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나는 믿음의 경주자입니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150회 작성일 2018-10-03 16:32
*** 나는 믿음의 경주자입니다. / 히브리서 12:1-8
 
 히브리서 12:1-8,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 들어가는 말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아마도 운동경기장의 모습이 떠오를 것입니다. 예전의 올림픽 경기를 떠올려보십시오. 운동장의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 자신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응원단들과 함성, 수많은 시선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준비했던 기량으로 경주하는 선수들 등. 상대 선수를 이길 때마다 땅을 뒤흔드는 함성들이 사람들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합니다. 아마도 오늘 본문말씀을 기록한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경기장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은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가 관중석에 앉아 있는 관람객이 아니라 운동장에서 경기에 임하고 있는 경주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응원하는 응원단은 앞서 간 믿음의 선조들 즉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이 말씀은 ‘지금 우리가 수많은 증인들 앞에서 영적인 믿음의 경기를 하는 경주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는 지금 영원한 생명을 걸고 싸우는 경주자들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경주자가 아니라 관객으로 착각하며 삽니다. “강 건너 불구경한다.”는 말처럼 지금의 영적인 싸움을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끊임없이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호 4:14)는 말씀처럼 우리도 깨닫지 못하면 망하게 됩니다.
 
예전에 몇 번 한 적이 있어서 아실 이야기입니다. 평안도 사람들에게서 전해져 내려오는 ‘용강의 올꾼이’라는 익살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옛날 평양에 ‘올꾼’이라는 머슴이 있었습니다. 그는 깊이 생각할 줄을 모르고 단순하게 행동할 줄만 아는, 어떻게 보면 선량하고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그를 불러서
“얘, 내일 아침에 일찍이 ‘용강’에 좀 다녀와야겠다.”
라고 미리 분부해 두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주인이 심부름을 시키려고 ‘올꾼’이를 찾으니 온 데 간 데가 없습니다. 점심 무렵이 지나서야 올꾼이가 나타났습니다. 화가 단단히 난 주인이
“너 이놈, 오늘 심부름해야 하니 다른 곳에 가지 말라고 어제 미리 일러두었건만 어딜 갔었느냐?"
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런데 올꾼이는 오히려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주인님이 아침 일찍 용강 갔다 오래서 용강 갔다 왔는 뎁쇼."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이 시장에 가니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말처럼 목적도 없이 사는 사람에 대하여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시대는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가는 시대’입니다. 그만큼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적하는 사탄과 그의 무리들은 미친 듯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8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하시며, 마가복음 13:22절에서는 예수님께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고 하십니다. 마귀들이 공격하는 대상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대적들과 싸우는 믿음의 경주자들입니다. 불신자들은 마귀의 하수이기 때문에 결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편들지 않습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자신은 영적인 경주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이 경주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인생 삶 자체가 경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기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특히 우리 민족은 어려서부터 일등을 해야 하고 오로지 이겨서 정상을 차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며 느긋한 삶을 즐기던 민족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일등을 부르짖으며 바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이런 시대가 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4:3-4절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바로 ‘그 때’입니다.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심각한 오류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경기종목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서울을 출발한 고속버스가 잠시 휴식을 위하여 휴게소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버스 기사는 졸고 있는 승객들에게 안내 방송을 했습니다.
“잠시 후 이 차는 여러분의 목적지인 부산을 앞두고 휴게소에서 15분간 쉬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버스의 번호를 잘 기억하셔서 승차하시기 바랍니다.”
기사의 안내 방송을 들은 승객들이 모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부산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광주로 갈 차가 왜 부산으로 가요?” “여기가 어디 에요?” “나는 광주 가는 사람인데?”
승객들의 소동에 당황한 고속버스 기사가 휴게소에서 내려 차 앞에 붙은 행선지 표지를 보았습니다. 그 표지에는 ‘광주행’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당황한 기사가 말했습니다.
"이런 내가 차를 잘못 탔네!”
 
정말 황당한 상황입니다. 이 기사는 서울과 부산 노선을 운행해야 했기 때문에 분명히 자신이 가야할 곳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차를 잘 못 탔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앞서 ‘자신의 경기 종목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이는 영적인 경기를 해야 하는데 육적인 경기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히 자신의 목적지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행 버스를 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황당한 기사처럼 지옥행 버스를 타고 세상적인 경주에 열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바른 목적지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25-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두 곳이 있습니다.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그리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이 두 말씀은 모두 바른 방향과 바른 목적을 말씀합니다. 즉 ‘자신이 지금 경주하는 경기의 종목과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잘 달려도 골인지점을 잘 못 알고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열심히 살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하는 영적인 믿음의 경주입니다. 이 사실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영적인 믿음의 경주자는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본문 4-6절을 봅시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이 말씀은 믿음의 싸움을 하는 성도들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합니다. 이 말씀에서의 초점은 4절의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이 말씀입니다. 즉 성도들이 죄와 마귀의 권세와 싸우기는 하는데 적당히, 대충, 어영부영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이 말씀을 듣는 대상자들은 영적인 싸움을 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믿음의 경주자들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자신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면 마귀의 권세와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벗어버려야 할 세상의 것들을 오히려 더 많이 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육신적인 욕망은 벗어버리고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하시는데 성도들은 여전히 육신의 삶에 푹 빠져 영적으로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싸움은 어떤 것입니까? 에베소서 6:10-13절을 읽어봅시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우리 그리스도인이 싸워야 할 경기장은 영적인 것이며 싸움의 대상들은 사탄의 세력들과 이들의 통제를 받는 세상의 통치자들, 권세와 세상 주관자들입니다. 지금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기독교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이 나라 정부가 세상 권세로 무장하여 동성애, 동성혼, 성 평등이라는 무기로 기독교를 공격하면서 복음전파를 막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정부가 한국 기독교의 침입을 경계하면서 공직자들에게 기독교 통제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내 한국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교회를 철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기독교라고 적폐로 몰아 죽이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들이 마음대로 섹스하는 것이 권리이며, 동성애를 적법하고 정상이라고 하며, 성전환과 낙태를 인권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법을 반대하는 기독교를 인권을 무시하는 적폐라고 합니다. 9월 29일에는 제주도에서 퀴어축제를, 10월 6일에는 부산퀴어축제, 10월 21일 광주퀴어축제가 있습니다. 이 동성애를 막는 기독교를 성평등을 무시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적폐라고 말살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깨어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가면서 피 흘리도록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싸움입니다. 다름 사람이 피 흘려 싸울 때에 우리는 자신의 평안과 안일만 위해 산다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뿐일 것입니다. 싸워야 합니다. 물론 영적인 싸움이 이것만은 아닙니다. 자신 안에 있는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욕구와도 싸워야 하고 악한 영들의 미혹과도 싸워야 합니다.
 
최근에 이 싸움을 먼 산에 불 보듯 하여 기독교가 무너져버린 영국의 근황을 잠깐 보면 이렇습니다. 영국에서 성전환 아동이 10년간 4천% 증가했다고 합니다. 2009~2010년에 성전환 시술을 언급한 아동은 97명에 불과했지만 2017~2018년 사이 2510명으로 늘어나 4415%나 급증했다고 미국 크리스천포스트가 18일 보도했습니다. ‘성전환 시술’을 받은 여학생은 9년 전 40명에서 지난해 1806명으로 4515%나 증가했으며, 남학생 수는 동기간 56명에서 713명으로 증가했습니다. 2017년에서 2018년까지 성 전환 시술을 언급한 아동 중 45명이 6세 이하였으며 가장 어린 아이는 4세였습니다. 이 모든 원인은 교회가 믿음의 싸움을 하지 않고 방관한 결과입니다. 교회는 무너졌고 국가는 무슬림화 되었고, 국민은 삶이 피폐해졌습니다. 우리도 막지 못하면 이렇게 됩니다. 막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9:24-27절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처럼 믿음의 싸움을 최선을 다하여 하도록 격려도 하시지만 본문 5-8절 말씀처럼 때로는 징계를 통하여서 깨어있도록 하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깨어 있으십시오. 깨어 있어 최선을 다하여 믿음의 경주를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고 하십니다. 우리도 인내함으로 끝까지 믿음의 경주장에서 승리하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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