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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가치관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380회 작성일 2022-09-14 19:26

***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가치관 / 신명기 30:15-20

 

신명기 30:15-20,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한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 들어가는 말

 

우리 옛말에 “재주가 많으면 굶어 죽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어느 한 방향을 목표로 달려가지 못하고,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하다가 어느 하나도 이루지 못함’을 일컫습니다. 이렇게 방황하는 삶의 이유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은 자기 눈이 보는 관점, 즉 가치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자신이 가진 가치관으로 살고 있을 것입니다. 가치관이라는 것은 정말 무섭습니다. 예컨대, 내가 원하는 어떤 것에 집중하게 되면, 주변에 어떤 것이 있어도 스쳐 지나갈 뿐,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기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따르게 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만났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도마에게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다.’라고 하자,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1:25)라고 했습니다. 이는 도마에게 ‘자기 확신’이라는 ‘자기 경험적 가치관’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지금의 많은 그리스도인도 도마처럼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잘 믿지 못하는’ 자기 경험적 가치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기 가치관이 중요함은 오늘 본문 말씀처럼, ‘생명과 복, 사망과 화’를 가르는 인생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치관은 어떤 방향입니까?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가나안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이 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정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이 내용이 신명기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전한 모세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음을 결정하라고 합니다. 본문 15-18절을 봅시다.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한 것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의 땅인 가나안에서 생명과 복을 누리기 위하여 가져야 할 영적 가치관을 가르칩니다. 우리 인생은 매일, 매 순간이 선택하는 삶입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렇게 생사화복(生死禍福)을 가르는 가치관과 선택이 크고 중요한 것만 아니라, 작은 것에도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즉 매일의 생활에서 나타내는 자기 가치관이 생사화복을 결정짓게 됩니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치관은 어떤 것입니까?

 

2001년 9.11테러 사건이 있고 난 뒤, 전 세계가 출입국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이탈리아로 출장을 갔다가 일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하여 출항시간이 임박하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공항의 검색이 까다롭기로 유명하여, 세관, 이민국, 외화 반출 검사대, 마지막으로 면역검사까지 네 번을 거친다고 합니다. 이 사업가는 비행기를 놓칠까 봐 안절부절못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그때, 사업가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안쓰럽다는 듯 어깨를 툭툭 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선생님이 탑승하기 전까지는 비행기 문이 절대로 닫히지 않을 것입니다. 원래 이 공항의 수속 시간은 오래 걸립니다.” 이 사업가는 황당하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당신이 무엇을 믿고 그렇게 장담하느냐?”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사람이 한마디 했습니다. “제가 그 비행기 기장입니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장의 시각으로 봤을 때, 사업가의 조급함이 안 해도 되는 걱정을 사서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겠지요. 우리 인생이 가진 세상적인 관점과 가치관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도 그런 마음이시리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사야 45: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이 말씀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생의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시는 주권자이시니, 모든 관점과 가치관을 하나님께 두라는 것입니다. 잠언 16:9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고 하시며, 잠언 19:21에서도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본문 19-20절에서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이 선언의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도 변함없이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생명과 복을 누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과 복을 누리는 가치관입니다.

 

그러면, 본문 17-18절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가치관과 우리 인생이 추구하는 가치관은 어떻게 다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이 나름대로 자기 가치관으로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삽니다. 그런데도 별 성과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삶이 즐겁거나 만족한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혼자서 바쁘고 조급해서 안절부절못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이 아니면 도무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거나, 자기 확신이 서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믿으려 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가치관입니다. 예컨대,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바벨탑을 쌓던 대홍수 후의 사람들이 가졌던 가치관이 있습니다. “,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고,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3-4) 이들의 의도는 ‘이제 다시는 대홍수로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하자.’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중심의 가치관입니다. 이 사람의 자기중심적 가치관에 관하여 로마서 10:2-3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런 자기중심적 열정은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아무런 영향력도 주지 못합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가치관에 관하여 로마서 12:2에서 밝힙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즉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가치관의 중심으로 삼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가치관입니다.

 

※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가치관은 어떤 것입니까?

 

요한일서 2:15-17을 봅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라는 말이 ‘세상의 것들을 모두 미워하고 사용하지 말라.’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5:9-10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숭배 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사람을 사귀는 일만 아니라, 세상의 것들에 관하여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것들의 우선적인 가치관을 하나님께 두라는 것입니다. 우선적인 가치관을 하나님께 둔다는 것은, 실제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황금률인 미가 6:8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 말씀대로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정의로운 삶이 실천적 우선적 가치관입니다. 예전에 한 번 말씀드린 예화입니다.

 

2001년 제58회 베네치아 영화제에 출품되어 많은 상을 받은 ‘버스 44’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2001년에 만들어진 10분 정도 분량의 중국영화입니다. 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중국의 한적한 시골길을 버스가 달리고 있습니다. 44번 버스입니다. 기사는 젊은 여성이고, 버스 안은 승객들로 빈자리가 거의 없이 가득 태우고 미루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달리고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길가에서 오랫동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가운 마음으로 탑승합니다. 한참 후, 두 남자가 길을 막고 버스를 세웠습니다. 두 남자는 서둘러 버스에 올라타더니 강도로 돌변합니다. 그들은 흉기를 들고 폭행하며 승객들의 금품을 털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버스 기사를 밖으로 끌어내 성폭행했습니다. 조금 전에 탔던 젊은이가 내려 사내들을 말리려 쫓아갔지만 도리어 사내가 휘두른 흉기에 다리를 찔렸습니다. 버스 안의 승객들은 남의 일 구경하듯 그저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두 사내는 뺏은 금품이 든 가방을 메고 달아났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버스 기사가 버스에 올라 ‘왜 나를 도와주지 않았느냐?’는 슬픈 눈길을 승객들에게 보냈으나 승객들은 그 눈을 피합니다. 운전석에 앉은 기사가 핸들에 머리를 묻고 흐느낍니다. 그러는 사이 다리를 다친 젊은이가 절뚝거리며 다가와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며 버스에 오르려고 하자, 그녀는 그가 버스에 타지 못하도록 급히 문을 닫고 버스 안에 있던 젊은이의 가방을 차창 밖으로 던져줍니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했습니다. 어리둥절한 젊은이는 멀어져가는 버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합니다. 얼마 후, 젊은이는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탑니다. 잠시 후 그 한적한 시골길에 경찰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급히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참혹한 교통사고 현장이 보였습니다. 버스가 낭떠러지로 추락하여 기사와 승객 모두가 사망했습니다. 사고 버스는 바로 조금 전에 자신을 버려두고 떠난 44번 버스였습니다. 여성 기사는 그 젊은이만 남겨두고 자신이 성폭행당할 때, 방관한 승객 모두를 죽음으로 끌어간 것입니다.

 

버스 승객들은 자신의 무사안일을 위하여 버스 기사가 성폭행당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았습니다. 그들은 인간다움과 정의로움보다는 자신의 안일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승객들의 가치관은 이타적(利他的)이 아니라 이기적(利己的)이고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무사안일이 아니라 곧 죽음이었습니다. 오늘 수많은 사람이 이렇게 한 치 앞도 알지 못한 채 오로지 이기적인 삶의 목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잠시 잠깐 사는 육신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인 영적인 삶에 대한 가치관이 점점 희미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살기 위하여 생명과 복을 선택하라.’라고 신신당부하십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세상을 정의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분명하게 가져야 할 가치관이 ‘하나님 중심’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세상이 비록 부정함과 쾌락, 자기중심적 가치관이 판을 치고 있지만, 우리는 생명과 복을 선택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영의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서 영적인 가치관으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진정한 승리의 날까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 가치관으로 생명을 지켜가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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