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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택과 보상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305회 작성일 2022-03-07 16:32

*** 믿음의 선택과 보상 / 히브리서 11:23-29

 

히브리서 11:23-29,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 들어가는 말

 

시편 49:20절에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장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매사에 존귀한 존재로서 합당하게 선택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일어나자마자 시작하여 온종일 계획하고 결정하는 일이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일 혹은 중요하거나 일상적인 것을 막론하고 모든 일을 선택하고 결정하게 됩니다. 먹는 것부터 입는 것, 이동 수단, 만남, 대화 등등.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예전에 어느 광고에서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합니다.’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선택하는 것에는 생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선택과 결단이라는 과정을 반복하며 삽니다.

 

‘Decision Pyramid(피라미드 결단)’라는 학설에서는 인간의 선택을 중요도에 따라서 세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Ordinary everyday decision인데, ‘일상적 결단’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무슨 옷을 입고 갈까? 무슨 음식을 먹을까? 누구를 만날까? 교회에 가야 하나, 결혼식에 가야 하나?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등등. 일상생활에서의 선택과 결단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Middle level decision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중요한 결단’을 말합니다. 전공과목은 뭘 택해야 하나? 나는 한평생을 무엇으로 이바지하면서 살 것인가? 누구와 결혼할까? 어떤 직업을 택할까? 등등. 자신의 평생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선택과 결단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Real important decision이라고 하는데, ‘결정적인 결단’을 말합니다. 이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결단입니다.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생명을 건 선택을 하는 것, 순교자의 삶, 희생적인 삶 등. 자신의 생명과 직결된 선택과 결단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중요도에 차이는 있지만, 매일 매 순간을 선택과 결단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갑니다. 이러한 선택과 결단의 삶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따라서 책임을 지게 됩니다. 마태복음 16:27절에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일상생활의 선택이든지 생명을 건 중요한 선택이든지, 그 모든 선택과 결단은 자신이 해야 하며, 그 결과에 대한 보상이나 징벌 같은 책임도 자신에게 있습니다.

 

※ 본문 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을 포함하는 히브리서 11장에는 용기와 지혜와 믿음이 돋보이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모세의 부모와 모세가 그러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이 행한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지혜로운 선택이었음을 강조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모세의 120년 생애 중에서 중요한 두 번의 선택과 위대한 믿음의 행위를 기록했습니다. 첫 번째 선택은 모세 부모의 선택이었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무렵에는 애굽 왕 바로에 의하여 ‘유대인이 자식을 출산할 때에는 아들이면 반드시 죽이라.’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급격히 번성하자 애굽인들이 상대적으로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태어나자 출중한 인물인 것을 알고, 죽일 수가 없어서 석 달 동안을 숨겨서 키웠습니다. 만일 그 사실이 들통 나는 날에는 모세나 모세의 부모마저 생명을 부지하지 못할 일입니다. 모세는 석 달 동안 숨겨져서 키워진 후, 더는 숨길 수가 없게 되었고, 부모는 갈대 상자에 아이를 넣어서 나일강에 띄워 보냈습니다. 마침, 강가에서 목욕하던 바로의 딸이 모세를 발견하고는 양자로 삼았습니다. 이처럼 모세의 부모는 바로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용기 있는 선택을 했습니다. 두 번째 선택은 모세의 선택입니다. 바로의 딸의 양자가 된 후 40년 동안을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왕자로 자라고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이 유대인이며 지금 노예로 고통받는 민족이 자기 민족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작업 현장을 돌아보고 있을 때, 자신의 동족이 애굽인에게 매를 맞는 광경을 보고는 분개하여 애굽인을 죽여 버렸습니다. 다음 날에는 같은 동족끼리 싸우는 광경을 보았는데, 동족끼리 싸우는 것을 책망하며 말렸습니다. 그러자 싸우던 사람이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살인행위가 탄로 난 것을 알고는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모세의 이러한 행동을 본문에서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이러한 모세의 선택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선택이며, 그리스도를 위한 위대한 선택이라고 표현합니다. 모세는 육신을 위한 권력과 평안을 버리고 고난이 따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의 신분을 선택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믿음의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도 이처럼 세상이나 자신의 이익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선택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 우리의 선택 기준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현대신학의 거장인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의 기도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나에게,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을 주시고, 내 힘으로 고칠 수 있는 일에 대하여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이 두 가지 차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는 생활 가운데서 우리의 한계를 벗어난 일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내가 변화시킬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는 일에 대해서 불평하고, 속상해하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니이버는 이러한 일을 평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영국의 ‘조지 5세’는 “하나님이여, 나에게 달의 세계나 엎질러진 우유에 대해 울지 않도록 가르쳐 주소서.”라는 좌우명을 삶의 지표로 삼았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인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순복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한계를 알고 순복(順服)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고집이나 만용을 부리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순복하는 것은 나약함이나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지혜롭고 용기 있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까지도 환경이나 상황을 탓하며 포기하거나 체념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용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비겁한 일이고 나약한 태도일 뿐입니다. 그래서 니이버는 “내 힘으로 고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즉 자신에게 어렵고 힘겨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고칠 수 있는 일이고, 고쳐야 하는 일이라면 담대하게 행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단력을 발휘하는 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모세 부모의 육체적인 현실은 애굽의 노예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인 ‘아므람’과 ‘요게벳’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현실적으로는 애굽 왕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막강한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도 역시 자신이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모세의 부모나 모세처럼 모두 두 종류의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에서의 신분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적인 신분입니다. 갈라디아서 3:28-29절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하나님의 자녀가 우리의 신분입니다. 공부할 때든지, 일할 때든지, 사람을 만날 때든지, 기쁠 때나 슬플 때, 평안할 때나 고통스러울 때, 성공할 때나 실패로 힘들 때나 인생의 위기 때에까지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이 우리가 매일 선택하고 결단하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 믿음의 선택에는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 24절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라고 했습니다. 즉 모세는 바로의 공주 아들로서 호화롭게 살며, 부와 권력이 보장된 자리를 거절했습니다. 사도행전 7:23-25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한글 킹 제임스) “그가 사십 세 되었을 때, 이스라엘 자손인 그의 형제들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지라. 마침 어떤 사람이 부당하게 취급받는 것을 보고서 그를 보호하고, 압제하는 이집트인에게 보복하여 그를 쳐 죽였더라.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으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한 것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했으나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모세의 행동이 의도적이었음을 말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영적인 신분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왕족이라는 신분을 쉽게 거절할 수 있었겠습니까? 현실은 노예라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왕족과 노예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선택했으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현실을 감안하여 적당히 타협만 해도, 그 큰 대국(大國)인 애굽의 왕자로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자기 동족을 위한다고 할지라도 좀 더 좋은 기회를 기다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결단이고 선택입니다. 그러나 바른길을 선택하는 것은 신앙의 용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모세는 세상에서 누리는 한순간의 부귀영화보다 하나님의 상급을 소망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선택에는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한 마리도 못 잡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믿음의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적절한 시기를 알아야 합니다. 적절한 때를 아는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절에서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또 하나, 믿음의 선택에 있어서 우리가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은 보상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본문 25-26절을 봅시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와 즐거움보다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바라보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더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을 아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때를 놓치는 사람입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여 더 가치 있는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더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기 위하여 내려놓아야 할 때를 알고 결단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고 인정받으려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27절에서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소망과 상급을 세상의 권력이나 고통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역대하 17:7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의 믿음의 선택과 결단에는 하나님의 보상이 있습니다. 다만, 모든 선택과 결단에서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프랑스에서 ‘태양 왕’ 이라고 불리는 루이14세 때 있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왕은 신앙이 좋지는 않았지만 주일이면 가족들과 왕족들을 거느리고 늘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왕은 프넬론 대주교가 시무하는 교회에 출석했는데, 항상 교회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습니다. 대주교는 교인들의 마음을 시험해 볼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주일에 대주교는 왕이 나간 다음에 조용히 “다음 주일에는 왕이 못 나오십니다.”라고 광고했습니다. 교인들이 정말 예수님을 믿어서 나오는지 왕에게 잘 보이러 오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다음 주일, 왕과 왕족들이 교회에 왔는데, 교인들이 하나도 없고 대주교만 있었습니다. 왕이 놀라서 “사람들이 모두 어디에 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대주교는 “아무래도 교인들이 예배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폐하를 만나러 오는 것 같아서 제가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지난 주일에 조용히 ‘다음 주일은 왕이 못 나오십니다.’라고 했더니 이렇게 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체면과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신앙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러하셨겠지만, 앞으로는 더욱 매일의 생활에서 그리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선택과 결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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