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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자리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276회 작성일 2022-10-12 17:04

***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자리 / 열왕기하 4:8-16

 

열왕기하 4:8-16, “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9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10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11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에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12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하니, 곧 여인을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13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니 15 이르되 다시 부르라.’ 하여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16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 들어가는 말

 

어저께 사랑밭 새벽편지에 올라온 이야기입니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는데, 어떤 학생이 멀리서 버스를 보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기사는 그 모습을 보고는 15초 정도를 기다렸습니다. 남자 고등학생이 먼 거리를 전력으로 뛰어와서 버스를 타면서 “헉헉, 고맙습니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러자 기사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 정신이면 된다. 그렇게 힘껏 하면 안 되는 게 없다.”

 

세상에서는 이런 정신력을 일컬어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고 합니다. ‘정신을 집중하여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성취할 수 있다.’라는 뜻이지요. 사람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희망일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은 시대가 어둡고 환경이 어려울수록 더 강하게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대할 만할 여건을 만들어 놓지도 않은 채,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하게 기대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막연한 기대감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성경 66권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다스림의 원칙은 ‘행한 대로 갚는다.’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33:20에서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라고 하시며, 마태복음 16:27에서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도록 주어진 일과 환경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 말씀은 자주 거론했던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나타내셨던 일인데, 4:8-37, 8:1-6에 걸쳐 나오는 비교적 긴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아셀 지파의 성읍인 수넴입니다. 수넴은 아셀 지파의 성읍입니다. 어느 날, 선지자 엘리사가 수넴을 지날 때, 그 성읍의 한 나이 많은 귀한 여인이 선지자를 알아보고는 간절하게 권하여 자신의 집으로 모셔서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 후로 선지자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 집에 들러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그 여인은 남편과 의논하여 선지자를 위하여 쉴 수 있는 방 한 칸을 마련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그 여인의 호의가 감사해서 그 여인에게 ‘무슨 소원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특별한 소원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던 엘리사는 사환을 시켜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 오게 했습니다. 사환은 ‘이 집에는 자식이 없다.’라고 했고, 다시 여인을 부른 엘리사는 여인에게 ‘내년 이맘때에는 아들을 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자신이 늙어 단산하였음을 생각하며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수넴 여인에게 나타낸 엘리사 선지자의 이적인데,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식을 얻게 된 이적의 근본 되는 원인을 나타냅니다. 이 말씀은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성실과 진심 어린 영접과 섬김과 대접이 놀라운 결과를 이루게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삶에는 놀라운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설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의 능력은 겸손한 곳으로 흐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컨대,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불꽃은 위로 향하며, 모든 식물은 햇빛을 향하는 것, 등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에서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자리로 흐릅니다. 마태복음 10:40-42을 봅시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사람의 행동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응(報應)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매일 살아가는 삶, 매일 만나는 사람, 매일 접하는 환경 안에 하나님의 능력도 은혜도 감추어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 앞을 지나가는 세 사람을 강권하여 대접했는데, 그들은 하나님과 천사들이었습니다. 대접을 받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소돔 성에 살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저녁에 거리를 지나는 두 사람을 간권(懇勸)하여 집으로 모셨는데, 그 두 사람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온 천사들이었습니다. 창세기 19:12-13입니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천사를 대접한 롯의 가정은 그 멸망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는 내 일상생활 속에 있으며,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는 겸손한 삶에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신 수많은 약속 중에 가장 큰 복과 능력을 약속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이 약속을 봅시다. 잠 3:34,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잠 15: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 18:12, “사람의 마음의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 29:23, “사람이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사 29: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 57: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마태복음 11:22에서 예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하시며, 벧전 5:5-6을 봅시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이렇게 많은 말씀의 증거를 대는 이유는 이 약속이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겸손의 표상이심을 나타내시면서 겸손한 사람에게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베푸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도 별로 없고,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겸손함과 모든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음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별로 없습니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라는 옛말처럼 금방 결실을 얻기를 바라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신뢰하지도 않고 거저 얻을 생각만 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수넴 여인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에게 좋은 마음으로 섬겼습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10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이에 대하여 엘리사 선지자는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생활 속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하고 섬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 생활 속에 있습니다.

 

우리 옛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고 했습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도 했는데, 이 말은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간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모든 마음의 경영이 삶의 행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겸손으로 옷 입은 사람에게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당연히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큰 농장을 경영하는 주인이 포도원에서 많은 일꾼들에게 일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일꾼들 중 한 젊은 사람을 데리고 포도원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주인은 일꾼들에게 품값을 주었는데 모두 똑같은 금액이었습니다. 물론 주인과 한가하게 거닐던 그 젊은 일꾼도 똑 같은 돈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일꾼들이 그 젊은 사람에 대하여 주인에게 불평했습니다. “그 사람은 고작 두어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왜 우리와 똑같은 노임을 주는 겁니까? 불공평합니다.”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너희들이 온종일 한 일보다도 훨씬 많은 일을 두 시간에 해냈다.”

 

인생은 얼마나 많이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과일나무가 오래 살면서 열매다운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오래 산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도 오랜 삶의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한다든지, 사회를 유익하게 한 일이 없다면 오래 산 의미가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하고, 하루에 몇 시간씩 기도한다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고, 합당하게 살았는지가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7:16-18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매 없는 삶을 탄식하셨습니다.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삶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세상의 주권자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자리입니다.

 

겸손한 삶이라고 해서 대단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성령의 열매, 빛의 열매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고, 빛의 삶, 소금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베풀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따르며,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고 더럽고 곤란한 일도 기쁘게 사랑으로 행하는 삶입니다. 이 삶은 하나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이런 삶은 자신이 변화되고, 가정을 변화시키고, 그들이 머무는 공동체와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말만 무성하고 요란스럽기만 했던 고린도 교회는 방탕한 그 사회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도 역시 세상과 똑같이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삶의 무대만 세상에서 교회로 바꾸었을 뿐이지 변화된 삶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지 않으면 결코 주님께 인정받지 못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수넴 여인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이유는 생활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실천되었기 때문입니다. 수넴 여인의 믿음은 우리보다 결코 더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한 해가 지나 이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라고 했을 때, 여인은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라며, 자신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함은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여인의 믿음이 특출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여인의 겸손 하고 진실한 삶은 하나님의 능력을 이루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이 나타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은혜와 능력으로 채워 주십니다.

 

“Giving is the best communication!”이라고 했습니다. ‘베푸는 것이 최고의 소통이다.’라는 의미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은 더 큰 사랑으로 돌아옵니다.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결과를 내시며 사람을 높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신실한 생활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이루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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