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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회복해야 할 것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827회 작성일 2023-10-15 16:58

*** 지금 내가 회복해야 할 것 / 갈라디아서 4:1-7

 

갈라디아서 4:1-7,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 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던 때,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던 그대로 완전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 세상이 창조되던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첫 사람이 살던 에덴동산은 말 그대로 기쁨의 동산이었으며, 사람이 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터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는 순간, 완전했던 것에서 하나님께서 떠나심으로 불완전한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없는 삶은 불완전한 삶입니다. 사람들은 그 불완전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욕심을 내고, 싸우고, 빼앗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사람의 행위는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그래서 모든 회복은 ‘잃어버린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잃어버렸습니까? 무엇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까?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내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620년 12월 26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출발한 146명의 청교도들이 117일간의 항해 끝에 미국 플리머스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청교도들은 가장 먼저 교회를 짓고, 다음으로 학교를 지었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첫해 농사를 지어 가을 추수 때에 자신들을 위협하며 괴롭히는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감사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첫 추수감사절이었으며, 미국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남미는 북미보다 좋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북미가 세계 최강이 되는 동안, 남미는 지금도 여전히 질병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그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북미는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개척한 ‘감사의 땅’이다. 그러나 남미는 일확천금을 노린 사람들이 개척한 ‘탐욕의 땅’이다. 북미와 남미가 현격한 생활 수준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남미는 돈과 탐욕으로 채우고 폭력과 가난을 얻었으며, 북미는 신앙과 감사로 채우고 자유와 풍요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발달하는 세상에 살지만, 점점 더 기쁨과 감사는 적어지고, 돈과 탐욕만 늘어갑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은 감동과 감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보아도 무덤덤하고, 매일 주어지는 좋은 환경과 여건과 생명을 누려도 감동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조차 없이 당연한 줄로 여깁니다. 남 유다가 멸망의 길을 갈 때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렇게 고발하셨습니다. 이사야 1:2-3절입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보다 더 거역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원한다면, 내가 잃어버린 신앙의 모습을 찾아 회복해야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의 사역 초기에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편지의 내용이 율법주의를 경계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과 자유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부릅니다. 본문의 내용은 3장에서 계속되는 내용인데 ‘아브라함을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업으로 주어진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본문 3-5절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죄로 말미암아 죽음의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 아래 나게 하시고, 율법 때문에 허덕이는 인생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더욱 친근하게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녀의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본문 7절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즉 예수께서 이 죄악 된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 내 삶에서 잃어버린 신앙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것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지금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입니다. 로마서 5: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란 ‘우리의 영이 하나님을 떠나 죽은 상태로 있을 때’를 말합니다. 우리는 지옥 형벌이 예정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그대로 육신의 생명이 끝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바깥 어두운 곳, 영원한 불 못의 형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 자신을 대신하여 그 형벌을 받아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생명을 얻었습니다. 즉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잊고 있습니다. 옛말에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라고 했는데,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모양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을 정도였고, 사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찾으며 간절하게 부르짖고 은혜를 구했습니다. 자그마한 일에도 감격하고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이렇게 세계가 놀랄 만큼, 짧은 시일에 세계 경제 10위 권에 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교회들은 먹고살 만하여지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8:11-14절입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잘살게 되자 이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예배하는 일도 귀찮게 여기며,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한 여가를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예배하는 사람들도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그저 마지못해 겨우 한 시간을 드리며 생색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잊었기 때문이며,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합니까? 그리고 나의 모든 영과 육신의 삶을 다스리시며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까? 내 신앙의 삶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떠오릅니까?

 

※ 잃어버린 것을 어떻게 회복합니까?

 

시편 50:9-12절을 봅시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그리고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세상의 물질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며 내게 행하신 일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돈 몇 푼, 아니면 조금의 물질이 아닙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 하나를 소개합니다.

팔에 문신을 새긴 젊은 청년이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신을 한 번 안아 달라(Can you give me a hug?).’고 요청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가 않습니다. ‘뭐야?’라는 듯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 단호하게 no! 라며 경계하는 몸짓으로 피해 가는 사람, 무관심한 눈빛으로 지나치는 사람 등. 모두가 고개를 흔들며 거부합니다. 그 청년을 안아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청년이 자리를 옮겨 거리에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노숙인들에게 다가가서 똑같이 ‘자신을 안아 달라.’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아까와는 다른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기꺼이 안아주며, 누워있던 사람은 벌떡 일어나서 안아주고 악수까지 합니다. 어떤 노숙인은 청년을 안아준 후, 너무나 기쁜 표정으로 떠나는 청년을 바라보았습니다.

 

옛 속담에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남의 사정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야 알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외로움과 어려움을 아는 노숙인들이 ‘안아 달라.’고 호소하는 청년을 안아주었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혹시 이러하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1:4-5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경고를 듣고도 회복하지 못하여 사라졌습니다.

 

누가복음 7:36-50절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초대했으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예의인 발을 씻어 주는 것과 입맞춤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죄인인 한 여인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져와서 예수님의 뒤에서 그 발을 눈물로 적시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러자 시몬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은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받은 자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께서 “네 판단이 옳다.”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47절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나를 구원하시고 모든 죄악을 사하여 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입니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시고, 입을 것 먹을 것을 때를 따라 주시며, 생명과 건강 주셔서 살게 하신 것도 당연히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근본적으로 잊지 않아야 할 감격과 감사인 ‘구원의 은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은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게 하시고 상급을 주시는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회복해야만 합니다. 본문 7절에서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받은 구원의 은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감격하며 감사하며 삽니까? 아니면 은혜를 물에 새기듯이 쉽게 잊어버리고 삽니까? 지금 정말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조금 불편하고 아프고 힘들다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골로새서 3:17절에서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격과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표식이며, 예배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수없이 말씀하신 복 되고 형통한 삶을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잃어버린 감격과 감사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진정한 자녀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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