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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으로 나타나는 참신앙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286회 작성일 2022-03-01 15:58

*** 행동으로 나타나는 참신앙 / 야고보서 2:14-22

 

야고보서 2:14-22,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 들어가는 말

 

요즘 세상은 과학의 발전과 특히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지식이 엄청나게 향상되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 할 때면, 모두가 박사가 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말 아쉬운 것은 ‘아는 것은 많은데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일에도 같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예수 믿는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800만 명이 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인구는 5200만 명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전체 인구의 15%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천한다면 아마도 훨씬 좋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알지만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2절에서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알고 있지만, 믿음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22절에서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알고 믿음으로 실천하는 것이 능력이 되고 복이 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야고보서’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행동, 실천’이라는 개념입니다. 야고보서 전체가 ‘행동하는 신앙’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형제 중 한 사람인 야고보에 의해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진 편지입니다. 기록된 연대는 주후 45~70년까지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내용으로 볼 때,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기 시작한 45~60년경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는 기독교가 유대교와 우상 숭배자들에 의하여 박해가 시작된 시점이어서 신앙을 지키기가 어려워지고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환난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위로하고 격려함과 동시에, 신앙에 도취하여 행위를 무시하는 자를 경계하도록 강조합니다. 즉 1:22절처럼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여 자기를 속이는 자가 되지 말고 이를 행하는 자가 되라.’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신앙만을 중시하고 행위를 경시하고 있음’을 경계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아! 어리석은 사람아! 너도 행함이 없는 믿음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고 싶은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 아닌가? 너희가 본대로 그의 믿음에 행함이 따랐기 때문에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이다.”(20-22)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사람이 행동함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24)라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야고보는 박해가 심해지는 환난의 때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행함이 없는 마음속에서의 신앙만 가지는 것은 죽은 것이라고 말합니다(2:26). 이와 같은 사실을 본문 말씀에서는 실제적인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이같이 ‘신앙이 실제적인 면에서 행동하지 않으면 진실도 아니고, 가치도 없다.’라는 것이 야고보서의 주제입니다.

 

※ 하나님께서 행동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읽은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한 시골 병원에 초라한 행색의 부인이 찾아와 애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지금 제 남편이 죽어 갑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의사가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 왕진 가방을 챙겨 들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의사의 눈치를 살피며 이렇게 말합니다. “죄송합니다만 … 선생님께 미리 말씀드리는데, 저는 지금 가진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 의사가 대꾸했습니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사람부터 살려야지요.” 의사는 그 즉시 부인을 따라 어느 낡고 초라한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쓰러져 누운 부인의 남편을 진찰해 보고 나서 말했습니다. “큰 병은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병원으로 돌아온 의사는 부인에게 작은 상자를 하나 건넸습니다. “이 상자를 반드시 집에 가서 열어 보세요. 그리고 이 안에 적힌 처방대로 하면 남편의 병은 금세 나을 겁니다.” 부인은 의사가 시키는 대로 집에 돌아와 그 상자를 열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상자 안에는 처방 약 대신 한 뭉치의 지폐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쪽지에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처방전’ ‘남편은 극도의 영양실조 상태입니다. 이 돈으로 뭐든 드시고 싶은 음식을 사 드리세요.’ 부인은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떨어뜨리며 오랫동안 그 처방전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부인에게 친절을 베푼 이 사람은 평생 사랑의 인술을 펼친 영국의 유명한 의사 ‘올리버 골드스미스’였습니다.

 

이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하는 내용이 본문 15-16절입니다. 만일 의사가 좋은 처방전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 부인은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아무리 훌륭하고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천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본문 20-22절을 봅시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 말씀에서 왜 하나님께서 행동을 강조하시는지를 알려주십니다. 이유는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행함으로 온전하게 되는 믿음의 실례로 아브라함과 여리고의 기생이었던 라합을 듭니다. 본문 다음 구절인 23절입니다. “이에 성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하시며, 라합에 대하여도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행동을 수반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하시도록 하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의 기도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낼 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말만 무성하고 온갖 거짓과 불법이 난무할 때는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참신앙입니다.

 

본문 15-16절을 봅시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돌아보면, 우리도 이 말씀처럼 말로만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때가 많았음을 알게 됩니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파산하여 힘들어 있는데 친구가 와서 ‘잘 돼야 할 텐데.’ ‘앞으로 잘 될 거야. 힘내’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차라리 구겨놓은 쌈짓돈이라도 손에 쥐여주거나,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라도 함께 하는 게 더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휴대전화로 emoticon을 많이 사용하시지요? 축하할 일이 있으면 꽃다발 사진이나, 정말 먹고 싶어지는 케이크 사진을 보내기도 하고, 말 대신 각종 포즈를 담은 그림들을 보내곤 합니다. 예전에 친구 목사에게 ‘그림 말고, 진짜 차 한 잔 줘.’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서로가 바쁜 세상이지만,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글 쓰는 것조차 아껴 emoticon으로 때우는 것이 싫게 느껴집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로만 하는 것을 좋게 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동을 강조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인을 능력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동은 어떤 것입니까?

 

마태복음 25:40절을 봅시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이어 45절입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동은 크고 위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소외되고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물 한 잔이라도 대접하는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42절입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보잘것없는 사람에게라도 그의 목마름을 위해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사랑의 배려를 뜻합니다. 이런 작은 사랑의 배려도 주님이 기억하겠다고 하십니다. 사랑은 가장 가까이서부터, 작은 배려에서 시작됩니다. 앞에서 읽었던 마태복음 25:40절의 원인 구절인 25:35-36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 말씀의 특징은 ‘행동’입니다. 말로만 위로하고 격려한 것이 아니라, 찾아가서 만나주고, 주머니를 털어 사주었고,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이는 그 사람을 생각하여 행동으로 나타낸 작은 배려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전부가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당시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율법 중의 율법인 ‘안식일 법’을 봅시다. 유대인들은 제4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라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6:6-7절입니다.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또 마가복음 2:23-24절입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즉 안식일에는 병을 고친다거나 곡식, 이삭 하나라도 따서 비벼 먹는 행위를 일로 여겨서 못하게 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27-28절입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즉 모든 율법까지도 사람을 배려한 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요즘은 말이 풍성한 시대입니다. “말을 못 해서 죽은 사람 없다.”라는 말도 있고, 지금 세대의 말 잔치를 언어유희(言語遊戱) 또는 말장난이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시대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진실한 삶의 실천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사는 복음 시대에는 사람을 배려하는 진정한 신앙의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잡지 가운데 하나인 ‘라이프’지에 “아름다운 참사랑의 모습”이라는 기사와 더불어 한 페이지 가득 노부부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그 기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잡지사의 사진기자가 영국을 방문하던 중, 어느 날 지하철 대합실 식당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로 앞자리에 노인 부부가 서로 부축하면서 마치 소꿉동무 어린이처럼 정답게 마주 앉았습니다. 남편은 비스킷을 주문하고 아내는 차 한 잔을 주문했습니다. 그 노인 부부의 옷차림으로 보아 퍽 가난한 부부임을 알 수 있었는데, 그들은 누구에게도 개의치 않고 서로 마주 보면서 조용히 서로의 손을 잡고 주문한 것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문한 비스킷과 차가 나왔는데, 남편은 비스킷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고, 아내는 뜨거운 차를 몇 모금 마시면서 남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잡지사 기자의 눈에 신기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비스킷을 반쯤이나 먹은 남편이 갑자기 틀니를 뽑더니 깨끗이 닦아서 아내에게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그 틀니를 자연스레 입에 넣고는 남편이 주는 비스킷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틀니를 빼준 남편은 아내가 마시던 차를 마시며 아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삶에서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실천하는 행동으로 진실함을 알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잠언 27:5절에서 “면책(面責)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표현되지 못한 사랑보다는 대면하여 책망하는 것이 낫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18절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고 의지한다면 우리의 삶에서 믿음이든지 사랑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실천하는 생활로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행동하는 신앙입니다. 이처럼 작은 배려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사랑과 믿음을 나타내고 실천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충만한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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