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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삶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158회 작성일 2022-06-21 17:23

*** 신앙의 삶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 / 마태복음 5:13-20

 

마태복음 5:13-20,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들어가는 말

본문 말씀은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알고 있지만, 생활에서 실행되기가 어려운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의 내용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실천’입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일은 이론과 실천이라는 두 과정이 있습니다. 이론(理論)이라고 함은, 하고자 하는 일의 개념과 순서와 실현을 위한 정립 과정이며, 실천(實踐)은 정립된 이론을 행동으로 나타내어 결과를 내는 과정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아픔이나 슬픔, 기쁨 등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만, 실생활에서 경험하지 않으면 실제의 느낌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배고픔을 어떻게 설명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을 어떻게 이론으로 표현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는 삶에서 경험하지 않으면 그 진가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라고 하십니다.

 

어느 결혼식에서 축하 순서가 있었는데, 피아노 5중주(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의 축하 연주였습니다. 연주곡목은 ‘조바니 마르티니’의 유명한 노래인 ‘사랑의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트윈폴리오’가 불렀었는데, 곡목은 사랑의 기쁨이지만 가사는 제목처럼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어느 듯 해지고 어둠이 쌓여오면 서글픈 눈물은 별빛에 씻기네…” 이 가사 내용을 신랑 신부가 알았더라면 기절할 노릇이지요. 그런데 피아노 5중주의 연주는 감미롭고 가슴이 뭉클하여 사람의 가슴을 녹이는 것입니다. 내심 ‘어떻게 저런 곡을 결혼 축가로 연주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제목이 그렇고 맬로디가 좋으니까 사용하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아무튼,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트윈폴리오’가 부른 ‘웨딩 케잌’이라는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목이 그래서 그런지 종종 결혼을 축하하는 곡으로 사용됩니다. 이 가사도 만만찮습니다.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잠 못 이루고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사람은 간 곳이 없고 외로이 남아 있는 저 웨딩 케익 그 누가 두고 갔나 나는 가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가네 그대 아닌 사람에게로…”

 

이 이야기를 서두에 하는 이유는 ‘현실과 감정’, ‘현실과 이상’이 다른 세계를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사람에게 이상(꿈)과 다른 현실은 생동감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살기 위해서 먹고, 먹기 위해서 사는’ 그런 의미 없는 삶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의 세계도 같습니다. 많은 신앙인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활에서 나타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즉 자신의 신앙적인 이론과 실제의 생활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14-17절에서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라고 하십니다. 즉 신앙은 곧 삶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3-16절에서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나타내야 할 실천적인 삶으로 ‘빛과 소금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이어지는 17-20절에서는 이 말씀이 확고부동한 하나님의 뜻임을 나타내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한다면 반드시 삶에서 나타내야 함을 말씀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소금과 빛에 대한 비유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미합니다. 소금과 빛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소금과 빛의 역할은 그리스도인들이 생활의 현장에서 나타내야 할 행위입니다. 소금이 의미하는 것은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중요한 의미는 맛을 내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4:6절에서 “소금으로 맛을 내다.”라고 하셨으며, 맛을 낸다는 것은 ‘지혜롭고 은혜로운 말로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소금은 변질과 부패를 방지하는 순수성과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빛이 의미하는 것은 시편 104:2절에서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라고 하셨고, 요한일서 1:5절에서는 “하나님은 빛이시라.”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빛은 죄악과 거짓을 나타내는 어둠과 대조되어,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를 의미하며, 야고보서 1:17절에서 하나님을 “빛들의 아버지”라고 표현했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는 이어서 율법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율법은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법을 일컬으며, 다른 말로는 ‘행위법’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모든 법은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소금과 빛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이어서 율법을 말씀하신 이유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삶에서 소금과 빛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그러면 신앙과 삶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습니까?

 

인터넷 뉴스사이트 가운데 ‘뉴스엔조이(newsnjoy)’라는 곳이 있습니다. 기독교 언론계 기자들이 만드는 인터넷 신문입니다. 이들은 한국 교회의 새로운 갱신을 목표로 삼고 있는 젊은 기자들입니다. 이들은 진보성향(좌파언론)으로 교계의 미움을 받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그들이 분석한 자료만 보면 이렇습니다. 몇 년 전에 ‘현재 한국 개신교의 위기’라는 분석 자료를 실었습니다. 개신교가 불교 신도보다 통계상 숫자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개종자가 많다.’라는 통계가 나옵니다. 즉 기독교에 들어왔다가 다른 종교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에 다니다가 교회에 실망하는 숫자가 많아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교회공동체가 신분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도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외국에서 한국 교회를 볼 때 두 가지에 놀란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의 엄청난 숫자와 급성장에 놀라고, 사회적 무책임함에 또 한 번 놀란다고 합니다. 이는 한국 교회가 신앙을 삶에서 나타내지 못하고 이론적으로만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삶에서 나타내야 할 신앙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나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16-17절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즉 우리는 영광과 고난, 슬픔과 기쁨을 주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본문 13절에서 “너희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너희”라고 함은 곧 하나님의 자녀들을 의미합니다. 즉 ‘소금’이니, ‘빛’이니 하는 비유적인 표현들은 ‘그리스도인’을 말하며, 소금과 빛의 역할은 ‘그리스도인이 나타내야 할 신분적인 일들’을 의미합니다. 결국, 소금과 빛으로서의 신앙과 빛과 소금의 역할인 생활에 대한 조화가 13절의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는 말씀과 16절의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는 말씀에 들어있습니다. 짧게 표현하면, ‘너희 삶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라.’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산다.’라는 말은, 세상 사람의 표현으로는 ‘환심을 산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다운 행실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라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서울 성수 고등학교의 권정은 선생님이 특별한 실험을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의 영향력에 관한 실험이었습니다. 실험을 위하여 2개의 유리병을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 유리병에는 '감사합니다.'를 쓰고, 다른 병에는 '짜증나'를 써 놓았습니다. 이 두 병을 교실 뒤에 놓고, 학생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감사합니다.’라는 병에는 '고마워' '사랑해' '좋아해' 라는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고, ‘짜증나’ 병에는 '미워' '싫어' '짜증나' 등의 부정적인 말을 하게 했습니다. 3주 후에 실험의 결과를 보기 위해 병을 열었는데, 선생님도 학생들도 모두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병에는 구수한 냄새가 나는 ‘누룩곰팡이’가 가득했고, '짜증나' 병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나는 ‘시커먼 곰팡이’가 가득했습니다.

 

이 실험이 보여 주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와 표현의 중요성입니다. 한갓 미물이라도 자신에 대한 환경과 사람들의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요즘 식물을 재배하는 농장이나 가축의 막사에 음악을 틀어 준다고 합니다. 하물며 사람들은 어떠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서로의 표정과 말에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여러분도 많이 느끼시겠지만, 서로 대화할 때, 관심이 있는 사람은 몸이 앞쪽으로 기울어지고, 관심이 없고 싫어할 때는 몸이 뒤로 멀어진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대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말 한마디, 나타내는 표정 하나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마태복음 12:3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하시며, 에베소서 4:29절에서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라고 하십니다.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은 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속에서 실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는 세상에서 사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법을 실천하여 나타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모이기를 힘쓰고, 우리가 먼저 서로 돌아보며, 이해하고 넓은 마음으로 배려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빛과 소금의 역할이며, 하나님의 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매그너스 요양병원에는 특별한 의사가 있습니다. 1926년생으로 2020년에만 해도 살아계셨는데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우리나라 최고령 의사인 ‘한원주’ 여사입니다. 가족들도 힘겨워하는 치매 노인들을 위해 일하면서 요양병원에서 받는 월급 대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주말이면 외국인 무료 진료소에서 자원봉사하고, 주기적으로 해외 의료봉사도 다닙니다. 한원주 의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만 가지고도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위로만으로도 병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대의(大醫, 위대한 의사)는 역시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말하자면 토탈 힐링(total healing)을 하는 그 상태가 대의의 직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비록 힘들고 수입이 적을지 몰라도 역시 우리 의사가 가야 할 길은 그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원주 의사는 큰 것을 말하지 않고, 다만 사랑과 위로, 이것으로 병이 호전될 수도 있고 나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랑과 위로의 삶이 힘들고 수고로울지라도 그 길이 진정한 의사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정작 이러한 삶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나타내야 할 삶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배려와 위로는 돈이 드는 것도 아니며, 힘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어느 분이 말하기를,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과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이 큰 은혜를 우리도 받았습니다. 로마서 13:8절에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별 것 아니라고 여기는 좋은 말 한마디로 이루는 작은 이해와 관용, 배려와 위로, 관심은 이론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실천하고 경험함으로써 느끼게 됩니다. 이를 실천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기적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이 생활에서 행동으로 나타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실천되는 삶에는 엄청난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으며,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하신 요한복음 13:35절의 말씀처럼, 우리 삶에서 실천되는 신앙으로 우리의 생활에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기쁨과 기적이 나타나는 능력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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