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근원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298회 작성일 2018-11-22 21:51
***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근원 / 히브리서 4:12-16
 
 히브리서 4:12-16,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영적인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없습니까? 저는 항상 이런 영적인 능력을 사모하며 성령 충만하시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는 모든 은사를 주관하셔서 각 사람에게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2:11절입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주어 주시는 것이니라.” 바로 앞의 구절까지 각종 은사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 이 은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삶에는 여러 분야가 있습니다. 예배, 기도, 찬양, 말씀, 섬김과 봉사, 헌금 등. 이러한 여러 분야가 있지만 이 모든 일은 세상적인 원리나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원리와 방법이 작용합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이 이 영적인 원리와 방법입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할지라도 이 영적인 원리를 알지 못하면 그저 무능한 종교생활일 뿐입니다. 본문 앞쪽의 4: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잘 알아도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무능한 것일 뿐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아직도 사탄 마귀를 두려워하고 세상을 두려워하는 작은 능력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에 우리 그리스도인을 능력 있게 하는 그 능력의 근원을 잘 알고 담대한 믿음과 능력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12-13절을 봅시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자신을 계시하시고 나타내신 가장 확실한 증거가 성경말씀입니다. 성경말씀은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말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으며 모든 것을 드러내신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말씀은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도 찔러 쪼개며 그 속을 밝히 아시는 활력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신비롭게도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인격을 가지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1절을 봅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에서 나타내시는 ‘태초에 계셨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만물을 창조하신 바로 그 말씀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말씀이십니다.
 
먼저 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되는지를 봅시다. 에베소서 6:13-17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완전 무장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완전 무장한 대부분의 장비는 자신을 보호하거나 방어하는 것들입니다. 유일하게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검이라고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40일 금식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에 세 번 모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허락하신 유일한 공격용 무기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본문에서는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능력의 말씀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담대한 믿음을 일으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근원입니다. 로마서 10:17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의 시작, 믿음의 성장 그리고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믿음이 총이라면 말씀은 실탄입니다.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은 마치 실탄을 넉넉하게 소유한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앞서 보았던 히브리서 4:2절의 말씀에서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줍니다. 즉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고 암송한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받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믿음이 좋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근원이 되지 않으면 이 또한 무능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깨달은 것을 믿음으로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생각이 삶에서 실행되는 것이 능력의 시작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서 실행 될 때 진정한 능력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믿음으로 받는 사람도 있고, 부정적으로 받는 사람도 있고,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무관심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말씀 내용에서도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자세를 보여주십니다. 먼저 에스겔 33:30-31절을 봅시다.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 자세는 ‘외식적인 자세’였습니다. 입으로는 ‘아멘’ 하면서 잘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만을 따랐습니다. 이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이러한 외식적인 신앙의 자세는 하나님께서 거부하시며 징벌을 부를 뿐입니다.
 
다음으로 사도행전 17:11-12절을 봅시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베뢰아는 마게도냐 지역의 도시인데 이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그 말씀의 의미를 알기 위하여 더 깊이 연구했다고 했습니다. 베뢰아의 성도들은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연구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는 믿는 사람이 날마다 더했으며 사회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까지도 변화되게 했습니다. 또 다른 예가 사도행전 16:13-15절에 있습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바울 전도단이 유럽 전도를 시작할 때에 기거할 곳이 없었는데 마침 강가에서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듣는 루디아라는 여인의 마음을 여셨고, 그 여인과 가정이 모두 세례를 받아 그 집이 유럽전도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0:9절입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집회를 할 때에 떠날 때가 임박하여 마지막 날에 밤이 오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그런데 창문에 걸터앉아 말씀을 듣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밖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이 죽은 청년을 다시 살려내어 성도들이 큰 위로를 받았지만,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께로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며 유익이 됩니다. 말라기 3:16절을 봅시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경건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기념책에 그 사실을 기록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십니다.
 
복음서에는 비슷한 내용의 이적이 두 번 기록된 것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5:4-5절을 봅시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그리고 요한복음 21:3-6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더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은 두 이적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와 말기에 일어났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제자들이 큰 능력으로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된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행한 것이 능력의 근원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혼란과 환난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능력의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어야 혼란도, 환난도,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복이 있습니다. 이 중에 첫 번째 복과 여섯 번째 복이 말씀과 관계가 있습니다. 계시록 1:3절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리고 22:7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으리라 하니라.”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듣고 묵상하여 생활 속에서 순종하여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 들을 때에는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4: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기도와 말씀은 뗄 수가 없습니다. 말씀이 근본이 되지 않는 기도는 뜬구름과 같고, 기도 없는 말씀은 깨달을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죄로 물든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외면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겠습니까? 하나님의 편지를 외면하고는 구원도 믿음의 능력도 없습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육신의 음식보다 더 알뜰하게 챙기십시오. 본문 1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하십니다. 말씀이 여러분을 살게 하는 생명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이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때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어 있어서 진정한 능력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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