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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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를 뛰어넘는 신뢰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168회 작성일 2022-08-23 20:46

*** 염려를 뛰어넘는 신뢰 / 누가복음 12:22-32

 

누가복음 12:22-32,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 들어가는 말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서 밝은 모습을 보기 어려움을 느낍니다. 웃지만 무엇인가 공허한 느낌이 들고, 해맑고 투명한 기쁨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무언가 마음을 덮고 있는 근심거리들이 있는 듯이 보입니다. 지금은 정보의 홍수 시대라고 하듯이, 10세기 때의 100년 동안의 정보가 지금에 와서는 단 하루에 생성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만큼 현대인들이 염려하고 걱정할 것들이 많아졌다는 의미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미국 청년의 수가 30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염려와 불안에 빠져 심장병으로 죽은 미국 시민들이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미국의 철강 재벌인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일에 있어서 보통 사람보다 3배의 능률을 낸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보통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려면, 일하기 전부터 염려하기 시작하여, 일하면서도 염려하고, 일을 마친 뒤에도 염려하지만, 나는 일하는 동안에 한 번만 염려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염려나 근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도리어 불신의 죄만 되므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6절에서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라고 하십니다. 염려와 근심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가 되므로 내 마음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염려와 근심에 관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 6:25-34과 병행 구절을 이룹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라고 시작하여, ‘산상수훈’이라고 부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6:17에서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라고 시작하여 ‘평지설교’라고 부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여러 장에 나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내용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전하시던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 종들이나 여인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의식주(衣食住) 문제, 즉 사람이 사는데 가장 기본적인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들에게 까마귀나 백합화를 예로 들면서 사람들을 이해시키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이들에게 필요한 의식주 문제를 아신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의식주 문제가 있으면 의식주에 관하여 구해야 하겠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우치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그리스도인도 눈앞에 보이는 환경과 상황에 대하여 구하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이유를 본문 앞쪽의 4-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세밀한 부분까지도 아시므로 염려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 우리는 무엇을 염려합니까?

 

미국 ‘위스콘신’ 주의 ‘먼로 병원’ 원장인 ‘신들러’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류머티즘의 30%는 신경의 긴장으로 압박을 받는 근육들의 고장으로 생긴다.” 그리고 “피부병의 33%와 쓸개 병의 50%는 내적인 생활의 혼란에서 일어난다.”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현대인의 모든 질병의 절반은 신체조직의 고장에서 생긴 것이기보다는 마음의 염려로 말미암는 생활의 혼란에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혼란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궁지로 몰아갑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앞과 뒤에 높은 담을 쌓아놓고, 그사이에 갇혀 무능하게 주저앉을 때가 많습니다. 뒤에 있는 담은 어제에 대한 후회이며, 앞에 있는 담은 내일을 위한 염려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염려를 두고 ‘아무런 소득이 없는 헛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5절에서 ‘키 작은 것을 염려한다고 키가 커지겠느냐?’라고 반문하십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염려와 걱정으로 자신의 평화로움을 스스로 깨뜨립니다. 그래서 삶의 길을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갈등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로마서 7:19-23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오랫동안 염려에 빠져 있지 않고 빠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록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25절에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지금 마음속으로 자신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도 생활에 대한 염려가 가장 많을 것이며, 더욱이 지금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염려는 인간 세상이 존재함으로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공통된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에는 5초에 3명, 1분에 34명, 1일에 5만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염려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거의 80억의 세계 인구 누구에게나 자기 나름대로 걱정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산다는 것 자체가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이 걱정거리들은 환경이 좋을 때는 잠시 주춤하다가 상황이 어두워지면 온통 삶을 짓누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누가복음 21:34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그런데도 여러분은 마음에는 어떤 염려들이 쌓여 있지요? 그 염려를 해결할 방법은 가지고 있습니까? 이 문제의 답을 하나님께서는 ‘’하찮은 생명인 까마귀와 백합화까지도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사람을 돌보지 않겠느냐?라고 제시하십니다. 즉 염려를 뛰어넘는 해결 방법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 어떤 신뢰로 염려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까?

 

미국의 ‘종교 및 정신의학재단’이라는 단체의 공동 창설자인 ‘브랜튼’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박사는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하여 작가인 ‘아더 골든’을 만난 자리에서 ‘아더’의 근심 어린 모습을 보고 물었습니다. “아더, 무슨 일이 있었소?” 그러자 작가는,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내 과거를 돌아보면서 ‘만약에 이러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브랜튼 박사는 식사 후에 자기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박사는 사무실에서 녹음기를 틀어서 들려주었습니다. “이 테이프에는 세 사람의 말이 녹음되어 있다네. 모두 내가 치료한 환자인데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봐요.” 골든 씨는 거의 1시간 동안 테이프를 다 들었습니다. 그러자 브랜튼 박사가 물었습니다. “그들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는지 말해주겠소?” 아더 골든은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박사는, “그렇다면 내가 말해주겠소. 그들은 모두 ‘만약… 만약… 만약…’이라는 말만 늘어놓고 있다네. 이 말 때문에 정신병이 생긴 것이오. ‘만약’이라는 가정은 마치 독약과도 같지요. 이런 사람들은 ‘다음에는…, 다음에는…, 다음에는…’이렇게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해요. ‘다음에는’이라는 말은 소망을 의미하고, 치료를 의미하고, 건강을 의미한다네.”

 

사람들의 두 가지 병폐는 1) 지나간 일들을 후회하는 것이며, 2)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염려라고 했습니다. 후회란? ‘만약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차라리 이렇게 할걸!’ 등과 같이 ‘이미 지나가 버려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염려란, ‘만약 …한다면!’이라는 미래에 대한 온갖 가정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걱정들이 우리 생활에 도움을 주는 부분이 있습니까? 지나간 일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밖으로 흘러가 버린 것이어서 삶에 있어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시편 55:22절에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도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7절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라고 했습니다. ‘돌보심이라.’라는 말은 ‘돌보다.’, ‘관심 둔다.’라는 의미로서, 전체의 뜻은 ‘염려가 주님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돌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에 우리의 모든 걱정과 염려를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염려를 뛰어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뛰어넘습니까? 빌립보서 4:6절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라고 하십니다. “맡긴다.”라는 것은, 하나님께 구할 것을 사실대로 아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룀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뢰면 하나님께서 맡아주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의심은 맡기지 못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어서 맡기지 못하는 사람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5:7절입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라고 하시며, 신명기 32:39절에서는, “이제는 나 곧 내가 그 인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친히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는 것입니다. ‘맡김’의 뜻은 ‘내던지는 것’입니다. 마치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볼을 상대 팀 타자에게 힘껏 던져 버린 다음의 상태와 같습니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잘 던져졌든 못 던져졌던 더는 투수의 몫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 생활의 모든 염려를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내던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어 맡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렇듯이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돌보십니다. 이렇게 자기 염려와 걱정거리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돌보심(Care)을 받습니다.

 

이 사실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사무엘상 1:9절 이하에 있습니다. 바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야기입니다. 한나가 자식이 없으므로 조롱을 받자, 마음이 괴로워 하나님께 기도하며 통곡했습니다. 그때, 엘리 제사장이 ‘한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기를 원한다.’라고 축복했습니다. 그 후, 한나는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다.’라고 증언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믿음대로 돌보시고, 한나의 태를 열어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염려와 걱정은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김으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30-32절에서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므로 기도와 간구로 아뢰면 됩니다. 맡긴 이후에는 걱정하지 않아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온전한 신뢰가 우리의 모든 염려와 근심을 뛰어넘게 하십니다. 잠언 3:6절에서 약속하십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라고 말입니다.

 

비록 지금 세대가 힘들고, 온갖 부정과 부패, 쾌락으로 얼룩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영의 세력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너뜨리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머리카락 한 올도 손대지 못하게 지키십니다. 본문 앞쪽의 6-7절을 다시 한번 봅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며, 온 생애를 맡김으로써, 모든 삶에 강건함과 형통함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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