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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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능력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071회 작성일 2023-08-13 16:15

*** 세상을 이기는 능력 / 막 4:35-41, 왕하 6:14-17

 

마가복음 4:35-41,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혀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열왕기하 6:14-17,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그들과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 들어가는 말

 

세계 최대의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인 You Tube에서 몰래카메라로 큰 인기를 얻는 ‘코비 퍼신(Coby Persin)’이라는 사람이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온몸을 돈으로 도배한 한 남성이 거리에 서 있습니다. 그 남성은 ‘Take What You Need'(필요한 만큼 가져가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겠습니까? ①양복을 입은 한 신사가 다가오더니 남성의 몸에 붙어 있는 지폐들을 골고루 떼어갑니다. 이어서 ②조깅 하던 한 남성은 믿기지 않는 듯 몇 장을 조심스레 떼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등장한 한눈에 보기에도 ③화려한 차림의 여성은 명품 가방까지 들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성의 몸에 붙은 돈을 정신없이 떼기 시작했습니다. 남성이 물었습니다. “루이비통 백까지 메고 있는 데도 돈이 필요합니까?” 여성은 “난 내일 네일아트를 받아야 해서 돈이 있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반전이 일어납니다. ④남루한 차림의 노숙자가 돈을 붙이고 서 있는 남성을 발견하고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남성의 몸에 붙어 있는 지폐를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달랐습니다. 그의 행동은 단 두 장 즉 2달러만 떼었습니다. 남성이 말했습니다. “필요한 돈이 그게 다입니까? 더 가져가도 됩니다.” 노숙자는 “2달러면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실험을 마치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주 당연하게도 ‘보이는 돈을 가난한 사람이 더 허겁지겁 가져갔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 영상 속의 결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욕심은 가지고 들수록 끝이 없습니다. 내 안을 끝없이 채우기 전에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상에서의 보편적인 생각은 많이 배우고, 권력이 있고, 돈이 많으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소유를 많이 쌓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누가복음 12:13절 이하에서 부자 비유를 곁들여 말씀하십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하시고” 앞의 사회실험처럼, 사람들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의 소유나 욕망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은 세상을 다스리시는 우리 주님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기는 능력에 관하여 살펴봅시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두 본문 말씀의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할 텐데,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의도한 바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본문은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 이적’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이 이적은 신약시대의 교회를 보여줍니다. 주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변화무쌍한 갈릴리 호수를 항해하는 모습은,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상 속에서 사역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는 주님이 계셨지만, 폭풍으로 고난을 겪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머리가 되시는 교회이지만, 사탄의 수하에 있는 세상에서는 사나운 폭풍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요한복음 15:19절입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렇습니다. 비록 주님이 함께 하시지만, 세상에서는 고난의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교회에 불어 닥친 폭풍 중에는 이단(異端)과 세속주의 사상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가장 위력을 떨쳤던 영지주의(Gnosticism)가 있고, 알미니안주의, 교황주의, 합리주의 등 수 많은 이단과 세속주의들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과 동성애, 동성혼, 인권운동 등의 세속주의, 사회주의적인 좌파들의 주님을 대적하는 사상 등.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폭풍처럼 몰아칩니다(WCC, WEA, NCCK). 제자들은 주님이 계셨지만,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교회도 주님이 함께 하시지만, 사탄의 공격에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낙담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환경을 통하여 교회가 기도하게 하십니다.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고, 상황을 아뢰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지금의 교회도 이러해야 합니다. 비록 고난이 있겠지만, 함께하시고 도우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고난은 반드시 주님이 의도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시편 119:71절에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베드로전서 4:1절에서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의 부름에 즉시 응답하셨습니다. 주님의 한 말씀에 풍랑은 고요해졌습니다. 주님은 이 이적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열왕기하 본문은 엘리사 선지자와 그의 사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에서 사역했던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이 시대의 북이스라엘 왕은 9대 여호람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아람 군대가 자주 이스라엘을 침범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아람 군대가 침범하는 곳에는 번번이 이스라엘 군대가 미리 와서 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은 ‘자기들 가운데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라며 고민했습니다. 그러자 신하 중의 한 사람이 ‘내통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선지자인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말하는 것까지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말해주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벤하닷은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을 공격하기로 하고, 밤중에 성읍을 포위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엘리사의 사환이 아람 군대가 온 성읍을 포위한 것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엘리사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 선지자는 너무도 태연하게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두려워하는 사환을 위하여 하나님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사환은 즉시 영의 세계를 보았습니다. 불 말과 불 병거들이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아시겠습니까?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그리스도인은 영의 감각으로 살아야 세상을 이깁니다.

 

교회인 그리스도인은 육신적인 방법, 세상적인 힘으로는 결코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적어도 다섯 명은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수의 사정을 누구보다 훤하게 잘 알았습니다. 육신 적으로 생각하면 그 풍랑쯤은 넉넉히 이겨내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풍랑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도 그렇습니다. 그가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그 자그마한 도단 성은 아람 군대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육신 적으로나, 세상 적인 가치관이나 방법으로는 결코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겪었던 갈릴리의 폭풍이나 엘리사 사환이 본 아람 군대의 포위는 인생의 힘든 고난이며 역경입니다. 이러한 고난이나 역경이 그리스도인에게 허락된 이유가 있습니다. 앞서 본 시편 119:71절에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으며, 고린도후서 1:8후-9절에서는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고난까지 동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 의지하는 길이 영적인 능력이 되며, 세상을 이기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향수는 어떤 원료로 만들겠습니까? 향 기름의 원료인 나드, 쟈스민 꽃 등의 식물이 주원료이지만, 병든 고래의 몸에서 짠 기름을 원료로도 향수를 만듭니다. 병들지 않은 고래의 기름에는 향수 원료가 없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우황청심환’은 병든 소에게서 얻어집니다. 병들지 않은 소의 몸에는 우황이 없습니다. 로키산맥같이 험준하고 깊은 계곡에서 오랜 세월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딘 나무가 공명에 가장 좋은 원료가 되어, 세계 명품 바이올린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도 어려움과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고, 귀하게 쓰임 받게 됩니다.

 

마가복음 본문의 이적과 비슷한 이적인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의 이적을 봅시다. 예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 이후에 기도하기 위하여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 시간에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향했습니다. 어두워진 밤의 호수에 큰 물결이 일었습니다. 제자들이 괴롭게 항해하는 모습을 주님이 아시고, 그들을 돕고자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혼비백산했습니다. ‘유령이다!’ 주님은 자신을 밝히시면서 안심하라고 하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만일, 주님이시면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했고, 베드로도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런데 물 위를 잘 걷던 베드로가 갑자기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베드로가 왜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겠습니까? 믿음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물에 빠졌을 텐데, 왜 잘 가다가 도중에 빠졌습니까? 그 이유는 현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주님을 보고 걸었지만, 갑자기 몰아치는 파도를 보고 두려운 감정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하셨습니다. 현실에 매여 세상의 환경을 보면 염려와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세상 적인 감정은 주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22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었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여러분은 혹시 세상 적인 가치관, 세상 적인 방법으로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세상 적으로는 세상 사람들이 더 지혜롭습니다. 교회는 영의 감각으로 살아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도저히 견디지 못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졸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이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신다고 제자들의 고난을 모르셨겠습니까? 멀리 산 위에서도 제자들의 사정을 훤히 아셨던 분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세상을 영의 감각으로 보기를 원하셔서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느꼈을 것입니다, ‘아 주님을 깨워야겠구나!’라고 말입니다. 의외로, 일이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 닥치고,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성도가 많지 않습니다. 아니면, 어떤 일을 할 때 자신들이 계획하고 다 준비해놓고 뒤늦게 기도합니다. 오늘 이적 속의 제자들과 똑같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지만, 주님께 맡기지 않으면 주님은 여전히 기다리십니다(그림, 계 3;20). 그래서 주님은 “찾으라. 구하라, 문을 두드리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육신의 감각으로만 보았을 때는 두렵고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의 감각으로 살던 선지자 엘리사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사환은 육신의 군대를 보았고, 엘리사는 영의 군대를 보았습니다. 엘리사가 사환이 불쌍해서 하나님께 그의 영의 눈을 열어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영의 감각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 힘든 세상을 주님 심정으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물에 빠져들던 베드로가 주님께 도움을 구했을 때, 주님은 즉시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엘리사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즉시 사환의 영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이 갑작스런 폭풍으로 배가 뒤집힐 위험에 처하여 주님께 도움을 구했을 때, 주님은 즉시 바람과 파도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기도하면, 주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주십니다. 믿음의 기도는 능력이 많습니다. 야고보서 5:15절에서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시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라고 하시며, 16절에서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변화 산에 오르셨을 때, 남아 있던 제자들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께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을 대적하는 악한 영의 세력을 이기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길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길은 기도뿐입니다. 믿음의 기도로 깨어 있어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능력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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