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하나님을 아십니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166회 작성일 2018-12-05 23:23
*** 하나님을 아십니까? / 에베소서 4:11-16
 
에베소서 4:11-16,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들어가는 말
 
오늘 설교 제목이 ‘하나님을 아십니까?’라고 했는데 참 도발적인 질문이지요? 아마도 대뜸 이렇게 말하고 싶은 분도 있겠지요. ‘내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지가 얼만데 하나님을 아느냐고 묻습니까?’그런데 저는 흔히 모태신앙이라 말하고, 60년이 넘도록 신앙생활을 해 왔으며, 그 중에서 절반인 30년이 넘도록 성경을 연구하며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간히 말씀드렸듯이 저는 아직도 하나님을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다 이해할 수도 없지만 가늠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저는 “주님, 왜 저를 이렇게 사랑하십니까?”라고 물으면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기도 합니다. 다윗도 그의 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8:3-5절입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십니까?’ 이는 사람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기이하신 사랑을 노래하는 내용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렀을 때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깊으신 사랑을 깨닫게 되겠지만 아직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신비롭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도록 매일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고 하는 이유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며 능력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9:24절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리고 요한복음 17:3절에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은 섬기는 자들의 당연한 자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수록 하나님의 은혜 또한 더 깊게 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통로가 되며 하나님의 깊으신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에베소서는 교회의 성격이나 교회의 기초, 교회에 대한 바른 의식 등 교회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이 많아서 교회론을 말할 때 자주 인용합니다. 특히 본문말씀은 주된 주제가 직분론 혹은 은사론입니다. 이 본문으로 여러 번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내용을 잘 알고 있을 줄 압니다. 오늘은 방향을 조금 달리 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합니다. 에베소서는 이름 그대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사도 바울이 전도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을 때 기록하고 보낸 편지여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이 세 서신과 함께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본래는 디모데후서도 옥중서신이지만 이 편지는 내용상 목회서신으로 분류합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의 말년에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기록했다고 보는데, 그 내용은 박해와 이단의 세력이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에서 신앙을 굳게 세우고 교회가 하나 되게 하기 위한 글들입니다. 본문말씀의 내용은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직분자를 세우셨다고 말씀합니다. 특히 직분을 세우신 목적을 12절에서 말씀합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리고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울 수 있는 방법과 효과에 대하여 13-14절에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든든하게 설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서 충만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은 그리스도인 개개인과 교회가 강하고 든든하게 설 수 있게 합니다. 이런 영적인 성장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의 속임수와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단이나 사이비, 거짓 교훈에 흔들리지 않게 위하여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알면 결코 이단이나 거짓 교훈에 끌려 다니거나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 에베소교회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유대인들과 이방인으로써 기독교에 입문한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는 기류가 있어서 교회가 분열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회들이 이런 분열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과 화합하려는 진보주의와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보수주의 신앙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깊이 알아서 분열을 막고 하나를 이루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 세상이 혼란할 때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들 중에는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동물들이 많습니다. 독수리는 사람의 시력보다 7배나 밝고, 귀소본능을 가진 조류나 어류 동물들은 수천 Km나 떨어져 있어도 정확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우리 가까이 있는 개들의 후각능력은 사람의 100만배 이상이라고 하며, 청각 능력 또한 사람과 비교하면 4배나 먼 거리의 소리를 분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약탐지, 폭발물탐지, 수색 등. 특수한 분야에서 사람들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타고난 능력이 있기도 하지만 수많은 냄새와 소리가 뒤섞여 혼란한 가운데에서도 자신이 목적한 냄새나 소리를 찾아내도록 훈련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성경공부, 제자훈련, 청지기훈련 등 말씀을 듣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사람의 속임수나 사탄의 유혹에 밀려 요동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19:105절에서 시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 3:16-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경의 목적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양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리스도인이 양의 성향과 비슷한 것이 많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양들은 다른 동물에 비하여 길을 잘 잃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목동은 양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고 합니다. 물론 양이 고의적으로 잘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들은 풀을 뜯다가 길을 잃습니다. 양들은 단순히 앞에 보이는 풀밭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자기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양들은 쉽게 길을 잃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일부러 잊으려 한다거나 의도적으로 떠나려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바쁜 생활을 하다보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주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성경 읽을 시간도, 기도할 시간도 잊고 바쁘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시대는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딤후 4:3-4)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디모데후서 3:13-14절입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
 
만일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바쁘고 혼란스러운 때에는 결코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평소에 마약이나 폭발물을 찾는 훈련이 잘되어 있는 개들은 아무리 다른 냄새와 소리로 혼란스러워도 자신이 추적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따라갑니다. 하지만 훈련이 안 된 개들은 결코 찾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렸다고 탄식하십니다. 호세아 4: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이런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6:6절에서 하나님께서 요청하십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하십니다. 골로새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기도를 봅시다. 골로새서 1:10절입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즉 우리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고 순종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힘이 미치지 못하는 크고 위대한 일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된 삶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호세아 6:3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고 하십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기억하십니까?
그녀는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 하나님을 증오하면서 외쳐댑니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입니다. 난 결코 다시는 배고프지 않겠습니다. 거짓말을 하든지 도둑질을 해서라도 배고프지 않겠습니다.”
마치 요나처럼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께 반항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라.’ 고 전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자신의 뜻과 반대된다는 이유로 다시스로 도망쳤고 니느웨를 용서하시려는 하나님께 반항했습니다. 스칼렛 오하라도 하나님께 반항하며 동생의 애인을 빼앗아 재혼을 하고, 그 남편이 죽자 돈 많은 선장 ‘래드 버틀’과 재재혼을 합니다. 딸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듯 했지만 결국 딸도 남편도 모두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맙니다. 돈도 남편도 자식도 ‘스칼렛’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애당초 ‘스칼렛’은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마치 ‘이삭’의 아들 ‘에서’가 한순간의 배고픔을 참지 못해서 동생인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것과도 같고, 가룟 유다가 몇 푼의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과 같습니다.
 
한 번 잘못 들여놓은 생활의 습관은 바꾸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랜 습관은 자신의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아버립니다. 주인인척 하는 것이지요. 이 가치관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신의 사상으로 자리 잡아 버립니다. 한 번, 두 번 말씀을 멀리하고 기도를 멀리하고,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하면 결국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멀리 떠나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말씀을 전하면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고린도전서 15:33-34절입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면 세상적인 악한 친구들의 속임에 끌려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깊이 알 수가 있습니까?
 
본문 15-16절을 봅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이 말씀에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자라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이런 영적인 성장이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기에 이르게 합니다. 성장의 방법은 ‘사랑 안에서 참된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가장 잘 아는 길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성경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교통을 통하여 그 사랑에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게 되면 참되고 진실한 삶은 따라오게 됩니다. 이런 사랑의 삶이 성도들 안에서 활동하게 되면 성도들이 서로 연결이 되고 하나의 뜻을 이루게 되고 성장과 삶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깊이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때입니다. 세상 일이 바쁘더라도 영원한 생명보다 소중하지는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생활화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영원한 생명을 준비할 뿐만 아리라 지금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더 깊은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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