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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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것은 관심입니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602회 작성일 2021-08-22 23:19

*** 지금 필요한 것은 관심입니다. / 누가복음 10:25-37

 

누가복음 10:25-37,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이런 교훈적인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학자가 사람들의 처지에 대하여 불만이 가득하여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불행합니다. 이것은 몹시 불공평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요단강 변으로 불렀습니다. 요단강은 사람들이 세상살이를 마치고 건너오는 이 세상과 영원한 세계의 경계 지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십자가를 지고 강을 건너왔습니다. 하나님은 그 학자에게 말했습니다. “저들이 지고 온 십자가의 무게를 다 달아보아라.” 학자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강을 건넌 사람들의 십자가를 모두 달아 보았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큰 십자가도 아주 작은 십자가도 그 무게가 똑같았습니다. 학자는 아무 말 못 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줄 때 누구한테나 똑같은 십자가를 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웃으면서 가볍게 안고 살고, 어떤 사람은 고통스러워하면서 쇳덩어리처럼 무겁게 짊어지고 산다. 내가 늘 똑같이 공평하게 주지만 이렇게 저마다 다 다르게 받는 것이 삶이라는 십자가다.”

 

학자가 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을 자신의 관점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처럼, 지금의 세상을 보면서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가치관과 관점’입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가치관이 있으며, 그 가치관(價値觀)으로 모든 것을 대하는 관점(觀點)이 있습니다. 가치관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삶이나 세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등의 가치를 매기는 관점이나 기준.’이라고 말하며, 관점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는 입장이나 생각하는 각도(角度)’라고 말합니다. 예컨대, 어떤 사건을 대할 때, 한 사람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에, 다른 사람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같은 사건이지만 그 사람의 가치관과 관점이 작용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평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치관과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올바른 것으로 판단하여 결정한 것이 후에 심각한 오류로 판명되어 한 번뿐인 인생을 망치게 되기도 합니다. 혹은 모든 사람이 ‘아니다.’라고 판단할 때, 홀로 ‘옳다’라고 판단한 것이 자기 인생의 엄청난 긍정적 전환점(turning point)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치관과 관점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2:13-14절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 되기 때문이라.” 즉 하나님의 사람들은 삶의 모든 것을 영적인 가치관과 관점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런 가치관과 관점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관심으로 표현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사랑을 실천하는 삶’에 대한 비유적 가르침입니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율법을 잘 아는 율법 교사이므로 ‘너는 율법의 가르침을 무엇이라고 이해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 율법사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율법 교사다운 정확한 대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사는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그러면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비유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자니이다.”라고 했고,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율법 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요약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할 정도면 율법의 의도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비유 속의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아는 만큼 행동하지를 못했습니다. 누가복음 11:46절입니다.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 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라고 책망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사랑은 관심이며, 관심은 곧 실천을 동반해야 한다.’라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 지금 세상에 우리가 왜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미국의 유명한 사상가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소년 시절의 일화입니다.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소년 에머슨이 밖에서 큰소리로 외칩니다. "아빠, 좀 도와주세요. 송아지가 말을 안 들어요." 소년 에머슨은 송아지를 외양간에 넣으려고 여러 방법을 써 보았지만, 송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에머슨, 좀 더 힘을 줘 봐." 아버지는 앞에서 당기고 에머슨은 뒤에서 밀어 보았지만, 역시 헛수고일 뿐입니다. 꼼짝 않는 송아지에게 여러 방법을 써 보았지만, 송아지는 오히려 더 난폭해져만 가고, 둘은 그만 지쳐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맙니다. 송아지는 화가 난 듯 마당 이곳저곳을 날뛰더니, 저 멀리 밭일을 하는 늙은 하녀 쪽을 향하자 위험을 느낀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 사이 난폭해진 송아지와 마주 선 하녀는 오랫동안 소들을 보아 오면서 송아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았습니다. 하녀는 난폭한 송아지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송아지의 입에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물려 주자 송아지는 젖을 빨듯이 손가락을 빨기 시작합니다. 손가락을 송아지에게 물린 채로 뒷걸음질 치는 하녀를 송아지는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수히 따라 외양간으로 들어갑니다. 에머슨과 아버지는 무력보다는 부드러움이 더 큰 힘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둘이 힘을 합해도 할 수 없었던 일을, 늙은 하녀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송아지를 제어하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이 송아지에 대하여 너무 무지하다는 것과 때로는 부드러움이 강압적인 방법보다 낫다.’라는 것입니다. 무관심은 무지(無知)와 연결됩니다. 관심이 없으므로 어떤 사람이나 일에 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내에서 어떤 식당을 찾는다고 하면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과 경치에는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간판에만 신경을 쓰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은 관심이 많을수록 더 가까이 다가가고, 더 많이 알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21절에서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에 관심이 간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 사람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를 알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를 알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는 것은 ‘그에 관하여 중요성을 알고 그것에 가치관을 맞추어야 한다.’라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관심은 자신의 가치관과 열정을 나타내므로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12:3-6절을 봅시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라.” 이 말씀에 등장한 두 사람, 마리아와 가룟 유다는 같은 향유를 두고 관심이 전혀 달랐습니다. 마리아는 온전히 예수님께 관심을 두고 자신의 귀한 것을 기꺼이 헌신했지만, 가룟 유다는 값비싼 향유, 즉 오로지 자신의 주머니를 채울 돈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율법사가 예수님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율법사가 진정으로 영생과 이웃에 관심이 있었다면, 결코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알고는 있었지만 행동하지는 않았습니다. 즉 가지만 무성했지 열매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열정을 쏟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20절에서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컨대,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너무 바빠서 연락 못 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사실대로 번역해보면 ‘너에게는 별로 열정도 관심도 없다.’라는 말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못했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지극히 소수일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열정이 있고 관심이 많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연락을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관심은 자신의 진정성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관심의 방향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 지금 세상에 우리가 어떤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로마에 크리스천 군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뚜르 지방’에서 온“마틴”이라고 하는 이 군인은 참으로 충성스러웠고, 열심히 군 복무했던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 그는 거리를 지나다가 황량한 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를 보았습니다. 거지가 손을 내밀면서, “군인 아저씨. 나 돈 한 푼만 주세요.”라고 구걸했습니다. 마틴은 주머니를 뒤지다가 돈이 한 푼도 없음을 알았지만, 벌벌 떨고 있는 거지가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낡고 해진 군인 외투를 벗어 그것을 반쪽으로 찢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반쪽을 떨고 있는 거지에게 감아 주며 말했습니다. “미안하오. 내가 돈이 없어 이렇게 옷을 찢어 줄 수밖에 없겠소.”

그날 밤 마틴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 중에 둘러싸여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로마 군복 반쪽을 입고 서 계셨습니다. 천사 하나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왜 그 거지 같은 로마 군복을 입고 있으십니까?” 그러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나의 종 마틴이 나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4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이 말씀과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이웃에 관한 이야기는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바꾸어 생각하면, 우리가 사는 환경에서 꼭 필요한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떤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이것을 알려면 지금 우리 시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영적인 가치관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가장 큰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사람들은 더는 교회에 혹은 신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감을 품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신앙인들마저 전염병 사태로 가지고 있던 작은 신앙의 불조차 꺼져가는 상황입니다. 악한 영의 세력에 조종을 당하는 정부와 국회의원들, 사법부, 행정부, 심지어 공무원들까지 교회를 대적하고 무너뜨리려 합니다. 악한 영의 세력들은 사회주의 이념과 젠더 이데올로기(Gender Ideology)로 세상을 옭아매며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악의 영들은 젠더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세상을 사회주의화 하며, 평등과 자유와 인권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방종과 방탕의 세계를 만들려고 합니다. (참조, Gender Ideology, 남녀의 생물학적 성별을 부정하고, 모든 남녀의 성적 동일성을 주장한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유사종교(eine Quasi-Religion)의 성격을 가지고 일부일처제라는 결혼 제도에 대항하여, 레스비안적(Lesbian), 게이적(Gay), 양성애적(Bisexual), 성전환적(Transgender), 퀴어적(Queer), 혼음적 형태를 “성적 다양성”이라는 명목을 가지고, 괴기한 생활 공동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즉 성차별 철폐운동(젠더 주류화 운동, Gender Mainstreaming)이다. 이는 1917년 볼세비키 혁명과 더불어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는“제3의 세계사적인 혁명”으로 간주 된다. 성차별 철폐 운동은 인간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性)의 질서, 결혼, 가정이라는 기본 질서를 부정하는 문화인류학적 혁명(cultural anthropological revolution)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교회이며,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부정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며, 하나님의 창조원리인 가정을 해체하려는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이며, 둘째는 불의를 대항하여 진실한 신앙을 추구하고, 셋째는 자신의 믿음을 생활 속에서 행동으로 나타내는 일에 관심을 집중해야 하며, 넷째는 이 모든 일을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주님의 마음으로 시대를 분별하여 옳은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강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살피면서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큰 관심은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떳떳하며, 미래의 어느 날 내가 주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도록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의 열정을 바칠 가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영적인 가치관과 관심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귀중하게 여김을 받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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