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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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물을 달게 바꾸시는 주님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754회 작성일 2021-09-15 20:39

*** 쓴 물을 달게 바꾸시는 주님 / 출애굽기 15:22-27

 

출애굽기 15:22-27,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 들어가는 말

 

예전에 유튜브 영상 중에 어린아이의 버릇을 고치는 웃음을 주는 영상이 있었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가족이 식사하는데 어린 딸이 투정 부리며 밥을 먹지 않습니다. 밥숟가락을 입에 넣어줘도 입을 벌리지도 않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인형 하나를 가지고 와서 품에 안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인형의 입에 가져다 댑니다. 아빠가 한 손으로 인형을 고개를 돌리며 먹지 않겠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숟가락을 놓고는 “왜 밥을 안 먹어! 응” 하면서 인형을 무지막지하게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밥을 떠서 딸에게 주었는데, 딸은 아무 투정도 부리지 않고 밥을 받아먹었습니다.

 

아이가 인형이 맞는 모습을 보면서 겁이 났겠지요! 아빠는 어린 딸 대신에 인형에게 시범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굳이 표현하라면, ‘대칭적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갑이라는 사람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똑같은 상황을 을에게 연출하여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대칭적 비유로 성도들을 깨우치시는 일이 성경에는 많이 등장합니다. 예컨대, 예수님께서 따르는 많은 사람에게 갈릴리의 어느 작은 언덕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이 대칭적 비유법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저기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저 새들이 농사를 짓거나 창고를 지어 모아두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기르시지 않느냐?! 또 저 들에 있는 백합꽃을 보라. 수고하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지만,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냐!’ 이렇게 주변에 있는 새와 백합화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비유하셨습니다. 이 대칭적 비유의 목적은 마태복음 6:30절에 있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이 시간의 본문 말씀도 이러한 대칭적 비유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힘들고 어려운 광야 생활을 불평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보호와 역사하심을 가르치십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을 벗어난 이스라엘은 홍해 앞에서 추격해오는 애굽 군대로 말미암아 두려움과 위기의식으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으로 애굽 군대가 괴멸되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광야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노예에서 해방된 기쁨과 승리의 벅찬 감격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행진한 지 3일 만에 마라에 이르게 됩니다. 그 뜨거운 광야를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무엇보다 물이 떨어져서 목이 말랐습니다. 이렇게 삶의 고통이 극에 달할 즈음에 마라라는 작은 물 샘이 있는 지역에 이른 것입니다. 안도의 한숨도 잠깐, 그 물을 마시던 사람들이 물을 뱉어내며 기겁을 합니다. 물이 너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벅찬 감격과 기쁨은 3일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또다시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라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면서 그 나무를 물 샘에 넣으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 쓴 물이 달게 바뀌었습니다. 이 사건의 의미가 본문 2절 후반절에 있습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즉 마라의 쓴 물이 달게 바뀌는 사건은 ‘한 나무를 물에 넣으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대칭적 비유의 목적입니다. 본문 26절을 봅시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인생의 쓴 물과 같은 고난도 단물처럼 기쁨으로 바뀌게 된다.’라는 것이 마라의 쓴 물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셨다.’라고 하셨는데, 무엇을 시험하셨겠습니까? 마실 물이 없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물질적인 필요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지를 알아보려는 시험(test)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일이 영적으로나 육신 적으로 필요를 충족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임을 가르치십니다.

 

※ 먼저 비유적인 부분을 봅시다.

 

본문 22-25중반절까지를 봅시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이 부분이 비유적 사건이 연출된 환경과 비유적 상황입니다. 이 비유적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내용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라는 내용입니다. 아마도 샘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나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리키신 나무가 살아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단어로 봐서는 죽은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리키시기 전에는 아무도 그 나무에 관심 가지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쓴 물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한 나무를 가리키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나무’라고 하지 않으시고 ‘한 나무’를 콕 찍어서 가리키셨습니다. 이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중요합니다.

 

첫째, 한 나무라고 가리키신 것은 하나님의 명령의 확실성입니다. 아무 나무나 사용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그 나무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명령하시는 것은 두루뭉술한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사도행전 4:12절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그리고 요한복음 14:1절에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고 하셨고, 산상수훈을 비롯한 모든 말씀은 분명하고 확고하게 지시하십니다.

둘째, 한 나무라고 가리키신 것은 그대로 실행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가리키다.”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번역에서 ‘showed him a tree(한 나무를 가리키심)’라고 번역했지만, ‘showed him a piece of wood(나무 한 조각을 가리키심)’(NIV)이라고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에는 ‘가리키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겨누다’ ‘던지다.’라는 본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가 이해한 내용대로 보면, 하나님께서는 한 나뭇가지를 보이시며 ‘그것을 물에 던지라.’라는 실행 의지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지시하신 나무를 물에 던져넣자 쓴 물이 즉시 달게 바뀌었습니다. 이 상황을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필요에 가장 민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쓴 물로 가르치신 목적도 이것입니다.

 

※ 비유와 대칭되는 실상황은 무엇입니까?

 

본문 25하반절-26절을 봅시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이 말씀이 앞의 비유에 대칭되는 실제 상황입니다. 여호와께서 비유적 이야기를 하신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이 명령에 순종하면 그들에게 치료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쓴 물이 달게 바뀐 사건을 통하여 ‘인간의 간사함과 연약함과 이기적 속셈에도 불구하고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 연단하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내용을 봅시다.

 

먼저, ‘마라(쓰다)’라는 이름 그대로 ‘쓴 물’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쓴 물”에서 ‘쓰다’라는 단어는 ‘괴로움’ ‘쓰라리고, 불만스럽고, 화 나는’ 그런 의미입니다. 즉 인생에서 삶의 어려움과 고난과 환난, 뜻대로 되지 않는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8:11절입니다.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 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이 말씀은 계시록의 일곱 나팔 재앙의 세 번째 재앙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에서 말씀하는 대로 ‘쓴 물’은 세상에 내리는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민수기 5:19절에서는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이라고까지 말씀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현재 적인 상황으로 백성들이 광야의 메마름과 뜨거움, 목마름, 모든 고통스러운 상황을 표현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같게 적용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이 ‘쓴 물’을 바꾸게 하는 “한 나무”의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리키신 나무는 쓴 물을 달게 바꾸는 효능이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르는 순종’을 의미합니다. 지금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한다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쓴 물을 달게 바뀌게 하는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저주를 복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고난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로마서 8: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봅시다. 요한복음 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어서 15:5절도 봅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3:19절에서도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상황을 바꾸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가리키신 나무를 물에 던지는 행위의 의미입니다. 먼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게 된 동기를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경을 돌아보시게 된 동기가 부르짖는 기도라고 하십니다. 기도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길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길을 제시하시자 모세는 즉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지시하신 나무를 물에 던졌습니다. 이 행위의 의미는 26절에 있습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이 말씀을 한 구절로 요약하면 ‘너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실행하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삶의 어려움이 닥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를 때에는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마음과 말씀에 즉시 순종하여 생활로 나타내십시오. 그리하면, 인생의 쓴 물을 달게 바꾸어 주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보너스도 있습니다. 그 보너스가 바로 27절입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라의 교훈을 주신 이후에, 그들에게 ‘엘림’이라는 오아시스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마라의 쓴 물,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물, 오히려 사람으로 고통에 이르게 하는 상황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쓸모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통과 불만스러웠던 삶이 기쁨과 평안의 환경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엘림에 이르러 좋은 물과 훌륭한 안식의 자리를 얻었습니다. 거기에는 샘물 열둘이 있어서 각 부족이 한 개씩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평안하게 쉼을 누릴 수 있는 70그루의 종려나무도 함께 있어서 그들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세상의 어려운 풍랑 중에도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천하는 생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쓴 물이 달게 바뀌는 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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