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시기를 가늠하는 지혜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126회 작성일 2018-11-01 13:11
*** 시기를 가늠하는 지혜 / 마가복음 13:28-33
 
 마가복음 13:28-33, “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경매장에 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전에 부산 자갈치 시장에 갈 때면 때때로 바닷가 공판장에서 수산물을 경매하던 것을 볼 때가 있었습니다. 사이렌이 울리면 사람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모입니다. 사이렌은 경매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습니다. 경매사가 높은 단에 서서 줄지어 있는 수산물들을 하나씩 경매에 붙입니다. 경매사가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며 예리한 눈으로 입찰자들을 훑어봅니다. 입찰자들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가린 작은 판을 경매사가 보도록 내밉니다. 경매사는 입찰자들이 제시한 숫자를 보고 낙찰자를 고릅니다.
그 때에 입찰자가 원하는 물품이 나왔다면 지체 없이 자신의 예상가격을 적어서 입찰해야 합니다. 만일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거나 가격 결정을 못하여 머뭇거린다면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기게 됩니다. 경매에서는 낙찰가를 예상하는 것과 입찰하는 시기가 중요합니다. 원하는 물품이 있다면 결코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가 마치 긴박감이 흐르는 경매장의 분위기처럼 느껴집니다. 세계의 열강들이 입찰을 대기하고 있는 듯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긴박한 환경에 대한 예고가 성경에 등장합니다. 이 시간의 본문말씀을 비롯하여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말세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 비유라고 하는 자연계의 현상을 통하여 세상 종말에 대하여 경고하십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렇게 예수님께서 자연계의 현상을 사용한 것은 당시의 유대인들이 자연의 징조를 통하여 계절을 감지하는 생활 습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유대인들의 습관을 근거하여 알아듣기 쉽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하여 말씀하신 이 내용이 지금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서 사람들을 긴장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초대교회에서는 세상의 종말이 몇 해 남지 않은 것으로 이해했으며, 5세기에 로마제국이 멸망할 때에는 로마의 멸망은 곧 세계의 종말이라고 기독교는 해석했습니다. 14세기에는 유럽에 흑사병이라는 전염병이 만연하여 유럽인구의 거의 ⅓이 죽은 대참사가 벌어졌는데, 모든 교회는 입을 모아 지구의 종말이 왔다고 단언했습니다. 16세기에는 전 유럽에서 소위 기사 전쟁과 농민 전쟁이 일어나 대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그때에도 교회들은 이제는 정말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했습니다. 18세기에는 포르투갈에 대지진이 일어나 하룻밤 사이에 15,000명이 죽었는데, 그 당시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지금은 참으로 지구의 종말이 왔다.’고 했습니다. 이런 지구 종말에 대한 예언은 그 후에도 줄기차게 이어졌고 오늘날에는 구체적으로 그 날까지 예언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이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종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비록 사람들의 관심이 잘못되기는 했지만, 종말은 반드시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도 그들처럼 섣부른 생각을 품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보려 합니다.
 
※ 무화과나무 비유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본문 28-29절을 읽어봅시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이 무화과나무 비유는 분명히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곧 세상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무화과나무 비유부터 이해해야 하겠지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의 무화과나무는 가을에 낙엽이 지고 봄에는 가지가 수분을 빨아들이면서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돋습니다. 그리고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잎이 점점 많아지고 짙어집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무화과나무가 잎이 돋기 시작하면 봄이 왔다는 것을 느끼고, 잎이 많아지고 짙어지면 여름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보편적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라는 연결 단어를 통하여 보편적인 진리로 ‘재림에 대한 말씀’에 접목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무화과나무 비유는 28-29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사이에 두고, 앞부분인 5-27절에 종말의 징조들과 그 징조 끝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뒷부분인 30-37절에서는 종말의 시기와 확실성에 대한 보증, 그리고 종말을 사는 성도들의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특히 비유와 관계된 것은 뒷부분입니다. 이 짧은 말씀 속에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는 경고를 33, 35, 37절 이렇게 세 차례나 하십니다. 이는 앞부분에서 말씀하신 현상들이 나타나거든 재림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고 준비해야 함을 일깨우십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지금까지 있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전에서 나올 때에 성전의 웅장함에 대하여 감탄합니다. 바로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성전파괴를 예언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이 조용한 시간에 예수님께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나며 이런 일이 일어날 때에 어떤 징조가 있을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재림이 임박하게 되면 그 사실을 깨닫게 하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이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 30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하여 지금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잘 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라는 말인데, 이 말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살던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대”라는 말은 앞부분에서 말씀하신 ‘적그리스도의 출현, 전쟁과 전쟁의 소문들, 지진, 기근,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 등을 보게 되는 세대’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자연현상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이 세대가 지나가지 전에”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이런 가증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비유로 가르치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경고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런 가증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세대의 사람들에게 마지막 심판의 때를 준비하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화과나무 비유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이런 가증한 일들이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화과나무 비유의 경고는 지금 우리 세대에 하시는 것입니다.
 
※ 왜 우리 세대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입니까?
 
이 말씀을 들으면 분명히 사람들은 ‘무슨 근거로 우리 세대에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하느냐?’라고 말 할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각 시대마다 ‘종말이 왔다.’는 말들이 있어 온 것처럼 우리 세대에도 그렇지 않겠느냐고 하겠지요. 사실 이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알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궁금해 했던 것이 이 문제였습니다. 사도행전 1:6절입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하니”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궁금증을 일축시키십니다. 7절입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즉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제자들이 알아야 할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예를 들어, ‘이 일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이 지난 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다면 제자들이 이해했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대하여 알 필요가 없다.’고 하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도 알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조차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다니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 12:8-10절을 봅시다.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하니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다니엘은 천사들이 전하는 종말의 때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여 그 의미를 물었지만 하나님의 사자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때에 지혜 있는 사람은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지혜가 있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5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사도 바울은 ‘어둠에 있는 자들에게만 밤에 도둑같이 임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죄악 중에 사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도둑같이 임하겠지만, 빛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알고 예수님을 알지 때문에 도둑같이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님을 믿는 거듭난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깨어있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빠져서 영이 잠들게 되면 재림의 때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대하여 한 가지 이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 32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저도 예전에는 의아했던 구절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신데 왜 당신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모르실까?’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아버지만 아신다.”는 이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다”라는 단어는 항상 과거시제에만 사용되지만 ‘완료형’일 때에는 ‘깨닫다.’ ‘지식을 갖다.’처럼 현재적의미를 가집니다. 본문에 사용된 단어는 완료형으로써 ‘예수님께서 아직 인간이시던 때’를 지칭합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는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비밀에 붙여졌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부활하셔서 성자 하나님으로 계시는 지금은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권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당연히 지금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재림의 때를 아십니다.
 
제가 요즘 자주 세계의 상황들을 말씀드리고 종말의 징조들을 거론하는 이유가 바로 ‘지금이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이런 종말의 징조라고 한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 뭘 별스럽게 말하느냐?’고 한다면 어쩔 도리는 없습니다.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못하니까요. 하지만 노아의 때에도, 롯의 때에도 사람들의 반응이 그러했습니다. 베드로후서 3:3-5절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고 합니다. 이제는 바쁘더라도 조금 더 시대의 흐름에 관심을 가지셔서 시기를 가늠하여 대처하는 지혜로운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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