합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인데, 교회를 대표하여 바울에게 모은 헌금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두 사람을 특별하게 언급한 것은, 이들이 신실한 신앙인으로서 본이 되고, 사도 바울과 뜻을 같이하는 교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0절입니다.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렇다면, 나는 교회에서 다른 성도들과 뜻을 같이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뜻을 같이하려면, 서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뜻을 같이하려면, 자기 생각이나 경험을 앞세우기보다는 먼저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2:1-4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마음을 같이할 방법을 말씀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신의 사명을 다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이렇게 다른 사람과 마음을 맞추려고 자기를 낮추고 서로를 돌아본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입니까?

 

이철환 작가의 산문집인 ‘연탄길’이라는 책은 2000년도에 첫선을 보인 베스트셀러인데, 내용 중에 결혼식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혼식 날,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아름다운 신부가 입장하는데, 신부가 한쪽 다리를 절면서 들어왔습니다. 다른 쪽보다 짧은 다리를 이끌고 힘겹게 신랑 앞에 거의 다 왔을 무렵 갑자기 신부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하객들과 신부 아버지는 당황해했고 신부는 그 자리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신랑이 달려 나오더니 신부의 손을 잡아 일으켜 팔짱을 꼈습니다. 그리고 신부와 같이 걸어가서는 주례자 앞에 섰습니다. 주례가 시작되고 몇 분 지나자 신랑은 자신의 한쪽 발을 웨딩드레스 밑으로 살며시 들이밀어 신부의 짧은 발을 자기 발등 위에 올려놓고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본 하객들은 두 사람의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친한 친구 중의 한 명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결혼식을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신혼여행을 다녀왔을 때, 그 친구가 그 가정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혼 앨범을 보고 있었습니다. 결혼 앨범에서 메모지 한 장이 떨어졌는데 그 친구는 그 메모지에 적힌 메모를 보고 또 한 번 크게 감동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제가 늘 기쁨으로 당신의 한쪽 다리가 되겠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당신과 내가 진실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내 한쪽 다리를 절개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서로 돌아본다고 함은 자기의 이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형편을 살피며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점점 더 이기적으로 되어 가고, 예수님 말씀처럼 다른 사람에 관한 관심과 사랑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의 본분은 주님께서 명하신 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5-26절입니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래서 서로 돌아보면서 보완하고 격려하며 오실 주님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굳게 잡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0:23-25절입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재림의 소망 안에서 서로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 돌아보면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며 모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 하나님 중심의 삶이 서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성도가 진심으로 서로를 돌아보려면,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예로 디모데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본문 20-22절입니다.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디모데는 많은 사람이 자기의 일에 열중하여 하나님을 등한시할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디모데는 스승인 사도 바울의 마음을 헤아려 뜻을 같이하여 빌립보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사도 바울과 디모데가 뜻을 같이한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이는 환경과 관계없이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진심으로 서로가 뜻을 같이하려면, 공통적인 관심사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세상적인 즐거움이나 인간적인 만족이 관심사가 되면, 결코 서로를 돌아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쓸쓸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10-11절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자기 이익을 버리고 진정으로 서로 돌아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생각합니까?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예수께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입니다. 어느 동네에 자그마한 마트가 있었습니다. 분유 판매대에서 갓난아기를 업고 있는 젊은 엄마가 분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남루해 보이는 엄마는 만 원짜리 한 장을 꼭 쥐고 있었는데, 진열된 분유들은 너무 비싸서 그 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마트 사장이 분유 판매대를 지나다 그 엄마를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뭔가 수상해 보여 아기 엄마를 주시했지만, 아무래도 분유를 사려는 데 돈이 모자라 고민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딱한 사정이라 해도 정찰제로 물건을 파는 마트에서 그냥 상품을 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아기 엄마가 혹시나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고민하던 사장은 분유의 유통기한을 체크 하는 척하다가 슬그머니 분유통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아이고. 이를 어째? 통이 찌그러졌네. 파손된 상품을 그냥 팔수는 없고 반값 스티커라도 붙여서 팔아야겠다.”

찌그러진 분유통에 반값 스티커를 붙인 사장은 휭하게 자리를 떠났고 아기엄마는 얼른 그 분유통을 들고 계산대로 빠르게 걸어갔습니다. 그 아기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마트 사장은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0:33절입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이렇게 비록 내게 손해가 되고, 노력이 따르더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 중심의 삶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 자기 이익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생각하는 성도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을 등불이며,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등불은 어두운 곳에 필요하고, 소금은 맛을 잃은 곳에 필요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려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 생각과 자기 뜻에 몰두하여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디모데는 비록 젊은 나이였지만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며 복음을 전하고 사도 바울을 위한 수고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본문 아래의 30절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디모데의 신앙은 말씀 그대로 연단으로 얻어진 신앙이었습니다. 디모데는 고질적인 위장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딤전 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주님은 지금도 이런 사람을 찾으시며, 이들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될 때,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게 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하십니다. 점점 어려워가는 세상을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뜻을 같이하여 하나님과의 연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돌아보며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의 약속에 이르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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