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선택의 조건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2,158회 작성일 2020-08-12 13:12
*** 선택의 조건 / 창세기 13:8-18
 
 창세기 13:8-18,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 들어가는 말
 
고대 로마의 그리스인 철학자이며 저술가인 ‘플루타르크’의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고대 올림픽에 레슬링 경기가 있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이긴 자에게는 전투할 때 왕의 옆에 서서 왕을 호위하는 임무가 주어졌다고 합니다. 레슬링 선수 중에 ‘스파르탄’이라는 유력한 우승 후보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스파르탄을 매수하기 위하여 ‘경기를 포기하면 많은 돈을 주겠다.’고 제의 했습니다. 유력한 우승후보를 제거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파르탄은 그 부자가 될 수 있는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스파르탄은 맹렬한 경기 끝에 우승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 어떤 사람이 스파르탄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스파르탄이여, 이 승리는 너에게 있어서는 매우 값진 것일 터인데 너는 이 승리로 무엇을 얻었는가?”
스파르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다만 전쟁터에서 왕의 앞에 서서 왕을 지키며, 왕을 위해 싸우는 특권만을 얻었다.”
 
여러분은 스파르탄의 선택이 잘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어리석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스도인 치고 좋은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고민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가 마태복음 19:27-29절에 나옵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큰 보상이 있는 좋은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마지막에는 생명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들의 행동은 순종과 배반의 길을 오락가락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자신의 마지막 때에 백성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신명기 30:19-20상반절입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의 선택은 영원한 생명이 달려있어 대단히 중요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아브람과 조카 롯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발단은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택하시고 ‘고향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란을 떠날 때에는 나이가 75세였고, 조카인 롯의 가족도 함께 떠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목축하는 유목생활을 했기 때문에 넓은 초지와 우물이 필요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아브람과 조카 롯의 재산이 늘어나면서 두 가정이 함께 목축하기에는 초지도 우물도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가정의 종들이 서로 다투는 일들이 잦았습니다. 이 일을 본 아브람이 조카 롯에게 ‘우리는 한 친족이니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고 하면서, ‘각자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자.’고 했습니다. 아브람은 땅을 선택하는 우선권을 조카 롯에게 먼저 주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롯은 사양하지 않고, 목축하기에 좋은 조건인 넓은 초장과 풍부한 물이 있는 요단 지역을 선택했습니다. 자연히 아브람은 그 반대편인 산악지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적인 모든 조건에서는 단연코 롯이 좋은 쪽을 선택했습니다. 반면에 아브람은 목축하기에는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닌 산악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말은 좋은 쪽을 선택한 롯은 파산과 도망자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좋지 않은 환경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했던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복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겠습니까?
 
※ 세상적인 조건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들은 그리스도인이든지 세상 사람이든지 모두가 매일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삽니다. 그 선택에 따라 희비(喜悲)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인가 중요한 선택을 할 때면 신중을 기하게 됩니다. 직장을 선택한다거나 평생을 좌우하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자기 나름대로 최선의 조건을 가늠하여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의 앞날과 세상 모든 일의 방향을 우리가 알지 못하기에 사람들의 고민이 깊어집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롯의 경우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삼촌인 아브람이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의 머리에는 온갖 생각과 계산이 바쁘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결국 롯은 세상적인 계산을 따랐습니다. 성경은 롯의 시각을 이렇게 조명합니다. “롯이 눈을 들어 요단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목축의 기본이 되는 초장과 물이 넉넉하고, 도시가 가까워서 판로에도 적당해야 하니 소돔과 고모라 성이 있는 요단지역 소알 들녘이 최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많은 사람들의 선택도 롯의 경우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예상에 따라 좋은 쪽을 선택하게 됩니다.
 
또 하나의 선택이 있습니다. 룻기 1:1-2절입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엘리멜렉은 가족을 이끌고 흉년을 피하여 이방 지역으로 갔습니다. 흉년을 피할 곳으로 우상을 섬기는 이방지역을 선택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두 아들의 배우자로 모압 여인들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는 10년도 되지 않아 남편과 두 아들 모두 죽고, 재산은 거들 나고, 나오미와 두 며느리인 오르바와 룻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잘못된 선택까지도 사용하셔서 룻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가정은 뼈저린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민족은 그 흉년에 고통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떠나지 않고 견뎠지만, 엘리멜렉의 가족은 자신들만 살겠다고 하나님을 떠났던 것입니다. 예전에도 한 번 들려드린 이야기인데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2001년 제 58회 베네치아 영화제에 출품되어 많은 상을 받은 ‘버스 44’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2001년에 만들어진 10분 정도 분량의 중국영화입니다. 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중국의 한적한 시골길을 버스가 달리고 있습니다. 44번 버스입니다. 기사는 젊은 여성이고, 버스 안은 승객들로 빈자리가 거의 없이 가득 태우고 미루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달리고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길가에서 오랫동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가운 마음으로 탑승합니다. 한참 후, 두 남자가 길을 막고 버스를 세웠습니다. 두 남자는 서둘러 버스에 올라타더니 강도로 돌변합니다. 그들은 흉기를 들고 폭행하며 승객들의 금품을 털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버스 기사를 밖으로 끌어내 성폭행했습니다. 그 모양을 보던 조금 전에 탔던 젊은이가 내려서 강도들을 말리려 쫓아갔지만, 도리어 사내가 휘두른 흉기에 다리를 찔렸습니다. 그 와중에도 버스 안의 승객들은 남의 일 구경하듯 그저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두 강도는 뺏은 금품이 든 가방을 메고 달아났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버스 기사가 버스에 올라 ‘왜 나를 도와주지 않았냐?’는 슬픈 눈길을 승객들에게 보냈으나 승객들은 그 눈길을 피합니다. 운전석에 앉은 기사가 핸들에 머리를 묻고 흐느낍니다. 그러는 사이 다리를 다친 젊은이가 절뚝거리며 다가와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버스에 오르려고 하자, 그녀는 그가 버스에 타지 못하도록 급히 문을 닫고 버스 안에 있던 젊은이의 가방을 차창 밖으로 던져줍니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했습니다. 어리둥절한 젊은이는 멀어져가는 버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합니다. 얼마 후, 젊은이는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탑니다. 잠시 후 그 한적한 시골길에 경찰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급히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참혹한 교통사고 현장이 보였습니다. 버스가 낭떠러지로 추락하여 기사와 승객 모두가 사망했습니다. 사고버스는 바로 조금 전에 자신을 버려두고 떠난 44번 버스였습니다. 여성 기사는 그 젊은이만 남겨두고 자신이 성폭행 당할 때 아무 것도 안한 승객 모두를 죽음으로 끌어간 것입니다.
 
단편 영화였지만 이기적인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물을 받게 됩니다. 엘리멜렉 가정의 선택도 그러했지만, 본문의 롯도 대단히 이기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롯은 점점 세상에 이끌리어 소알 땅으로 가다가 결국 소돔과 고모라 성에 정착합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는 성경의 증언대로, 소돔과 고모라 성은 하나님의 불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됩니다. 롯은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렸고, 아내마저 소금 기둥이 되었으며, 두 딸과 함께 목숨만 부지한 채 산으로 도망하게 됩니다.
반면에 조카에게 선택권을 주고, 좋은 땅을 양보한 아브람은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됩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그런데, 주의해서 살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이 말씀 바로 앞의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라는 내용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롯이 떠난 후에 아브람에게 복의 약속을 하셨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말라기 1:2-3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편파적으로 하십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불공정한 편애가 아니라 에서가 원인제공을 한 것입니다. 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장자의 권한을 헌신짝처럼 여겼습니다. 창세기 25:31-34절입니다.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 있는 장자의 권한을 배고플 때의 팥죽 한 그릇만도 못하게 여겼습니다. 즉 롯은 그 마음 중심이 하나님께 있지 않았고, 오직 자신의 재산과 부귀영화에 있었던 것입니다. 롯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았던 결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에는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만일 나 자신이나 가정, 개인적인 욕망이나 세상적인 성공과 부귀영화에 마음이 쏠려 있다면 롯이나 에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브람의 마음은 세상의 환경이나 부귀영화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목축에 합당하지 않은 산악지역이라도 개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환경을 다스리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복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는 증언처럼, 점점 세속의 도시로 가까이 다가갔지만,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는 증언처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머물다가,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면서 예배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선택의 조건입니다. 비록 세상적으로는 계산이 안 되고 이해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선택의 조건으로 삼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입니다.
 
앞으로의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롯이나 에서가 선택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점점 더 세상적인 비중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8:8절에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되면,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교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세상에서는 ‘한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한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하게’됩니다. 언젠가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영원한 후회를 하지 않도록 모든 삶에서 아브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선택의 조건으로 삼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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