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그리스도인의 책무(마22:37-40)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157회 작성일 2001-11-05 11:10
*** 들어가는 말

사도행전 6:15절을 보면, 전도하다가 잡혀 온 스데반의 얼굴에 대하여 모인 사람들이 이렇게 표현합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비록 돌에 맞아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지만, 그가 마음에 새겨놓은 소망은 얼굴을 빛나게 했습니다. 이처럼 얼굴은 그 사람의 인품이 빚어내는 일종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과 태도는 즐거운 얼굴을 만들고, 슬픈 마음은 어둡고 우울한 얼굴을 만듭니다. 짜증스럽고 불만스러운 마음은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얼굴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생 경륜이 사십 년이 지나면, 자기 얼굴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하여 저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세상 나라에서는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자유를 제한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나 정신병자는 책임 의식이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제한적인 자유가 주어집니다. 또한 성인이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금치산’( 禁治産)이라는 판결이 내려집니다. 이들은 자신의 재산까지도 스스로 처분하지 못하는 등, 자유를 제한 받게 됩니다. 즉 세상에서는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자유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첫 사람인 ‘아담’과 그의 배필 ‘하와’는 책임을 알고 의무를 이행할 줄 아는 성숙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계약을 맺고, 자유의지와 함께 자유로운 삶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여기고 스스로 그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 이후, 인간은 자유 하는 형상을 잃었으며, 주어진 소명을 망각하고 무책임하게 육신적 쾌락만을 위하여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 된 우리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명의 삶을 살도록 명하셨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창세기2:16-17절을 봅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에게 ‘선악과’를 지정해 두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해야 하는 것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즉 사람은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구별하면서 옳게 살 의무가 있다는 말입니다. ‘의무’란, 한자로 풀어보면, ‘옳을 義’자와 ‘힘쓸 務’자로써, ‘옳은 것을 힘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옳게 살 의무가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책임과 의무야말로 절대적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하건데 책임과 의무에는 분명한 한계선이 있습니다.

뉴잉글랜드 감리교단의 ‘스테픈 올린’ 목사는, 한 때 그의 사역에 대하여 크게 낙심하고, 목회 직을 떠나려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어떤 의미심장한 꿈을 사용하셔서 그의 영적 소망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는 자기가 굉장히 딱딱한 바위를 깨뜨리기 위하여 곡괭이를 들고 일하고 있는데, 팔에 힘을 주어 바위를 치고 또 쳐도 표면조차 조금도 부서지지 않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소용이 없구나.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위엄 있는 나그네가 그의 곁에 나타나더니, “너는 이일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네,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왜 너는 그것을 그만 두려고 생각하느냐?” “모든 것이 헛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바위가 깨어지든 안 깨어지든 너의 임무는 곡괭이질을 하는 것이다. 오직 그 일만이 네 손안에 있는 것이지, 그 결과까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자 계속하라!” 그리고는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는 힘 드는 수고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서 그 단단하던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스테픈 올린’은 꿈에서 깨어나 충성만이 자신에게 요구되는 전부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포기하기로 결심 했던 그 일을 다시 되돌렸고, 얼마 후에 그의 사역에 큰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할 뿐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이 사실을 고린도전서3:5-8절에서 분명하게 밝혀주십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하여 책임과 의무를 다할 뿐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들의 한 일에 대하여 각자에게 상급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11:42,46절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심한 질책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무도 이행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던 것입니다.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46,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2.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본문을 봅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한 곳 더 봅시다. 요한일서4:10-11절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 두 말씀들은 모두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면, 사랑해야 할 근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의무감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값없이 받았으므로, 우리 또한 대가없이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에서 베어 나오는 그런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한 사랑을 하기 원한다면,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져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할 줄도 모르기 때문이며,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한편, 사랑을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쉽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아마 여러분이 성경을 주의해서 읽어보셨다면 그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갖기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하지 말라.’고 하는 제한과 ‘하라.’고 하는 명령입니다.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사람의 근본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려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다른 사람이 편안하고 기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작은 배려이며 사랑의 시작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걸어가다가 걸려서 넘어질 뻔한 장애물이 있다면,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그것을 치워놓는 것이 타인을 위한 배려입니다. 또 하나의 배려는 힘들어하는 이웃의 짐을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6:2절에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배려가 생활화 되고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최고의 법이며, 최고의 은사입니다.

3. 주어진 생명을 보존하면서 생명을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9:27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으며, 야고보서 1:27절에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미 생명을 소유한 성도는 세속의 유혹으로 인하여 그 생명을 잃지 않도록 지켜가야 합니다. 자신의 생명이 없고서야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전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지키고 성숙시켜가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회복을 돕는 것입니다. 이는 내게 생명을 주신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생명의 길이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생명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하신 명령이자 의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28:19,20절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딱딱하게 의무사항을 열거한 것은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자유인이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그 자유를 제한당하거나 박탈당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한다면 어떤 은혜도 입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6:33절에서 말씀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성도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생활을 인도하시고 친히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현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과 소망에 마음을 두고 주어진 사명에 충성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충성된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은혜를 현실에서도 누리고, 더욱 큰 은혜를 예비해 두는 충성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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