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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의 비밀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959회 작성일 2023-06-11 21:08

*** 거듭남의 비밀 / 요한복음 3:1-8

 

요한복음 3:1-8,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 들어가는 말

 

오늘 설교 제목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예전에 구원파 박옥수가 내세웠던 주제가 ‘거듭남의 비밀’이었습니다. 그들은 거듭남을 완전히 오해했었고, 많은 사람이 그에 현혹되어 이단에 빠졌었습니다. 거듭남(重生, born-again)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문이 되기에 구원의 필수 조건입니다. 건축물은 기초가 튼튼해야 안전한 건축물이 되고, 식물은 뿌리가 튼튼해야 건강하게 자랍니다.

 

중국의 극동지방에서만 자라는 희귀종 “모소대나무”가 있습니다. 그 지방의 농부들은 여기저기 씨앗을 뿌려놓고 매일 같이 정성으로 키웁니다. 씨앗에서 싹이 움트고 4년이 지나도 불과 3CM정도만 자랍니다. 하지만, 5년째 되는 날부터 하루에 무려 30CM가 넘게 자라기 시작하여, 6주 만에 15M 이상 자라서 순식간에 울창한 대나무 숲이 됩니다. 이 대나무는 4년 동안 땅속에 수백M 에 이르는 뿌리를 뻗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나 나라도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려면 기초질서나 국민의 의무, 법을 존중하고 따르는 기본이 지켜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삶이 건강하려면, 신앙의 뿌리인 기본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의 기본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아 거듭나게 되는 것, 구원의 확신과 말씀과 기도 생활로 이루는 성화의 삶 등 이런 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자 신앙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거듭남입니다. 이 시간에는 거듭남에 관한 말씀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과 니고데모라는 유대인 지도자와의 대화 내용입니다. 니고데모는 당대의 최고 권력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는 ‘최근에 예수께 들었던 진리에 대하여 갈증을 느꼈고, 진리에 대하여 확신을 얻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밤에 찾아왔던 이유는, 아직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모두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적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은밀하게 밤에 찾아왔던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생’임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행하셨던 이적과 표적에만 집중되어 있었지, 예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진정한 뜻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이적을 보고 믿는 것이 생명의 길이 아니라 ‘죽은 영이 생명을 회복하는 거듭남만이 진정한 생명의 길’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거듭남’이라는 말을 육체적인 재출생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는 정직하게 예수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영적인 거듭남의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체면도 격식도 다 버리고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주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의 질문에 답하시면서 그리스도인의 뿌리가 되는 신앙의 기본원리를 설명하셨습니다. 그 가운에 가장 유명한 구절인 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옛말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일을 그르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자기 일을 제대로 잘 알지 못하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의 근원을 알지 못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마치 목적지에 이르는 길을 알지 못하면서 아무 길로나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신앙은 무모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죽음의 길로 끌고 갈 수 있어서 대단히 위험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22-24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거듭남(重生, born again)이라고 합니다. 즉, 옛사람을 끊어버린 자리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6: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거듭남은 영원한 소망의 삶으로 가는 길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거듭남이라는 말을 지금까지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기도 하고, 나름대로 거듭났음을 확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떻게 거듭났느냐?”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이걸 노리는 사람들이 구원파들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났다는 사실은 어떤 물리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어떻게 다시 태어납니까?’라고 묻는 니고데모에게 본문 8절에서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거듭난 사실을 물리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거듭남을 세례의 의미로 가르쳤습니다. 로마서 6:1-3, 5-6절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거듭남은 변화가 아니라, 전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며, 죄로 죽었던 영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례는 죄에 물든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 거듭나는 과정과 거듭남의 결과는 어떠합니까?

 

많은 사람이 어떤 일에 관한 기대심을 믿음으로 착각합니다. 기대한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하여 소망하는 마음입니다. 반면에, 믿음은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대심, 즉 소망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는 마음이며, 거듭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로마서 10:17절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를 시험해보고 확신을 가지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3:5절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심을 확신하지 못하면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충격적인 표현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확신하게 하는 것이 거듭남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심은 내가 거듭난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사도행전 2:38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예수께서 나를 구원하셨음을 믿고, 회개하여, 죄 사함의 표징인 세례를 받으면,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게 됩니다. 이것이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거듭난 사람의 삶에 관하여 좀 더 살펴봅시다. 믿는 사람, 즉 거듭나서 성령께서 거하시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마가복음 16:17-18절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하신 약속 안에는 몇 가지의 특별한 표적들이 나옵니다. 첫째, 그들은 ‘귀신을 쫓아낼 것’이며, 둘째, ‘새 방언을 말할 것’입니다. 방언은 복음의 진리를 확증할 수 있는 기적이기도 하지만, 그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했던 민족들 가운데서 복음을 전파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셋째, 그들은 ‘뱀을 집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울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로마로 향하던 중 멜리데 섬에서 독사에게 손을 물렸지만 아무 해도 받지 않았습니다(행 28:3). 넷째, 그들은 박해자들에 의하여 강제로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박해를 당할 때 나타남). 다섯째, 그들이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을 것’입니다. 야고보서에 기록된 것처럼, 교회의 많은 장로가 이런 권세를 가졌습니다(약 5:14). 이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약속된 것입니다.

 

또 하나, 거듭난 사람에게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즉, 자기 생활을 당당하게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사람은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며, 나도 주님 안에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3: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이처럼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합니다. 거짓 앞에서 물러서지 않으며 변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그러했습니다. 어떤 권력과 무력 앞에서도 주님은 진리를 말하는 당당함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확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21:21-2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확신 있는 거듭난 신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뿐만 아니라,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거듭났으며,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나 또한, 주님 안에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이 담대한 삶을 이루게 합니다. 니고데모는 비록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주님께 나아와서 만남으로 확신과 담대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9:39절에서 이 사실을 알게 합니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난 후, 확신과 담대함을 가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야구 감독은 선수들을 스카우트할 때 ‘반드시 우승을 해 본 경험자를 선발한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승리를 해 본 경험을 가진 선수는 정신적 자산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승리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 경험이 없는 선수보다 강인하고 어떠한 위기에도 대처할 능력이 많다.’라는 것입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라고 했듯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맛본 사람이 어떤 위기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34:8절에서는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듭난 사람이며, 하나님을 소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담대 하십시오. 주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세상을 이기신 주님 안에서 담대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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