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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인간관계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204회 작성일 2022-05-17 14:30

*** 완전한 인간관계 / 에베소서 5:22-6:9

 

에베소서 5:22-25, 6:1-9,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 들어가는 말

 

미국의 극작가이자 배우였던 ‘존 하워드 페인(John Howard Payne)’은 가정을 가져본 일이 없는 방랑자였습니다. 그는 ‘가정무용론’을 주장하며 고향과 조국을 떠나 방랑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방랑 생활에 지쳐 있던 1823년 어느 날, “나에게도 가정이 있다면…”이라고 울먹이면서 가정을 그리워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평생 가정을 이루지 못했고, 1852년 4월10일 낯선 타국 알제리에서 단란한 가정을 그리워하면서 쓸쓸하게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가 숨을 거두면서 “내가 돌아갈 가정은 없지만, 고향에 있는 공동묘지에라도 묻히게 해 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가 지은 가사에 영국의 작곡가 ‘헨리 로우리 비솝’(Bishop, Henry Rowley,1786.11.18- 1855.4.30)이 작곡하여 지금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이며, 전 세계인이 애창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노래입니다. 가사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내 벗 내 집 뿐이리.’

 

이 노래 가사에는 이 세상에 무엇보다 소중한 ‘가정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가정무용론을 주장하던 사람이 오늘날 세계인이 애창하는 ‘가정을 그리워하는 시’를 지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은 역시 가정이고, 가정을 떠나서는 행복할 수 없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 속에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친히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 사람을 ‘아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쓸쓸하고, 보시기에 좋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갈비뼈 하나를 뽑아서 그 뼈를 바탕으로 또 다른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깨어나서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여자’라고 불렀습니다. 창세기 2:23절입니다. (현대어성경)“그러자 그가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이렇게 소리 질렀다. `아니, 이게 누군가? 이제야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다니! 이 사람은 내 뼈에서 나온 뼈 아닌가? 내 살에서 나온 살 아닌가? 지아비인 내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 불리리라.” (지아비는 히브리어로 `이쉬', 지어미는 `이솨') 이것이 인류 최초의 가정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이 지탱해 갈 수 있는 가장 큰 비밀스러운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이 질서는 ‘연합’이라는 것입니다. 즉 두 사람이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24절에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질서인 ‘온전한 연합’이라는 것입니다. 이 질서는 사람의 행복과 완전한 인간관계를 위하여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의 많은 사람이 행복을 원하고, 완전한 인간관계를 꿈꾸지만, 파랑새를 찾아다니듯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다니며 가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찾아다니는 완전한 인간관계와 그로 인한 행복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말씀을 통하여 살펴봅시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기록했으며,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에베소서의 특징은 내용적인 면에서 주님과의 거룩한 교제로 기록된 것이며, 특히 하나님의 구원사, 그리고 교회의 본질에 관하여 깊이 있게 나타내는 중요한 편지입니다. 그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상은 특히 중요합니다. 에베소서는 인사말과 맺는말을 빼면 크게 둘로 나뉘는데, 전반부인 1-3장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하여, 후반부인 4-6장에는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인 내용 중에서도 가정과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의 본질을 나타냅니다. 아내들에게, 남편들에게, 자녀들에게, 부모들에게 그리고 종과 상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명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전합니다. 즉 우리는 모든 생활의 모습과 생각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기 때문에 이렇게 행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명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가정과 사회가 행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하나님께서 명하신 인간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무엇이 행복인가?’라는 책을 저술한 미국의 교육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랜트(William James Durant)’는 행복을 찾아보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는 퓰리처 상을 수상한 학자로서 깊은 연구와 학식에서 행복을 찾아보았지만, 지식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행을 해보았지만 권태감만 몰려왔습니다. 재산을 모아보았으나 오히려 걱정과 불화가 찾아왔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저술에 몰두했지만 피곤함만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듀랜트는 생각에 잠겨 주위를 멍한 시선으로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만치에 작은 자동차 안에서 잠든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이 보였습니다. 잠시 후에 열차가 도착하고 한 남자가 기차에서 내려 자동차로 다가오더니 아기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여인과 아기에게 입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족을 태운 차가 조용히 떠나는 것을 보며 듀랜트는 자신이 본 모습이 행복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이처럼, 가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행복의 출발점이자 가장 완전한 인간관계의 모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명하신 인간관계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아이들의 유행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공부, 공부, 하는 부모들에게 항변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가정의 행복한 인간관계는 많은 재물이나 사람의 욕망이나 안락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잠언 17:1절에서,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했으며, 잠언 15:16-17절(현대어성경)에서는 “가진 것 많지 않아 비록 가난하여도 여호와 모시고 살아가는 나날은, 가진 것 많아 걱정거리 많은 부자들보다도 행복한 나날이라. 값싼 채소만 먹고 살면서도 서로 우애 있게 아껴 주며 사는 것이, 값비싼 갈비짝 뜯으면서도 서로 못 미더워 증오하는 것보다 행복하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가정의 질서와 행복을 이루는 인간관계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본문 6:1-4절에서 이 내용을 분명하게 나타내십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 이 말씀의 핵심은 “주 안에서” “주의 교훈과 훈계”라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가정에서의 부모와 자녀에 관한 완전한 인간관계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관계입니다.

 

가정의 또 다른 인간관계이자 질서는 부부의 관계입니다. 이 내용은 본문 말씀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본문 5:22-25, 28절을 봅시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주님께서는 부부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중요한 표현을 하셨습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부부의 관계는 하나님 앞에서 중요합니다. 부부에 대한 사도 바울의 권면을 봅시다. 고린도전서 7:2-5절입니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주님의 명령이 아니라 허락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부부관계에서의 인간관계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기본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어떠합니까? 이 관계는 본문 6:5-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5절과 9절을 봅시다.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 관계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사용자와 노동자와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에서도 핵심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관계입니다. 노동자는 사용자에 대하여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며, 사용자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을 생각하며 노동자를 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현실에서 이루어야 할 인간관계는 어떠해야 합니까?

 

본문의 구조는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종과 상전 등. 둘씩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먼저 따르는 위치에 있는 자가 해야 할 일을 가르치고, 다음으로 인도하는 위치에 있는 자가 해야 할 일을 가르칩니다. 즉, 각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 완전한 인간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먼저, 따르는 자들은 아내들과 자녀들과 종들(노동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따르는 자로서의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종들은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해야 합니다. 이 말씀에서 보듯이 생활을 주관하는 영적인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따르는 자들은 따르는 자로서 자신의 모든 직임을 주님께 하듯이 성실하게 행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인도자들이 언급됩니다. 인도자들은 남편들과 부모들과 상전들(사용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인도자로서의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남편들은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주심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특히 부부는 한 몸임을 말씀하시면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편들을 위하여 긴 설명을 곁들인 것은 당시 남편들의 횡포가 심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화나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욕망으로 자녀를 양육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상전들은 일군들에게 주께 하듯 성실하고 정직하게 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종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상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역시 여기서도 생활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인도자라고 군주적인 군림의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되며, 따르는 자라고 비굴한 굴복의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주된 핵심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맡기신 삶의 자리가 다르므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따른 역할 분담입니다. 그러므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7:3절에서는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명하시는 완전한 인간관계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할 때 이루어집니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생각하여, 자기 생각과 욕심대로 아이를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는 부모를 거울삼아 자라게 됩니다. 부모의 욕심으로 자란 아이는 자신도 자신의 욕심을 먼저 앞세우게 되며 부모보다 자기 생활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완전한 인간관계를 이루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어떻게 생각하면 ‘요즘 이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있어! 이렇게 하다가는 혼자 바보가 되는 것 아닌가!’라는 마음도 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직하게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보상으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자녀로서, 부모로서, 직장인으로서, 사용자로서,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면 분명히 행복이 가득한 가정과 사회의 완전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기쁨과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아름다운 가정과 사회를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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