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내 그릇만큼 채우십니다.
*** 내 그릇만큼 채우십니다. / 열왕기하 4:1-7
열왕기하 4:1-7,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지 말고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 들어가는 말
세상의 수많은 언어가 있지만, 사랑, 행복 등.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이 있는가 하면, 듣기조차 거북한 말도 있습니다.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이 많겠지만, 들었을 때 무엇인가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충만, 가득함, 풍성 등의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은혜를 약속하실 때, 이러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시편 81:10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라고 하시며, 누가복음 6:38에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라고 하셨고, 빌립보서 4:19에서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표현하셨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충만하고 풍성함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은혜를 약속하셨지만, 많은 사람이 풍성함을 원하면서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의미심장한 실화가 있습니다.
어느 기업체에서 사원을 모집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이 그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원서를 제출했습니다. 며칠 후 면접통지서가 왔습니다. “○월 ○일 10시. 면접 장소는 ○○○빌딩 1810호” 면접 당일 청년은 일찌감치 면접 장소로 찾아갔습니다. 빌딩 현관에 있는 경비에게 ‘면접 장소인 1810호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경비는 “이 빌딩에는 1810호가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청년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는데요!” 그러나 경비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빌딩에는 1809호까지만 있습니다.” 청년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섰습니다.
이틀 후, 우편함에 편지가 있었습니다. 편지는 자신이 응시했던 기업체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면접 장소에 왔을 때, 저희 면접관들은 근처 테이블에 앉아서 당신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경비원에게 묻는 것 이외에 다른 노력을 하지 않으시더군요. 저희 회사는 노력하지 않는 분에게는 기회를 드리지 않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열정과 최선의 노력을 다해보지도 않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좌절하거나 포기합니다. 특히 신앙의 일에는 더 많은 인내와 기다림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몇 번 기도해보고, 조금 노력하다가 상황에 진전이 없으면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5:10-11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내게 어떻게 채워지게 할 수 있을지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 본문의 내용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선지자 엘리사가 행한 이적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포함하는 4장에는 엘리사가 행한 다섯 이적을 소개합니다. 그중에서 본문 말씀은 엘리사가 남편을 잃은 선지자 생도(신학생)의 아내를 돕기 위한 이적입니다. 엘리사가 가르치던 제자 중 한 사람이 죽었고, 그 아내와 두 아들이 힘겹게 살고 있는데 빚을 준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빚을 받을 아무런 재산이 없자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겠다.’라는 것입니다. 다급하게 된 생도의 아내는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엘리사는 집에 돈이 될 만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고, 과부는 ‘기름 한 그릇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빈 그릇을 최대한 많이 모아 방에 들어가서 기름을 부어라.’라고 했습니다. 기름은 “빈 그릇이 없습니다.”라고 할 때까지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그 기름으로 빚도 갚고 생활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사역에는 사람을 돕는 일들이 많은데, 이는 지극히 작은 사람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렇게 하나님 자녀들의 삶에 관심이 많으시며, 돌아보고 은총을 베푸십니다.
※ 인생의 위기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합니까?
전도서 7:14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처럼, 우리의 삶에는 언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때때로 닥치는 어려움이나 시련을 만나면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움의 손길을 찾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우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무엇을 생각합니까? 예전에 어느 광고에서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합니다.’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선택하는 것에는 생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선택과 결단이라는 과정을 반복하며 삽니다. 특히 어려운 시련의 때는 이런 선택이 더욱 중요합니다.
기업경영 이론 중 하나인 ‘Decision Pyramid(결의의 피라미드)’라는 학설이 있는데, 이 이론에서 인간의 선택을 중요도에 따라서 세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Ordinary everyday decision인데, ‘일상적 결단’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무슨 옷을 입고 갈까? 무슨 음식을 먹을까? 누구를 만날까? 교회에 가야 하나, 결혼식에 가야 하나?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등등. 일상생활에서의 선택과 결단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Middle level decision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중요한 결단’을 말합니다. 전공과목은 뭘 택해야 하나? 나는 한평생을 무엇으로 이바지하면서 살 것인가? 누구와 결혼할까? 어떤 직업을 택할까? 등등. 자신의 평생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선택과 결단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Real important decision이라고 하는데, ‘결정적인 결단’을 말합니다. 이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결단입니다.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생명을 건 선택을 하는 것, 순교자의 삶, 희생적인 삶 등. 자신의 생명과 직결된 선택과 결단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중요도에 차이는 있지만, 매일 매 순간을 자신의 결의에 의한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갑니다. 이러한 선택과 결단의 삶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산물입니다. 자유의지에는 반드시 따르는 것이 책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행한 대로 갚아 준다.”라는 말씀이 많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주님께서 요한계시록 22:12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러므로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결의와 선택도 중요하지만, 인생이 힘들 때의 결의와 선택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삶의 자리에서 수많은 결정과 선택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결정을 내리고 선택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어려울 때, 중요한 인생의 기로(岐路)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합니까? 이렇게 묻는 이유는 어떤 일을 만났을 때, 내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이 의사결정과 선택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당시 믿음이 좋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의 실상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2:43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누가복음 16:14에서는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이라고 하시며, 영생을 얻고 싶어 예수님을 찾아 왔던 부자 청년 관원은 자기 소유가 의사결정과 선택의 중심이었고,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자신이 지지받는 세력이 중심이었습니다. 반면에 선지자나 왕들, 예수님의 제자들, 일반 성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사람들은 자기 의사결정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본문의 선지자 생도의 아내는 인생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인생의 위기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내 삶에서 결단과 선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선택한 것을 성실하게 실행하는 것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이, 아무리 좋은 자기 결의와 선택이 있었다 할지라도 생활에서의 실천이 없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생도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구한 것은 최선의 결정이자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내놓은 해결책이 ‘빈 그릇을 잔뜩 구해와서 집에 있는 기름병의 기름을 부어라.’라는 것이었습니다. 황당한 해결책입니다. 빚을 갚아 주던지, 모금 운동하던지, 선생님이 그 빚쟁이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등. 적극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생도 아내는 엘리사의 말에 어떤 의문도 표하지 않고, 즉시로 두 아들과 함께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본문 5절에서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라고 그의 행동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본문 6절입니다.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NIV 영어번역 성경에서는 “그릇에 다 찬지라.”라는 구절을 “When all the jars were full.”(모든 그릇이 가득 찼을 때)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도 아내가 준비한 모든 그릇에 가득하게 채우셨습니다. 앞서 읽었던 시편 81:10을 다시 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이 말씀처럼, “네 입을 크게 열라.”라는 구절은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역량으로 준비하라.’라는 의미입니다. 만일, 어떤 물품을 담으려고 한다면 먼저 그 물품을 담을 그릇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혜로운 것에 적용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원하면서 그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준비에는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좋은 기업에 취업하려면 그에 합당한 실력과 능력을 준비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 외국 기업에 취업하려 하면서 외국어도 준비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상적인 실력과 능력을 준비하고 동시에 영적인 능력도 갖추어야 합니다. 영적인 준비는 하나님과의 교통과 교제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온전하게 맡기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말씀과 기도의 삶이며 예배의 삶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망은 내가 준비하고 키워가야 할 비전입니다. 빌립보서 2:13에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하시며, 시편 21:2에서는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소원이 있다면 비전을 품고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그릇에 다 찬지라.”라는 말씀의 또 다른 의미는 ‘충만하게 채우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자비하시고 인자하신 아버지이십니다. 마태복음 7:9-11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을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6:38에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재능과 능력을 갖추십시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채워주실 것입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혹 내가 구한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면, ‘NO’라고 답하실 것입니다. ‘안돼’, ‘NO’라고 거절하신 것도 응답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달라.’라고 하나님께 구했을 때, 하나님은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신 3:26)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이 자신의 고질병을 고쳐달라고 세 번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라고 하시며, 고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응답이라도 감사함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영과 육신의 모든 삶에 충만하게 채우십니다. 그래서 먼저는 영적인 의사결정과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한 것을 생활 속에서 순종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받을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한 그릇에 가득하게 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신뢰하여 우리가 준비한 그릇에 가득 채우시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