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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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근심이 있을 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001회 작성일 2023-05-14 15:25

*** 내 마음에 근심이 있을 때 / 누가복음 1:5-13, 18-20

 

누가복음 1:5-13, 18-20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19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20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제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든지, 마음에 염려나 근심이 일어날 때가 많이 있지요? 내 마음에서 근심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는 어떤 이유이든 염려나 근심이 있을 것입니다. 내 마음에 염려나 근심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고, 나에게 능력이 있다면 염려나 근심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래서 예수께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염려는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25-26절입니다.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잠언 17:22절에서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염려나 근심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렇게 쓸모없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병들게 하는 염려와 근심을 왜 하는 것입니까?

 

미국의 유명한 ‘리이튼 포드’목사님이 자신의 경험에 과하여 ‘잊을 수 없는 사건’이라고 하면서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여행 중에 비행기가 중간 연료 보급을 위해 착륙한 서부 아프리카 다카 공항에서 어떤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잠깐의 시간 동안 그 프랑스 출신 선교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선교사는 ‘모슬렘 지역에서 10년 동안 일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포드 목사님의 일행 중 한 사람이 선교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회심자가 있었습니까?” 선교사는 “두 명”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십 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하여 2명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불쑥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곳에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10년 동안 겨우 두 사람밖에 구원하지 못했는데, 왜 그곳에 있느냐?’라는 의아한 물음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선교사는 오히려 매우 놀란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에 왜 있느냐고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이곳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로 제가 이곳에 있습니다.”

리이튼 포드 목사님은 ‘이 일은 자신의 생애 속에 일어난 일 중에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간증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시겠지요? 하나님의 사람이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은 ‘나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만 하면 된다.’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시므로, 나는 맡은 일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능력으로는 그 어떤 결과도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마음에는 내가 하지도 못할 일 때문에 근심으로 가득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에 근심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성경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아나 욥, 다니엘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중에서 구약 시대를 마감하고 신약 시대를 여는 과도기의 인물인 ‘사가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이자 이 시간의 주인공입니다. 사가랴는 아론의 후손으로 제사장이었으며, 역시 아론의 후손인 엘리사벳과 결혼했습니다. 이 부부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흠이 없이 행하는 의인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인이었지만, 이 둘 사이에는 늙도록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자식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큰 근심거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가랴 부부의 근심이 깊은 것은 그들이 더는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음의 사람이라도 마음에 인간적인 소망이 사라지게 될 때 근심이 쌓이게 됩니다. 사가랴는 제사장 가문으로서 대가 끊어지는 가문의 단절 위기를 맞았습니다. 아마 사가랴보다도 엘리사벳의 마음이 더욱 아프고 근심이 깊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요한을 잉태하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 아래의 25절입니다. “주께서 나를 돌아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이처럼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아서 큰일에 쓰임 받은 사가랴도 인간 세상의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는 염려와 의심이 일어났습니다.

 

본문에서 이적이 일어난 경로는 이렇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은 24팀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팀별로 돌아가면서 성전에서 봉사했습니다. 그리고 봉사담당 팀의 제사장 중에서 제비를 뽑아서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도록 했습니다. 마침 사가랴가 소속된 팀에서 직무를 수행할 순서가 되었는데, 사가랴가 제비에 뽑혀서 성소에서 분향하게 되었습니다. 사가랴가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할 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라고 알렸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자신과 아내가 모두 잉태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라는 표현입니다. 사가랴는 하나님의 뜻을 의심했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가 되는 벌을 받았습니다. 이 사가랴의 가정을 통하여 염려와 근심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살펴봅시다.

 

※ 나를 근심하게 하는 통로를 확인해야 합니다.

 

어떤 젊은 여자가 과부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자녀 여섯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젊은 과부는 너무 기가 막혀서 얼마 동안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울다가 울다가 몇 달 후에 결정했습니다. 자기는 남자들처럼 노동은 못 하겠고, 교육을 많이 받지도 못했으니 취직도 못 하겠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아이들을 사랑하고 기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 없는 어린이들을 맡아 기르는 양어머니가 되기로 했습니다.

이 과부는 자기 집을 양육소로 만들고 20년 동안, 부모 없는 어린이들을 맡아 길렀습니다. 미국 정부에서는 양육하는 아이를 위하여 한 아이에게 매달 40만원 정도를 지급했습니다. 이 과부는 자신의 6남매 이외에, 1백여 명의 어린이들을 맡아 잘 길렀습니다. 어느 날, 신문기자가 양육소로 찾아와서 그 부인과 인터뷰했습니다. “당신은 무슨 비결로 그 많은 아이를 맡아서 훌륭하게 길렀습니까?” “함께 일했습니다.” “함께 일하다니요? 누구와 함께 일했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과 일했습니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할 때, 저는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제 근심과 염려들을 맡아주십시오. 그러시면 저는 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약속한 대로, 저는 근심 걱정은 하나님께 맡겨두고 일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제 부탁을 받으시고 근심 걱정을 맡아주셨습니다. 그것이 제 비결입니다.”

 

이 이야기의 젊은 과부가 근심하게 된 통로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과부가 되었다는 것이며, 둘째는 노동이나 취직을 할 수 없는 제한된 상황입니다. 이 젊은 과부는 자신을 덮고 있는 근심의 통로를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근심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통로를 확인하자 그 근심을 벗어날 길이 보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도 근심거리들이 있지요? 그 근심거리들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본문에 등장하는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의 상황을 봅시다. 7절의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라는 말씀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근심을 일으키는 통로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이 부부가 근심에 잠기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들의 근심의 통로는 “자식이 없고, 나이가 많더라.”라는 것입니다. 이들 부부가 직면한 환경은 이들이 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를 이을 후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절망적인 상황은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더는 잉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신앙이 좋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앙인이라고 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자신이 생각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을 때, 근심이 쌓이며 하나님을 불신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민수기 11장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모세를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18-23절을 봅시다.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19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20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21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22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모세를 근심하게 한 통로는 ‘고기를 먹고 싶다는 백성들의 원망’이었으며, ‘자신에게는 그것을 들어줄 능력이 없다.’라는 무능함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불신하는 무지함까지 이르게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근심하게 하는 원인의 통로를 확인하면,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깨닫게 됩니다.

 

※ 근심하게 된 원인을 어떻게 해소합니까?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였던 한 여자가 사고를 당해 눈 주위의 피부가 몹시 흉하게 오그라들었습니다. 혼기가 꽉 차 있던 그녀는 그 후 계속 선을 봤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녀는 생각다 못해 이름난 메이크업 학원에 다니며 그 상처를 감추는 화장법을 배웠습니다. 화장으로 흉터를 숨기고 한 남자와 선을 봐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장사를 나가기 때문에, 그녀도 늘 남편보다 먼저 일어나 화장을 해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감추어진 모습이 드러날까 봐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의 리어카를 밀면서 함께 장사를 다녔습니다. 문제는 땀이 날 때였습니다. 남편이 닦아주겠다고 해도 행여 들킬세라 늘 사양하며 눈 주위를 피해 조심스레 닦아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고 그날도 남편이 얼굴을 닦아주려고 했습니다. 잠시 멈칫거리던 여인은 ‘어차피 언젠가는 들킬걸’ 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손수건을 꺼내 든 남편은 눈 주위만 빼고, 빗물을 정성스레 닦아주었습니다.

 

아내는 자기 근심의 원인을 화장으로 가리는 것으로 해소하려 했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약점을 가리고 싶었지만, 남편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약점까지도 함께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는 그때까지 쓸데없는 염려에 빠져서 괜히 피곤하고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도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근심에 싸이고 부자유스럽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맡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맡기지 않아도 하나님은 나를 아시고 내 마음의 생각까지도 아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기면 하나님께서 내 연약함까지도 맡아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잠언 16:3절에서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라고 하시며, 로마서 8:26-27절에서는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내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면 도우시지만, 육신적인 환경에 집착하게 되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마음과 영혼이 마비됩니다.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며칠 후에는 보리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후, 갈릴리 건너편으로 가실 때였습니다. 마태복음 16:6-11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을 떡이 없다.’라는 육신적인 환경에 집착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가랴가 천사의 방문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전해 들었지만, 잉태 불가능이라는 육신의 환경에 집착하다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사가랴는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자신도 아내도 모두 아이를 잉태할 만한 나이를 지났다는 것이 불신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근심을 해소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근심과 걱정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뿐입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보이는 것을 신뢰하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비록 내 앞에 닥친 일들은 불가능해 보이고 탈출할 길도 보이지 않지만, 나의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은 환경을 넘어서서 인간적인 이해의 차원을 초월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은총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버리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비록 불가능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을 결코 버려두거나,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능력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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