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낮은 자리의 보상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865회 작성일 2001-12-08 23:16
낮은 자리의 보상 / 눅14:1-14

**들어가는 말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인 ‘레오나드 번스타인’에게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가 무엇입니까?”번스타인은 주저하지 않고 “제2 바이올린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의아해 하는 기자에게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나는 제1바이올린 주자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열정을 가지고 제2바이올린이나 제2프렌치 혼이나 제2플롯을 연주 할 사람을 구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아무도 제2악기를 연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화를 이룰 수가 없거든요.”

제2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는 뒷 자석에 앉는 것을 의미하며, 제1주자를 보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낮은 자리를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낮은 자리는 종이 된다는 것이며, 제2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며, 공로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더욱 어려운 것은 ‘남모르게 희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명예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도 자신이 한 일을 알아주지 않거나, 남보다 뒷자리에 앉는 것을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이러한 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음식을 잡수시러 바리새파의 한 지도자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는 고창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와 있었습니다. 고창 병은 수종 병을 말하는데, 일종의 암이며 신장이나 간장에 과다한 량의 수액이 차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을 범하는지 여부를 감시하고 책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노동이기 때문에 그들의 율법에서는 금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거기 둘러서 있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 그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병자에게 손을 얹어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는데 안식일이라 해서 끌어내지 않겠느냐?” 그들은 아무 대답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슬그머니 준비된 식사 자리로 가서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서로 식탁의 윗자리에 앉으려고 서둘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는 비유로 두 가지 내용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는 자리에 대한 것으로 ‘겸손’에 대한 말씀입니다.
“너희가 결혼 잔치에 초대받아 가거든 윗자리에 앉지 말라. 만일 너희보다 더 귀한 손님이 오면 주인이 그를 데리고 너희가 앉은 자리에 와서, ‘이 분에게 자리를 내어주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부끄러움을 당하고 제일 구석진 자리로 내려가게 될 것이다. 초대를 받거든 맨 끝 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주인이 너희를 보고, ‘친구여, 당신을 위하여 윗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라고 할 것이며, 그때에 너희는 모든 손님들 앞에서 높아지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높이면 낮아질 것이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자기를 초대한 주인에게 초대할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 놓고 사람을 청하려거든, 친구와 형제와 친척과 잘사는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지 마라. 왜냐하면 그들이 다시 너를 초대하여 갚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과 절름발이와 맹인들을 초대해라. 그러면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을 초대한 대가로 하나님께서 너에게 보상해 주실 것이다.”

이와 같은 본문 속에는 외관상으로는 안식일에 대한 문제와 낮은 자리와 초대할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세 가지가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르치고자 하시는 내용은 하나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자, 사람을 향하시는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1. 안식일의 문제를 통한 하나님의 관심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식사 자리에 초대한 바리새인은 당시에 잘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초대한 이유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창병자를 의도적으로 함께 초대해서 예수님께서 고치시는 지의 여부, 즉 안식일을 범하는지를 시험하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아시고 특별한 교훈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심으로 안식일의 근본정신을 가르치셨습니다. 율법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사사로운 일이나, 혹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오락을 금한 것입니다(사58:13-14).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도자들은 수많은 금지 조항들을 만들고, 형식적으로 치우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괴롭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쉼을 주시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가복음2:27,28절에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하시면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고창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에게 가장 큰 위로와 안식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병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따가운 감시의 눈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초청하셨습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갇힌 자, 소외된 자, 억압당하는 자. 이들을 자유롭게 하시려고 주님은 오셨습니다(눅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 잔칫집의 자리와 초대 손님의 비유를 통한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초청받은 사람들이 저마다 식탁의 윗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을 눈 여겨 보시고 그들에게 낮은 자리에 앉을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부귀와 권력이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를 초대한 주인을 보시면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세의 보상보다 영원한 보상을 바랄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비유를 통하여 ‘낮은 자리에 대한 보상’을 가르치셨습니다.

초대받은 이들이 상석을 원하는 이유나 초대한 주인이 이름 있는 사람들을 초대한 이유는 모두 ‘명예’ 때문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고, 이름 있는 저명한 인사들을 초대해야지만 자신의 명예가 높아질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이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세상적인 관점으로는 옳은 처세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는 전혀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면 낮아질 것이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낮은 자리에 앉을 줄 아는 사람, 겸손한 사람들을 위해 예비 되어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낮은 자리에 앉을 줄 아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고, 되갚을 수 없는 낮은 자들을 초대하면 의인의 부활 때에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보상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세상에 살면서 이렇게 하나님의 보상을 기대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늙은 율법학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아주 궁금한 것이 있어 그러는데, 질문해도 좋겠습니까?” 늙은 율법학자가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좋아, 뭐든 물어보게나.” “선생님, 옛날의 그 황금시절에는 사람들이 그들의 눈으로 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신과 만났으며 신은 땅위를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신은 그들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불렀으며, 사람들은 신과 매우 가깝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왜 신은 땅을 버렸는가요? 왜 신은 이제 땅위를 걷지 않는가요? 왜 신은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지 않는 걸까요?” 늙은 율법학자는, “이보게 젊은이! 신은 아직도 살아계신다네. 그런데 사람들이 그를 볼 수 있을 만큼 낮게 구부리는 법을 잊어서 그렇다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낮은 자리를 거부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람들의 기대를 거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고, 가장 낮은 자리인 말구유가 탄생 자리였으며, 소외된 사람들과 친구가 되셨던 주님이십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께 우리의 요구만 간청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쁘게 응답하시는 낮은 자리를 찾읍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천국의 성도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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