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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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말하는 용기(요3:1-8)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933회 작성일 2001-12-15 18:44
*** 진리를 말하는 용기 / 요3:1-8

** 들어가는 말

우리 옛말에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일을 그르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일을 제대로 잘 알지 못하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신앙에 있어서 진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생활이 위태롭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죽음의 길로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리에 대하여 확신이 없는 마음은 결코 어떤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는 산 사나이들의 목표입니다. 우리나라 등반대도 정복한 바가 있지만, 1963년 5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이 산을 정복한 사람은 『짐 휘태커』였습니다. 휘태커를 포함한 등반대가 네팔 당국의 심의를 받았습니다. 심의관들이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까?”라고 도전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등반 대원들은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휘태커’는 단호한 목소리로 “네. 나는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심의를 한 사람들은 휘태커가 정복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성취에 대한 기대와 확신은 전혀 다릅니다. 확신하는 겨자씨만한 믿음은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아무리 큰 믿음처럼 보여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성도가 어떤 일을 행하고자 할 때에 확신하는 마음이 없다면 일을 행하지 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확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확신하지 못한 채로 일을 한다면 아무런 성과를 기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확신하는 믿음은 빛으로 나타나지만 의심하는 믿음은 여전히 어두움에 가려져 있습니다.

신앙의 확신은 자신의 생활을 당당하게 나타냅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3:21절에서,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를 확신하고 따르는 사람의 삶은 당당합니다. 거짓 앞에서 물러서지 않으며 변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그러했습니다. 어떤 권력과 무력 앞에서도 주님은 진리를 말하는 당당함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진리의 확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7:20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고 하셨고, 마태복음21:19-22절에서는,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은 당대의 최고 권력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최근에 예수님으로부터 들었던 진리에 대하여 갈증을 느꼈고, 진리에 대하여 확신을 얻고자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가 밤에 찾아왔던 것은 아직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의심, 즉 확신하지 못하는 마음은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나타내지 못합니다.

일본의 어떤 유명한 야구 감독은 선수들을 스카우트할 때 반드시 우승을 해 본 경험자를 선발한다고 합니다. 승리를 해본 경험을 가진 선수는 정신적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험이 없는 선수보다 강인하고 어떠한 위기에도 대처할 능력이 많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확신은 믿음의 결정체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으로 인한 응답의 경험은 확신 있는 신앙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1. 하나님을 알고자하는 열정이 확신에 이르는 기초입니다.

니고데모는 유대 관원으로써 율법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표적들을 보면서 ‘그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메시아)가 아닌가?’ 하는 어렴풋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즉, 심증이 있었지만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심증을 확인하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어두움을 틈타서 예수님이 계시는 숙소를 찾아왔습니다.

유대 관원으로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르는 모험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두운 밤을 택해서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밤을 택했지만 이것은 분명히 위대한 모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건 이 모험은 진리, 즉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정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자신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여러 학생들의 여러 대답 중에서 어느 학생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즐겁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학생이 학교에서 남다른 성적을 낼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겠지요. 그 학생은 만인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또 자기가 받은 장학금으로 부모를 돕고, 형제들에게 인심 써 가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택시를 탔을 때, 그 운전기사는 ‘운전이 한없이 즐겁다.’고 말했습니다. 그 기사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것보다 더 신나는 일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마지못하여 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며, 죽지 못해 한다는 둥, 자신의 일을 즐겁게 여기는 사람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는 일을 즐거워합니까? 전도서 3:22절에서 전도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8:10절 하반 절에서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으며, 시편37:4절에서는,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은 하나님을 즐거움으로 섬기는 것이 힘이며 또한 기도 응답의 중요한 열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즐거움으로 섬기는 것’이 곧 열정입니다. 이러한 열정은 신앙의 확신을 이루게 합니다.

2. 신앙의 확신은 솔직한 자기 고백을 필요로 합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난 자리에서 솔직 담백하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위신과 체면을 자기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유대 관원이자 선생이 자신의 무지를 쉽게 드러낼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솔직한 고백에 대한 보답으로 그가 갈구하는 진리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러나 니고데모에게는 거듭남<중생(重生, born again)>이라는 말조차 전혀 생소했습니다. 그는 그것조차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지극히 당연한 물음이지만 얼마나 솔직한 표현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그의 아픈 마음을 꼬집으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무지를 고백할 때 이미 이런 수모를 예견한 듯이 수용했습니다.

양주동 박사가 피난지 대구에서 강의하던 때였습니다. 고전문학 강의를 하던 어느 날, 그만 어느 대목에서 막혀 버렸습니다. 한참 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모르겠는데!”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자칭 ‘국보’요, ‘천하 수재’라던 그의 높은 코가 납작해진 순간이었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이 민망할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태연했습니다. 모르는 게 마치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오히려 뻔뻔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다음 말은 더욱 걸작입니다. “내가 모르는 거면 학생들은 몰라도 돼.” 강의실에 폭소가 터졌습니다.

얼마나 솔직한 표현입니까?! 이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생각까지를 읽고 계시지만, 사람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기를 원하시고 또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9:24절에서,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정직한 고백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신앙의 큰 확신을 얻게 합니다.

3. 성도는 확신 있는 믿음으로 진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7:50-52절을 봅시다.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싫어하던 공회에서 예수님을 잡아오도록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속들이 예수님은 잡아오지 않고는 오히려 예수님을 선지자로 두둔하고 나섰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율법을 모르는 자로 정죄하고 저주했습니다.
그 때, 공회 중에서 니고데모가 일어나서 예수님에 대하여 변호했습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라고 말입니다. 공회원들은 예수님의 행하신 일은 보지 않고 비천한 출신이라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에 대하여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법에 따른 공의로운 판결을 환기시킨 것입니다. 비록 적극적인 변호는 아니었지만, 니고데모의 속에서는 진리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진리는 소유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삶에서 나타나게 될 때에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삶에서 표현되는 진리는 사람으로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에게 있는 진리를 용기 있게 나타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음에도 말입니다. 요19:38-40절을 보십시오. 또 한 번 니고데모는 자신이 진리의 신봉자임을 나타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정을 가졌고, 자신의 위신과 체면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고백했으며,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가지고 진리를 나타냈습니다. 처음에는 소극적인 변호였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재물을 드려서까지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두려워 모두 도망가 버린 때에, 시신을 거두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나 니고데모는 숨겨진 진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자신이 일에 즐거움도 열정도 없이 실속 없는 형식에 매여 있지는 않습니까? 이 대강절에 주님처럼, 또한 니고데모처럼 열심 있고 정직하고 용기 있는 믿음의 회복으로 주님의 기쁨과 평안을 마음껏 소유하고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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