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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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계절 행복한 사람들(눅14ㅣ15-24)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974회 작성일 2001-12-01 23:49
평화의 계절 행복한 사람들 / 눅14:15:24

* 들어가는 말

오늘부터 대강절(Advent)이 시작됩니다. 대강절은 하나님의 평화가 이 땅에 실현된 큰 기쁨의 절기이며. 동시에 영원한 평화와 기쁨의 날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평화를 선포한 평화의 계절입니다. 교회력(敎會曆)은 이 대강절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대강절은 교회력으로는 신년이 되며, 대강절 첫째 주일이 신년 정월 초하루가 되는 셈이다. 바로 오늘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 교회력을 따라서 2002 회계연도가 시작됩니다.
대강절 기간은 성탄절 전 4주간입니다. 대강절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도착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공항이나 기차역 대기실에 있으면 전광판에 어디에서 몇 시 발 비행기나 열차가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기록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대기실에서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식구들이나 손님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가 대강절입니다.
현대적인 의미로 다시 풀어보면, ①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감사하며, ②지금 내게 오셔서 함께 하심을 감사하며, ③약속하신 대로 마지막 날에 성도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며 믿음을 정비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대강절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기쁨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기다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다음, 어떤 신문기자가 그의 부인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기자가 “부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아십니까?” 라고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부인은 “나는 모릅니다. 내가 어떻게 그 원리를 알겠습니까?”그러자 기자는 “그러면 아인슈타인에 대해 무엇을 아십니까?” 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좀 건방진 듯한 기자의 물음에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그가 내 남편이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그가 열심히 연구했다는 것과 그의 진실한 인품을 압니다. 그런 까닭에 상대성원리는 모르지만 남편 아인슈타인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2000년 전에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고, 지금도 함께 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아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또한 나를 위하여 영원한 행복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예수님을 믿고 기다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대여섯 살 쯤 되는 어린여자아이가 국제선 대합실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깡총거리며 뛰어다닙니다. 너무나 명랑해 보여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즐겁니?”아이는 연신 싱글거리면서 “우리 아빠가 오시거든요.” “아빠가 어디 가셨는데?” “음ꀞ 몰라요. 아빠가 멀리 가셨는데 비행기 타고 지금 오신대요.”

아이에게는 멀리 출타하셨다가 돌아오시는 아빠를 기다리는 그 기다림이 마냥 즐거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쁨도 꼭 이와 같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에 집을 준비한 후에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은 성도들에게는 혼인잔치가 이루어지며 천국을 상속받는 큰 기쁨의 날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큰 잔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행복한 기다림이지요.

오늘 본문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중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 음식을 먹는 사람은 참 행복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인 ‘큰 잔치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비유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열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잔칫날이 되자 주인은 초청한 사람들에게 종들을 보내면서 ‘잔치가 준비되었으니 오십시오.’라고 손님들을 모셔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초청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들의 일거리를 핑계로 초대를 사양했습니다. 종들의 보고를 들은 주인은 화가 나서 ‘시내의 거리와 뒷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 병신들, 소경들, 절뚝발이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종들이 바쁘게 다니며 그들을 초대했지만 아직 잔칫상에 빈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더 후미진 곳들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와서 빈자리가 없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한 사람들을 비유하셨습니다. 주님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분명히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 행복한 자리에 앉을 사람들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 행복의 자리를 거절한 불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들이란,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 메시아를 만났지만 구원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를 소망하는 메시아 대망사상은 구약의 중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말라기 선지자까지 네 명의 대선지자와 12명의 소선지자들을 통하여 오실 메시아를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의 침략을 받아 고난이 있을 때마다 메시아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아를 만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히브리서11:39절에서 그 사실을 기록합니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 말씀은 구약의 믿음의 선조들이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지만, 메시아를 만나는 약속을 받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 후,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셨으나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으로는 만났지만, 정작 그들의 영혼이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위대하고 큰 것을 기대했습니다. 자신들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로마 군을 무찌르고, 유대인들에게 해방을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름 없는 시골 목수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30세가 될 때까지 멸시받는 지역인 갈릴리 나사렛에서 목수 노릇이나 했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선민사상과 정치적인 메시아를 고대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예수님은 메시아로써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했을 때, 나다나엘은 이 선입견적인 고집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요1:46,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결국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장로들과 그들의 추종자들, 그리고 줏대 없는 대다수의 평민들은 기다리고 고대하던 분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영접은커녕 박대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처형하고 말았습니다. 다만, 소외 받던 소수의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했을 뿐입니다.

주님의 비유는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은 죄악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화해의 자리로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잔치에 초대받은 유대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사정을 이유로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유대인을 떠나 이방인에게로 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도 이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사정을 핑계 삼아 진실하고 영원한 행복의 자리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원하면서도 정작 행복의 자리를 버리는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옛말에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해도 행복이 보장된다고 하셨는데, 온갖 이유를 대면서 불행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2. 뜻밖의 행복을 차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 보았던 것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구원의 큰 행복을 외면해 버린 불행한 사람들 덕분으로, 알지도 못했던 행복을 얻은 수지맞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로마서11:11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메시아를 알지도 못한 이방인들에게 느닷없이 주어진 행복,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 우리들의 행복입니다. 바로 본문의 비유가 바로 선민인 유대인들의 메시아 거부와, 이로 인한 이방인들에게 이른 구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마디로 횡재를 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역시 로마서11:20-21절입니다.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꺽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 귀중한 행복을 놓치지 않도록 굳게 붙잡는 한편, 이 행복을 예전의 우리들처럼 소외당한 자들에게 전하고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기쁨과 행복을 감사하며 누리지 못하고 세상의 현실에 매여 핑계한다면 우리도 역시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기껏 잘 살아도 백여 년을 사는 세상과 영원을 사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마태복음24:44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우리는 짧은 인생,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생명입니다. 없는 것을 억지로 얻으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염려들일랑 주님께 맡겨두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유감없이 누리며 감사합시다. 행복과 기쁨은 누릴수록 커집니다.

바스커 빌 (Basker Bill)이라는 신앙인의 짧고도 유명한 간증이 있습니다. 그는 일주일의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행복한 월요일, 복된 화요일, 즐거운 수요일, 유쾌한 목요일, 좋은 금요일, 영광스런 토요일, 하늘의 기쁨이 넘치는 일요일.”
이것은 일주일 내내 좋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함께하는 매일의 삶을 우리도 이렇게 기뻐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화목이 선포된 이 평화의 계절에 행복의 자리를 지키며 누리는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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