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6,046회 작성일 2020-07-01 17:19
***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 / 골로새서 3:12-17
 
 골로새서 3:12-17,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노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설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 들어가는 말
 
요즘 같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감정이 있습니다. 기쁨과 행복감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들이 잃어버리기 쉬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감사와 기쁨, 영적인 행복감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감사와 기쁨, 영적인 행복감이 있습니까? 흔히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즉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잘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잘 잊어버리고 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더 이상 떠나야 할 세상에 집착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런데 정작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잊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히려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더 적합합니다. 그런데 각박한 세상을 살다보면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일이 그다지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어그러진 길로 가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32:5-7상반절입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오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옛날을 생각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오늘의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으시겠습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골로새 교회가 있는 골로새는 소아시아의 브루기아 도의 한 도시입니다.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가깝고, 초대그리스도 교회의 한 중심지였습니다. 바울은 골로새를 방문한 일이 없었으며 바울의 제자 에바브로가 복음의 기초를 닦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골로새 교회에는 빌레몬 같은 바울과 친근한 성도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사랑을 쏟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인 에바브로로부터 ‘골로새 교회가 이단 사상에 노출되어 복음이 변질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당시에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는 가운데 ‘위엣 것을 찾는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생활에 대하여’ 권면합니다. 즉 본문말씀은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삶의 원리’를 말씀합니다. 본문말씀의 핵심은 17절에 있습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이 말씀에서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라는 말씀인데,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에서 나타나야 하는 그리스도의 주권을 말씀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행동방식 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까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가 되는 삶의 가장 강력한 표현이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8절 이하에서는 이 삶의 원리를 생활 가운데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그 중심적인 말씀은 23절의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을 나타내는 특별한 정서는 감사입니다.
 
어느 큰 정신병원의 구급차를 운전하는 운전기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여전한 일과로 환자를 병원에 내려놓고 차를 돌리려고 하는데 병원의 위층 창문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 좀 보시요!” 운전기사가 소리가 나는 병실 위층을 바라보니 병실 창문에 상체를 내어놓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운전기사가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나 말이요?” 그러자 내다보던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렇소.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 물어 보아도 되겠소?” 운전기사는 궁금한 마음에 “무슨 일입니까?”라고 하자, 그 환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건강한 정신을 가졌다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해 본 일이 있소?” 운전기사는 ‘별 이상한 사람 다보겠네!’ 라고 생각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훗날, 그 운전기사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15년 동안 이 병원에서 일하며 매일 정신병 환자를 운반하면서도 나의 건강한 정신에 대하여 한 번도 감사해 본 일이 없었음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이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일상적인 평범한 생활 속에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은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성경에 특히 구약성경에는 지나온 날들의 일들을 회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내용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자신들의 삶의 걸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인도하신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나타나는 특별한 감정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감사에 대한 내용이 아주 많으며, 마치 감사가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한 느낌 만져 들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에 따르는 하나님의 복과 은혜는 정말 대단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시편 50:14-15절에서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하시며, 23절에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감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바탕으로 본문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말씀에 나오는 ‘감사’라는 말은 본문 15-17절에서 각 절마다 한 번씩 등장합니다. 그런데 각 절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형태가 조금씩 다릅니다. 15절에서는 ‘유칼리스토스’를 사용했고, 영어 성경에서는 ‘grateful’이라고 번역했으며, ‘매우 은혜를 입음’, ‘감사하는’이라는 의미입니다. 16절에서는 ‘카리스’를 사용했고, 영어성경에서는 ‘grace’또는 ‘loveliness’라고 번역했으며, ‘호의’, ‘은혜’, ‘선물’이라는 의미입니다. 17절에서는 15절에서와 같지만 형만 다른 ‘유칼리스테오’를 사용했고, 영어성경에서는 ‘to give thanks’라고 번역했으며, ‘감사하다.’, ‘은혜를 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왜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했느냐 하면, ‘감사’라는 말과 ‘은혜’라는 말이 같은 단어를 사용하거나 혹 사촌 격이 되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즉 ‘감사한다.’는 말은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며, ‘감사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은혜를 받아야만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임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넘치는 감사는 받은 은혜를 은혜로 안다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넘치는 감사의 출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베푸신 풍성한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도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8절에서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성도는 자신의 삶에서 감사가 충만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넘치는 감사는 생활 속에서 착한 행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즉 마음으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과 더불어 나누며, 베풀고, 섬기는 일로 나타나지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통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감사 행위는 하나님을 흡족하게 하며, 더욱 풍성한 은혜를 입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15절에서 “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라고 하십니다.
 
※ 그러면 감사하는 생활은 어떤 것일까요?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마치 묘약과 같습니다. 어떤 말은 죽어가는 사람조차 회생하게 만들고, 어떤 말은 건장한 사람을 죽게도 합니다. 용기를 주기도 하고, 절망하게도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5-6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이처럼 중요한 말 중에서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기분 좋게 하는 말이 ‘감사’라는 말입니다. 감사는 만국공통 표현이며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통하는 것이며 기분 좋은 표현입니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감사에도 격이 생겼습니다. 격이 높은 감사도 있고 격이 낮은 감사도 있고, 마음을 좋게 하는 감사도 있고 마음을 묘하게 만드는 감사도 있습니다. 이렇게 감사의 격이 달라지는 것은 마음의 진정성 여부 때문입니다. 즉 ‘엎드려 절 받는’식으로 마지못해 하는 감사, 마음에도 없는 습관적인 감사는 사람의 마음을 오히려 떨떠름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탄식하십니다. 이사야 1:12-13절입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이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마음에도 없는 외식적인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도 감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입술로만 움직이는 마음에도 없는 감사, 생활로는 조금도 표현되지 않는 형식적인 감사는 하나님의 마음만 더 아프게 합니다.
 
어느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요즈음 교인들은 하나님을 마치 예비용 타이어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예비용 타이어는 사용되는 타이어가 갑자기 펑크가 나거나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를 위해 준비해 둔 것입니다. 사용하고 있는 타이어가 별일이 없다면 결코 예비용 타이어는 말 그대로 예비용일 뿐입니다. 이처럼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힘과 능력, 자신의 생각대로 잘 살다가 가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 감사인들 진정한 마음이 담겨 있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의 예배나 기도나 찬송이나 섬김을 결코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시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제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윌리엄 로우’는 ‘엄숙한 부르심’이라는 책에서 행복을 찾는 비결을 묻는 사람에게,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빠르게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데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성자는 기도를 많이 했다든가, 금식을 많이 했다든가, 혹은 자선을 많이 베풀었다든가 한 사람이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한 사람이다.”라고 했으며, ‘성 어거스틴’은 “감사의 분량이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의 척도”라고 했습니다. 본문 16-17절을 봅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사도 바울은 찬양도, 기도도, 예배도 진정한 감사로 하라고 권면합니다.
 
지금까지 나와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나라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감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장 삭개오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 삭개오는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며, 혹 속여 빼앗을 것이 있다면 네 곱절을 갚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을 찾아와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의 표현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불평과 원망거리를 찾자면 한도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음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면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본문 12-14절(공동번역)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뽑아 주신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성도들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새롭게 하여 13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14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 이 말씀의 내용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생활이란, 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영국의 대 설교가인 ‘스펄젼’ 목사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깃불을 주시고, 전깃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여 높이며 찬양하는 행위이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며 은혜의 통로입니다. 진정한 감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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