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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길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760회 작성일 2023-02-26 15:43

***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길 / 열왕기상 17:8-16

 

열왕기상 17:8-16,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게 마시게 하라.’ 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 들어가는 말

 

한동안 성도들에게 많이 불렸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는 ‘은혜’라는 복음송이 있습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였소.” 이런 고백적 내용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그 은혜 안에 살려고 힘쓰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작정 노력한다고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2:8-9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하셨는데, 믿음과 구원을 비롯하여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에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 은혜의 선물입니다. ‘선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비록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지만, 은혜 안에 머무는 길은 찾고 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바로 이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 말씀은 선지자 엘리야에 관계된 이적의 이야기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북이스라엘의 7대 왕인 ‘아합’이 통치하던 때이며, 아합왕은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자신은 우유부단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소심한 왕이었으며, 나라를 부강하게 할 목적으로 이방인 ‘시돈’과 정략결혼으로 교류를 강화했습니다. 아합왕이 시돈에서 데려와서 왕후로 삼은 여인은 ‘이세벨’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바알’신과 ‘아세라’여신을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아합은 왕후 이세벨의 꾐에 빠져서 온 나라에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신전을 짓고 제사장을 세우고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본문 앞쪽의 16:33절에서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엘리야’를 통하여 가뭄과 기근으로 징계하겠다고 아합에게 통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아합과 이세벨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엘리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나께서 엘리야를 시냇가 바위 동굴에 숨기셨고, 그곳에서 시냇물이 마르기까지 까마귀를 통하여 음식을 공급하셨습니다. 가뭄이 길어지면서 시내도 말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시돈의 ‘사르밧’으로 보내셨습니다. 이후의 이야기가 읽었던 본문의 내용입니다.

 

아들과 함께 생활하던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 엘리야를 잘 아는 것도 아니었으며,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라고 하셨지만, 사르밧 과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의 대답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엘리야 선지자의 말을 믿고 순종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 믿을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무엇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까?

 

‘은혜’라는 말을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고맙게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은혜라고 할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읽었던 에베소서 2:8-9절에 의하면, 믿음과 구원을 비롯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이 은혜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베푸시는 일반적 은혜가 있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일반은혜는 햇빛과 비를 주시고, 결실하게 하시며, 공기와 먹거리를 제공하시는 등. 피조물이 생존할 수 있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이 모르는 하나님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14:17절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반면에, 특별은혜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13절을 봅시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9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2절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지어져 가는 존귀함이 특별은혜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사르밧 여인을 봅시다. 사르밧(사렙다)은 페니키아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두로와 시돈 사이에 있는 이방 마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물질이 넉넉한 부자나 고위층 가정에 보내신 것도 아니고, 가난한 정도가 아니라 극빈한 과부의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과부에게 선지자를 대접하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의 처지에서 보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 그것도 자기 동족도 아닌 이스라엘 사람이, 이 가뭄으로 물 한 방울이 귀한 판에 대뜸 물을 달라고 하지를 않나, 한술 더 떠서 떡까지 달라니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분명히 자신도 아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구워 먹을 떡 한 덩이의 밀가루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그것을 먼저 자신을 위해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뭄이 끝날 때까지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처지에서는 그 말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거기다가 하나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신이지 사르밧의 신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12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상황이 이러했지만, 여인은 엘리야 선지자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즉 순종할 수 없는 상황과 환경에서 순종할 수 있도록 그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 은혜입니다. 이렇게 사르밧 과부의 마음이 움직이게 된 원인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고자 하시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하십니다. 지금의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이 사실이 너무도 크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억지로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환경과 여건을 초월한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것 같고, 손해 보는 것처럼 여겨져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잃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을 얻는 결과를 보게 됩니다.

 

※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길은 순종입니다.

 

이 순종을 가장 잘 이해하도록 보이신 말씀이 빌립보서 2:5-8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사람으로 세상에 오셔서(成肉身), 대속(代贖)의 제물이 되셨음을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성자 하나님이시면서, 성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하게 순종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34절입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그리고 6:38절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뜻이 곧 생명의 양식이며, 세상에 오신 목적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이 일이 우리에게 순종의 본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오늘의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보이신 순종의 본을 따름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예수께서 보이신 이 순종의 길을 다른 모양으로 표현한 말씀을 봅시다. 요한복음 12: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에 살면서 지속해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기 위하여 마땅히 따라야 할 일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기 위하여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내려놓고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버려야 할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의 가장 근본적인 신앙의 자세이자 예수께서 본을 보이신 신앙의 모습에 관하여 이해를 돕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탤런트 최불암 씨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연예인 교회에서 예배 후, 점심 식사하는 자리에서 어떤 분이 최불암 씨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볼 때, 최 선생님은 최고의 연기자인데, 그 연기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는 특이한 웃음을 띠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늘 연기를 하면서 가장 처음 받은 연극수업을 기억하는데, ‘내가 얼마나 빨리 그 대사에 나오는 인물과 같아지기 위해서, 나를 비우고 또 비워서 극 중 인물의 인격으로 나를 채우느냐?’라는 것이 나의 연기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나를 잘못 비워서 내가 내 멋대로, 내 성품대로 하려고 하면, 나도 연기를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최불암 씨의 말 중에 ‘연기자가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 자기를 비우고 또 비워서 극 중의 인물의 인격으로 채워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를 비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채워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가 비워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것에 관하여는 에베소서 4-5장에서 자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중에서 4:22-24절을 봅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사르밧 여인은 자기 민족이 섬기는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사르밧 여인이 하나님께로 온전하게 돌이키게 된 사건이 본문 이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인의 아들이 갑자기 병들어 죽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죽은 아이를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방으로 가서 하나님께 간절하게 부르짖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를 살려주셨습니다. 살아난 아이를 안고 나와 여인에게 돌려주었을 때 여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17:24). 이 사건을 통하여 사르밧 여인은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온전히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1:2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품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내 삶에 채우려면 내 생각과 내 뜻을 비워내고 예수님의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사는 것’이며, 이 삶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길입니다. 이렇게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면, 사르밧 여인에게 일어난 기적과 복의 삶이 내 생활에서 이루게 됩니다. 나를 비워내는 일은 결단코 쉽지도 않으며,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삶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야 하므로, 날마다 주님을 향하는 삶으로 이 큰 행복의 길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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