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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은혜를 좌우하는 것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190회 작성일 2023-02-19 17:23

*** 생명과 은혜를 좌우하는 것 / 역대하 20:20-23, 빌립보서 4:4-7

 

역대하 20:20-23, “20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빌립보서 4:4-7,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들어가는 말

 

이 시간의 말씀 주제를 ‘생명과 은혜를 좌우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성경에는 생명과 은혜를 좌우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시간에는 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매일 접하면서도 생각하지 못하는 위험한 요소인 생각과 말에 관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사람은 언어장애가 없는 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항상 하게 되는 생각과 말이 생명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좌우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찾으려면, 이 시간의 말씀을 잘 기억했다가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패턴을 유심히 관찰해보시기 바랍니다.

 

미국 방위사업체 CEO ‘빌 스완스’가 정리한 ‘책에서는 찾을 수 없는 비즈니스 규칙 33가지’에서 웨이터의 법칙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책의 내용 중에는 ‘당신에게는 친절하지만, 웨이터에게 무례한 사람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던 웨이터가 실수로 그중 한 손님에게 와인을 쏟았습니다. 웨이터가 어쩔 줄 모르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옷을 버린 손님은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지금 미쳤어? 내가 누군지 알아? 여기 지배인 나오라고 해!” 이 사람과 동석한 사람은 ‘브렌다 반스’라는 의류 업계의 거물이었는데, 실수한 웨이터를 대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당장 거래를 취소했습니다.

IT기업 대표인 ‘데이브 굴드’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업무차 만난 상대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침에 바빠서 샤워를 못 했는데 잘됐네요. 괜찮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실수한 웨이터를 웃음으로 용서하는 걸 보고는 데이브 굴드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 가지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서 몇 마디 말이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처럼, 그 사람의 품격을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미루어 짐작하는 것입니다. 잠언 20:11절에서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서 그 사람의 품격을 짐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마음에 품은 생각을 행동으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이나 행동의 표현이 그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기도 하며,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좌우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역대하 본문 말씀은 남 유다의 네 번째 왕인 ‘여호사밧’ 왕의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했던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역사를 이루었고, 그의 치적을 무려 성경의 네 장에 걸쳐 소개합니다. 본문 말씀은 남 유다의 주변 국가들인 암몬과 모압과 세일 사람들이 연합하여 남 유다를 치러 온 전쟁의 이야기입니다. 삼국 연합의 대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 그때, 하나님께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셔서 여호사밧과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대하 20:17)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여호사밧과 온 백성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감사했습니다. 이 일 후의 이야기가 본문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드고아 들로 나가서 삼국 연합군들 앞에서 대열을 이루고 섰습니다. 그리고 그 군대 앞에 찬양대를 세워서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찬양하게 했습니다. 바로 이 찬양이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 그 연합군을 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은, 여호사밧 왕의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신뢰와 신앙의 표현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빌립보서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종말을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철저히 의뢰할 것을 가르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시게 하는 방법과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역사하는가를 가르칩니다.

 

이 두 본문 말씀에서 찾으려고 하는 내용은, 확신에 찬 말과 행동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라고, 말만 들어도 담대함이 일어날 정도로 확신에 찬 말투입니다. 그리고 빌립보서의 말씀은 아예 명령형을 사용합니다. 이 두 본문 어디에도, 가정하는 말투, 부정적이거나 불확실한 말투는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표현이 분명하고 순종할 때, 생명의 능력이며 은혜를 이루게 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이루는 확실한 표현은 무엇입니까?

 

예전에 어느 화장실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몸은 의사에게 맡기고, 목숨은 하늘에 맡기고, 마음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세상 사람들도 자기 마음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마음 경영은 세상의 어떤 피조물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태복음 10:2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어떤 세상의 권력과 능력으로도 다른 사람의 마음 경영까지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 경영은 사람마다 다르고 특색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인품(人品) 혹은 품격(品格)이라고 합니다. 품격이란 ‘사람의 됨됨이와 기본바탕을 타고난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이 자랑하는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품격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꽃에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품격이 있다. 그러나, 신선하지 못한 향기가 있듯이, 사람도 마음이 밝지 못하면 자신의 품격을 지키기 어렵다. 썩은 백합꽃은 잡초보다 그 냄새가 고약한 법이다.” 이렇게 자기의 품격을 나타내고 표현하는 도구가 말(言語)입니다. 사람의 말은 의사 표현, 의사소통을 위한 것입니다. 이 말의 표현은 ‘사실 언어’와 ‘감성 언어’로 표현됩니다. 사실 언어는 그 말이 진실인지 혹은 거짓인지를 나타내며, 감성 언어는 그 말을 전달하는 형식인 ‘말투(말하는 버릇이나 본새-어떠한 동작이나 버릇의 됨됨이)’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언어도 중요하지만, 정말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감성 언어인 말투입니다. 즉, 아무리 옳은 말을 하고,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말투가 거칠 거나, 감정을 상하게 표현한다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방어막을 쳐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거 같아요’(그렇습니다. 아닙니다), ‘해주실 수 없을까요?’(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등. 확신을 줄 수 없는 말이나 표현도 불신만 남기게 됩니다. 이처럼 정말 어려운 것이 언어, 즉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6절에서는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라고 무섭게 경고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말투는 안타깝게도 셀카처럼 포토샵이 안 됩니다. 한 번 내뱉으면 예쁘게 바꿀 수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분명하고 확신 있게 표현해야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백성을 갈멜산에 모아놓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 그리고 예수께서 기도에 관하여 가르치시면서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重言復言)하지 말라.”(마 6:7)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표현을 원하십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말투는 오랜 습관화 되어 있고 익숙해 있어서, 그 사람을 나타내는 고정된 색깔이며 향기로 여겨집니다.

 

어느 대학교 교수가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나비가 꽃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꽃이 나비를 선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수의 질문에 한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교수님, 나비가 꽃을 선택해서 꽃으로 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교수는 말했습니다. “그냥 보면 나비가 꽃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꽃이 향기를 발해서 자신을 드러냈기 때문에 나비는 그 향을 찾아간 것이라네.”

 

실제로 식물학자들은 식물이 자기 번식을 위하여 꽃가루를 수정시켜줄 곤충을 꿀이나 향기 혹은 모양으로 유혹한다고 합니다. 이는 식물만 아니라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며, 사람도 저마다의 향기가 있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생겨난 고유한 내면의 향기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2:15-16절에서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라고 합니다. 이런 내면의 향기는 그 사람의 영적인 확신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여호사밧 왕의 말을 다시 봅시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여호사밧 왕이 당면한 현실은, 세 나라의 군사들이 연합한 대군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던지,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이 호소에도 자신의 분명한 의사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말씀을 듣고는 백성들에게 더욱 분명하고 확신에 찬 자기 의시를 나타냅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 교회에게 확신에 찬 말투로 선언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에는 의심(疑心)이나 불신(不信)이 끼어들 조금의 틈도 없습니다. 이러한 확신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내면적 능력이며 향기입니다. 여호사밧 왕의 확신에 찬 말을 들은 백성들은, 왕의 말에 따라 찬양대를 앞세워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며, 무기가 아니라, 찬양하며 담대하게 적진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이 찬양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하나님의 군대가 일어나서 적진을 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확신을 바탕으로 하여‘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기도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확신을 나타내는 마음 경영과 말투가 생명이 이르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부정적인 말투나 불확실한 말투, 덕스럽지 못한 생각(마음 경영)과 말투를 멀리해야 합니다. 전도서 5:6절입니다.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하나님 앞에서 말한 것, 기도한 것, 마음을 표현한 것 등. 한 번 내뱉은 말과 표현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잘 못 품은 생각과 잘 못 표현한 말은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게 되고, 확실하고 분명한 신뢰의 표현은 하나님의 은혜를 부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태복음 12:36-37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나 사람에게 분명하고 확신하는 말투와 표현으로 사람에게는 신뢰를 받고, 하나님께는 생명과 은혜를 이루어 받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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