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고난을 견디게 하는 하나님의 위로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453회 작성일 2020-10-19 22:17
*** 고난을 견디게 하는 하나님의 위로 / 고린도후서 1:3-9
 
 고린도후서 1:3-9,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 들어가는 말
 
복음송(835)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하늘보아도 땅을 보아도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쉴 곳이 없는 안개와 같은 우리네 인생을 사랑하신 주님 주여 이곳에 주여 이 맘에 불을 내리사 응답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위로하게 하소서 인내하게 하고서 소망 보게 하소서.” 꼭 오늘 말씀의 내용을 노래하는 것 같은 가사입니다. 이 가사처럼 요즘 세상살이가 힘겹지요? 모두가 탄식하고 한숨 쉬는 이런 환경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조급하여지고 사나워지고 우울하나 봅니다. 그런데 세상의 마지막 보루이자 소망인 그리스도인들마저 이렇게 우울해지고 힘들어하면 세상은 정말 의지할 것이 없어집니다. 본문 4절에서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진정한 위로자가 계시기 때문에 소망을 잃은 세상에서 우리가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이 있는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인데, 기록된 시기는 주후 55년경입니다. 이 때는 사도 바울이 세 번째 전도여행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 시기에 고린도교회가 있는 그리스는 우상숭배와 황제숭배로 교회가 어려운 박해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제국의 제5대 황제인 네로가 통치하던 시기여서 기독교의 박해가 극심하던 때였습니다. 당연히 고린도교회는 신앙을 지키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여러 당파로 분열되었고, 생활이 힘들고, 거짓 교인들이 성도들의 미혹하는 등.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이 각박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서신은 이런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권면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특히 본문말씀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믿음을 지키도록 위로하며 소망을 주는 말씀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16-18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처럼 어려운 생활로 고달파하는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본문말씀에서는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위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고난당하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4-5절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의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임을 말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을 위로하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도활동 중에 당한 고난을 소개하면서 고린도교회를 위로함과 동시에 더욱 담대하도록 권면합니다.
 
※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주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에서는 세상에서 성도가 당면하는 환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비유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몸소 겪으신 것과 같은 그런 고난을 말합니다. 본문에 사용된 ‘환난’이라는 단어는 ‘극심한 중압감’, ‘눌리고 짓밟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짐이 너무 무거운 나머지 그 밑에 깔려버린 가축을 연상하게 하는 그런 말입니다. 이 단어가 본문 3-7절에 네 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이렇게 고난을 당한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거나 위로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거리를 삼아 조롱하고 따돌립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지금의 환경을 보십시오. 세상은 기독교를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미한 것까지 들추어 자신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 말거리를 삼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왜 이렇게 반응하겠습니까? 요한복음 15:18-20절을 봅시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여러분이 사회에서 직장에서 친구들 사이에서까지 조롱을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삶의 어두움이 성도들의 삶의 밝음으로 인하여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3:20절에서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어려움을 겪고 환난을 당하는 이유는 세상이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주어지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3-4절을 봅시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이어서 6절입니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주어지는 이유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는, 우리의 고난당함을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홀아비 사정을 과부가 알아준다.’고 했습니다. 같은 의미로 사자성어에 ‘동병상련(同病相憐)’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이 서로 불쌍히 여긴다.’는 뜻인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끼리 서로 동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어려움 당한 것을 하나님께 위로를 받고, 내가 받은 위로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십니다. 또 하나는,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은혜와 감동은 세상의 혹독한 시련을 견디게 하며 하나님만 바라도록 하는 소망이 됩니다. 본문 8-9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의 경험담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은 고린도후서 11:23-27절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진’ 즉 ‘이제는 죽었구나.’라고 할 만큼 엄청난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에 마음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전서 4:1-2절을 봅시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하심이라.”
 
※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고난을 어떻게 대하여야 합니까?
 
성도들에게 고난과 아픔만 주어진다면 아마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똑같이 앙갚음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로 ‘위로’를 베푸십니다. 위로’라는 말은 (파라칼레오, παρακαλὲω) ‘부르다’, ‘동정하다’, ‘위로받다’, ‘격려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자신을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고갈되고 갈급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각박해지는 것입니다. 만족과 평안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며 동정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들의 만족을 찾기에 더 갈급한데 말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위로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위로하시면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예전에 나이가 지긋하고 얼굴만 보아도 고생한 흔적이 보이는 어느 여 성도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내가 시집살이 하는 동안 우리 영감 때문에 그나마 살았답니다. 시집의 일도 힘든 대다가 시어머니가 어찌나 못살게 하시던지 도저히 살수가 없었어요. 치마 뒤집어쓰고 깊은 연못에 빠져 죽으려고도 했고, 양잿물 마시고 죽으려고도 했고, 몇 번이나 죽으려 했지만 그때마다 남편이 밤에 잠들기 전에 말없이 제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답니다. 거칠거칠한 손, 고되게 일한 그 큰손으로 꼬옥 잡아 주면 그저 눈물이 흘렀지요.”
 
머리카락까지도 희끗희끗한 그 여 성도는 남편 때문에 시집살이를 견디고 사셨답니다.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지요? 말없이 잡아주는 그 손길이지만 백 마디 말보다 더 깊은 위로를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실하게 살고자 한다면 세상에서 많은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고난만 예고하신 것은 아닙니다. 고난이 크고 많을수록 예비 된 ‘위로’도 더욱 풍성하다고 하셨습니다. 성경말씀을 살펴보면 고난과 위로는 항상 붙어 다니는 이웃사촌쯤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험하고 악한 세상에서 어려울 때마다 인자하신 손길로 우리를 꼬옥 잡아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이사야 46:3-4절입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복음송(854) 하나 해 봅시다.
 
주님 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 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 여 날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겠지만 목회자인 저는 정말이지 내 사정을 토로할 사람이 없습니다. 만일 ‘힘들고 어렵다.’고 하소연한다면 아마도 ‘목사가 믿음 없다.’는 등의 비난만 돌아오겠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 대하여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복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인데 영의 생명도 없이 세상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 사정을 하소연한다면 그들은 의아해 할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거짓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여러 방면으로 위로하십니다. 본문 5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라고 하십니다. 제가 개척 초기에 많이 힘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작고 어설픈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 기도조차 제대로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마치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단다.’라고 하시듯이 새로운 일들이 생기거나 확신과 함께 도움의 손길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제가 신학교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지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세상에 도움을 구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봅니다. ‘임신한 여인이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 아이가 미워하는 사람을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을 깊이 생각하면 그 사람을 닮는 아이를 낳는다.’고도 합니다.
 
‘토마스 하디’가 쓴 ‘환상의 여인’이라는 작품에도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시인을 마음 깊이 사모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그 시인을 닮았습니다. 여인은 남편에게 오해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여인은 단 한 번도 그 시인을 만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깊이 사모한 결과 마치 그 사람의 아이를 가진 것처럼 닮은 자녀를 낳은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하여 그렇게 예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비록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용하시고 위로하시는 이유도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약속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으로 말미암는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한 생애를 이루어 하나님의 약속을 매일 이루어 받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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