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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고의 기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895회 작성일 2023-09-03 20:34

*** 인생 최고의 기회 / 마태복음 15:21-28

 

마태복음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에게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가 지금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어보나 마나, 당연히 어떻게 해서라도 잡아야겠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회를 기회로 깨닫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깨어 있으라.”라고 하십니다. 주어진 기회를 잡으려면, 생각이 깨어 있어야 하고, 영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당면한 환경과 상황이 기회임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가나안 여인을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생각이 사람을 지배한다.’ 이 말은 미국에서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여 강연했던 ‘데일 카네기’가 쓴 책의 제목입니다. 카네기는 성인들에게 대화법을 강연하던 중, ‘매일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접촉해야 하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훈련도 필요하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카네기 인간관계론’이라는 책도 집필했습니다. 그는 ‘생각이 사람을 지배한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당신이 어떠한 기대만큼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자신감의 결여일 가능성이 많다. …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자신의 장점을 눈여겨보라. 그리고 그것을 성실히 행하면, 비뚤어진 교만이 아닌 진실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카네기의 이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자신의 장점을 성실하게 행하는 것’ 이것을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달란트’ 즉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재능)’입니다. 매일 수많은 일과 사람, 상황과 환경을 접할 때, 여러분은 어떤 것에 마음이 끌립니까? 아마도 평소에 좋아하는 것, 자신이 가장 관심 있는 것, 제일 잘하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장점을 끌어낼 수 있는 열쇠입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어떻게 기회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 본문 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시돈 지방에서 행하셨던 이적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이방인 지역인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실 때였습니다. 어떤 여인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오면서 ‘귀신들린 자기 딸을 고쳐 달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나 시끄럽게 굴었던지 제자들이 예수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말은 ‘너무 시끄러우니 빨리 소원을 들어주어 보내시지요.’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라고 거절의 뜻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 앞에 와서 절하며 도와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자기를 개로 표현하는 모멸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믿음을 꿋꿋하게 드러냅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정말 포기를 모르는 끈질긴 믿음입니다. 여인이 왜 이렇게 했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 딸을 고칠 수 있는 둘도 없는 최고의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9:12-13절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 약속의 말씀 그대로 여인은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주님의 은총을 얻어낸 것입니다.

 

※ 인생의 기회는 깨닫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성경은 신앙의 모범적인 표본을 보여줍니다. ‘기회’라는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성경에는 인생의 최고의 기회를 잡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10:46-52절에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이 바디매오도 본문의 가나안 여인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이들에게서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부분은 가나안 여인이나 바디매오가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믿었다.’라는 사실입니다. 즉 기회는 깨닫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수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밀고 당기며 예수님과 부딪히는 무리였습니다. 마가복음 5:30-31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네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하되” 이 말씀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졌다가 즉시 병이 나은 일’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만지거나 옷에 손을 대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혈루증 여인만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했겠습니까? 일반 사람들과 혈루증 여인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28절에 이유가 나옵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생각함일러라.” 혈루증 여인도 가나안 여인처럼, 예수님이 자기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이심을 깨닫고 믿었던 것입니다.

 

열왕기하 4장에는 엘리사 선지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엘리사가 아셀 지파의 성읍인 ‘수넴’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그 마을의 유지인 어느 부인이 지나가는 엘리사를 간곡하게 권하여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는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그 집에서 식사를 대접받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부인이 남편에게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안다.”라고 하면서 엘리사를 위하여 방을 만들고, 쉴 수 있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덕분에 엘리사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고,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었습니다. 그날도 엘리사가 그 방에 누워있을 때, ‘자신에게 잘 해 주는 그 부인에게 무엇인가를 보답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환인 게하시를 시켜서 부인에게 무슨 소원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아무 소원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엘리사는 무엇인가를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사환인 게하시가 ‘그 집에는 자식이 없다.’라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즉시 부인을 불렀고, “돌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즉 내년에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부인은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라고 응답했습니다. 남편이 늙었다는 표현으로 보아, 출산할 시기가 지나 잉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 과연 부인은 잉태했고, 다음 해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수넴 여인’은 본문의 가나안 여인처럼, 사람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가끔 자신의 집 앞으로 지나가는 엘리사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집으로 초대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아들을 얻었으며,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생의 기회는 자기 삶의 환경과 상황을 깨닫고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하는 사람에게 밝히 드러나게 됩니다.

 

※ 인생의 기회는 간절함과 끈기 있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가나안 여인은 유대인에게 환영받을 수 없는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려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딸의 고통을 바라만 보아야 하는 어머니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이 여인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방 여인인 자신을 만나주실지, 유대인들이 괴롭게 하지는 않을지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고 있기에는 자신이 소망이 너무도 컸고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습니다. 유일한 희망이던 예수께서 자신이 사는 지역을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여인은 수많은 무리를 뚫고서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여인에게는 위신과 체면을 따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르짖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렇게 기다리던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부르짖음에 오히려 서러운 냉대만 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 앞으로 가서 길을 막고 꿇어 엎드렸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노골적으로 그 여인을 거절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정말 좌절감이 몰려오는 상황입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기회였는데,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한 번 더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러분은 이처럼 간절한 마음과 믿음으로 끈질기게 주님께로 향합니까?

 

2008년 Big10 세계 육상선수권대회가 있었습니다. 여자 600M 결승전 경기 때의 일입니다. 결승에 오른 4명의 여자 선수들이 출발선에 대기 중입니다. 출발 신호와 함께 달리던 선수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200M 트랙 두 바퀴를 거의 다 돌 무렵 일등으로 달리던 등번호 170번 선수가 다리가 꼬이면서 넘어졌습니다. 금방 일어서기는 했지만, 이미 다른 세 선수들은 30여 미터나 앞선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구간은 200여 미터뿐인데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넘어졌던 선수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더니, 100여 미터를 남기고 한 사람을 추월하고 이어서 두 번째까지 추월했습니다. 관중들이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등으로 달리던 선수를 간발의 차이로 제치고 일등으로 골인했습니다. 관중들 모두가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동영상을 보면서 우리나라 선수는 아니었지만, 저도 박수를 쳤습니다. 아마 그 선수는 죽을 힘을 다해 달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운동경기에 비유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24절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세상의 중요한 일들은 고난과 역경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더욱 그러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삶이 어두울 때, 낙심과 좌절이 몰려올 때 빛을 발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 25년을 한결같이 하나님을 의지했으며,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13년의 고통과 좌절의 시간을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겨냈고, 모세는 민족의 영도자가 되기 위해 80년을 연단 받았고, 사도 바울은 14년의 세월을 인내하며 연단 받았습니다. 낙심과 좌절이 몰려올 때는 오히려 일어설 기회입니다. 예수께서 가나안 여인을 혹독하게 느껴지도록 냉대하시고 무시하신 것은 분명히 진심이 아니셨습니다. 예레미야 29:1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고 부르짖으라.’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나안 여인에게 보이신 표현도 그러하셨습니다. 본문 27절을 현대어 번역에서는 ‘자녀들이 먹을 떡을 강아지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개’를 ‘강아지’로 번역했는데, 그 이유는 거리를 배회하는 사납고 더러운 개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함께 사는 애완용 강아지를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런 무시하는 듯한 표현을 하신 것은, 이 이방 여인이 당시의 관습을 잘 알고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이방인을 개로, 유대인 자신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언급하는 것이 유대인의 관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방인에 관한 관심이 따뜻하다는 것은 ‘개’를 ‘강아지’로 표현하신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왜 이렇게 하셨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여인의 믿음을 아셨고, 그에게 은총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을 아십니다. 다만, 내가 얼마나 간절하고 끈질기게 구하는지를 보시고자 하십니다.

 

이제부터 소일거리 인생으로 살지 마시고, 내 삶의 이유를 깨달아, 간절하고 끈기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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