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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신앙 노선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207회 작성일 2023-01-01 19:36

*** 지켜야 할 신앙 노선 / 요한계시록 2:1-7

 

요한계시록 2:1-7,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 들어가는 말

 

우리가 살면서 매일 접하는 것 가운데, 줄, 즉 선(線, line)이 있습니다. 당장 집을 나서면, 도로에 차선이 있고, 경찰 통제선을 표시하는 police line처럼, 접근을 통제하는 줄들도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선들도 많습니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을 솔트 라인(salt line)이라고 하며, 고산 지대에 나무가 자랄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을 수목한계선(樹木限界線, tree line)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경고성 의미를 부여하는 선도 있습니다. 선박에는 화물이나 사람을 싣는 무게 한계선을 나타내는 선을 적재한계선(lord line)이라고 하며, 요즘 방송이나 신문, 인터넷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인 bottom line, red line 같은 용어도 있습니다. the bottom line은‘맨 아랫줄’ ‘결국은∼’이라고 해석하는데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선’을 의미합니다. the red line은 영국에서 나온 군사적 용어인데 의미는 거의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마지노선(Maginot line)’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마지노선이란 ‘더는 허용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선’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지노선(Maginot line)’은 2차 세계대전 때의 군사적 방어선인 요새선(要塞線)인데, ‘최후방어선’, ‘넘어서서는 안 되는 선’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프랑스 국방장관인 ‘앙드레 마지노’(1877~1932)가 창안했기 때문에 그이 이름을 따서 ‘마지노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여러 의미의 선들을 이야기한 이유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의 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2023년을 시작하는 주일에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 노선을 살펴봅시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요한계시록은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밧모 섬에 유배당한 사도 요한에게 예수께서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서두를 장식하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중에서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 요한은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가운데를 거니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말씀을 듣는 것으로 편지를 시작합니다. 일곱별과 일곱 금 촛대는 모두 일곱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일곱별을 붙잡고”라고 하셨습니다. ‘붙잡다.’라는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손안에 교회 전체를 붙잡고 계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께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라는 것은 ‘모든 교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내용은 지금의 교회 된 우리도 역시 해당합니다. 사실 에베소 교회는 영적인 에너지가 충만했으며, 기독교 정통성을 잘 보존한 교회였습니다. 예수께서 본문 2-3절에서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결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가 이단을 몰아내고, 불법을 감시하는데 너무 심취해서 형제간의 사랑을 잃은 것입니다. 마음이 굳고, 비판적이고, 따지고, 잘못 이해하는 완고한 독선 때문에 사랑의 정신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면으로는, 마치 신혼 기간이 끝나서, 결혼 때의 사랑이 기억으로만 남아 있듯이, 하나님께 대한 처음 열정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이 시간에 살펴볼 중심입니다.

 

※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 노선이 있습니다.

 

서론에서 설명한 많은 선 중에서 the bottom line, the red line, 마지노선(Maginot Line), 적재한계선(Lord Line) 등. 이 선의 공통점은 ‘더는 허용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선’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선을 넘게 되면, 엄청난 불상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 중에서 적재한계선(Lord Line)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보겠습니다.

 

19세기 영국이 강력한 해군으로 전 세계의 바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던 때, 덩달아 많은 상선이 전 세계를 누볐습니다. 그런데 활동하는 상선 중 많은 배가 침몰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영국 정부는 손실을 막기 위해 배가 침몰하는 이유에 대해서 대대적인 조사를 시행했습니다. 조사 결과 침몰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했습니다. 바로 상선들이 짐을 너무 많이 실었기 때문입니다. 조사를 진행했던 Samuel Plimsoll은 무리한 선적으로 인한 침몰을 방지하기 위해 선박 외부에 줄을 긋고 그 선이 잠길 때까지만 짐을 싣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선을 Plimsoll Line 혹은 Lord Line이라고 불렀으며, 이후 이 적재한계선을 지키는 것만으로 침몰 사고는 크게 감소했습니다.

 

Lord Line을 조금 더 설명한 이유는, 우리가 알듯이 The Lord라고 하면 ‘주님’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명하신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 노선은 많습니다. 예컨대, 믿음, 회개, 거듭남, 거룩, 화평 등. 지켜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2023년 모든 계획이 시작되는 첫날, 첫 주일에 꼭 해야 할 신앙 노선은 본문에서 예수께서 에베소 교회에 경고하셨던‘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이처럼 중요한 이유는, 먼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인 덕목의 최고봉이 사랑이며, 이 사랑으로 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3:1-3을 봅시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13절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그리고 요한일서 4:16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 노선의 한계선입니다.

 

중요한 사실을 본문에서 경고하시는 말씀으로 봅시다. 본문 4-5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회는 영적인 에너지가 충만했으며, 기독교 정통성을 잘 보존한 교회였습니다. 예수께서 본문 2-3절에서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라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잃어버린 한 가지가 결정적인 신앙 노선이었습니다. 선박도 좋았고, 선원들도 좋았으며, 엔진의 동력도 좋았지만, 결정적으로 사랑 결핍이라는 마지노선을 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신앙 노선을 회복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버린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영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과 열정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신앙 노선입니다.

 

※ 이 중요한 신앙 노선을 어떻게 지킬 수 있습니까?

 

지금 우리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지금의 내 사랑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지금 예수님을 진짜 사랑하는가? 나는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들을 진짜 사랑하는가?” 예수께서 요한복음 14:23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하시며,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18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말씀합니다. 즉, 사랑이라는 신앙 노선을 지키는 길은 내 생활에서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만여 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교회로 부임하게 된 ‘예레미야 스티펙(Jeremiah Steepek)’ 목사가 그 교회의 신앙 노선을 파악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습니다. 부임하는 주일 아침에 홈리스(노숙자)로 변장하고, 그 교회 입구에서 30분간 교회에 들어오는 교인들 앞을 서성거렸습니다. 자신을 지나친 7000여 명의 교인 중, 단 3명이 ‘hello’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교회로 향하는 교인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습니다. “배가 고파 음식을 사려 하니 잔돈을 좀 달라.”고 구걸을 했지만, 아무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교회당에 들어간 스티펙 목사는 맨 앞자리로 갔습니다. 하지만 예배 위원들의 저지와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자리에 겨우 앉을 수 있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뒤에 앉아 모든 진행 상황을 들었습니다. 이윽고 장로들이 일어나 새로운 목사를 교인들에게 소개했습니다. “Jeremiah Steepek!” 성도들은 기대에 넘쳐 박수치며 환영했습니다. 앞에서 나올 줄 알았던 스티펙 목사가, 맨 뒷자리에서 노숙인 차림 그대로 강단에 올랐고, 교인들은 경악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곧장 마태복음 25:31-40까지 읽어 내려갔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성경 구절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자, 교인들은 심하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곳곳에서 흐느껴 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인 대다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결론으로, 아침에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면서 “오늘 아침 교인들이 모이는 것을 봤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부족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까?”라는 말로 설교를 마쳤습니다.

 

사랑은 작은 것이라도,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상대를 아끼고, 배려하고, 나누는 삶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삶에서 나타나는 것이 진실한 사랑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너무 교과서적인 신앙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니 ‘그러려니’ 하면서 머리로만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데 그칩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하고 지켜야 할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으로 행동하는 것만 인정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도 했던 말인데,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30년 이상을 목회한 목사인 저도 ‘아직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신학생들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진실한 사랑이 잘 안 되는 것이 고민이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사랑의 작은 표현인 배려하고, 아껴주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실천을 하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올해에는 우리 대복교회가 이렇게 주님께서 흐뭇해하실 사랑의 작을 실천이라도 시작해봅시다. 다른 사람들 보지 말고, 나만이라도 주님의 말씀을 따라갑시다.

 

‘양 떼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양들은 산만해서 한 곳에 모아놓으면 아주 무질서해집니다. 하지만 우두머리 양이 선두에 나서면 양들은 일사불란하게 우두머리 양을 따라갑니다. 연구자들이 양 떼의 습성을 알아보기 위해 양 떼가 지나가는 길목에 긴 나무를 가로로 눕혀놓고 관찰했습니다. 우두머리 양이 나무를 폴짝 뛰어넘자, 두 번째, 세 번째 양도 모두 폴짝 폴짝 뛰어서 넘었습니다. 도중에 연구자들이 그 나무를 치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양들이 그 자리에만 오면 앞선 양처럼 폴짝 뛰어 지나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양 떼 효과’라고 합니다. 즉 ‘양 떼 효과’는 ‘인간의 맹목적인 추종 심리를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오늘의 많은 교인이 ‘양 떼 효과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주일에 교회당에 가며, 왜 예배를 하며, 성경 읽고, 기도하는 진정한 이유도 생각하지 않고 맹목적이고 습관적으로 합니다. 나는 혹시 그렇지 않았나를 돌아보면서, 오늘부터 내 신앙 노선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서 주님께서 기뻐하실 진정한 사랑을 시작해봅시다. 그래서 올해는 본문 7절에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큰 사랑이 대복교회와 성도들의 가정과 직장, 사업장에 넘치는 행복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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