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693회 작성일 2018-07-13 13:38

***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 / 요한일서 3:13-24

 

요한일서 3:13-24,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 들어가는 말

 

며칠 전에 인터넷 편지에 이런 내용이 올라왔습니다. 제목이 ‘엉뚱한 메뉴가 나오는 식당’이라고 했습니다. 글의 서두가 이렇습니다.

“라면을 시켰는데 우동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햄버거를 시켰는데 만두가 나왔습니다. 이럴 때 문득 주문을 잘못 넣었는지 한번은 의심하게 되는데, 나오는 음식마다 매번 다른 음식이 나오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이 이야기는 이웃 일본에 있는 어느 식당의 이야기입니다. 이 식당은 ‘주문 실수가 넘치는 식당’입니다. 장사할 마음이 있는 걸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항상 손님이 북적북적한 인기 있는 맛 집입니다. 엉뚱한 메뉴를 가져다줘도 화내는 손님은 한 명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식당에서는 특별한 이해와 배려가 넘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식당이 특별한 이유는 다름 아닌 아르바이트생들 때문인데, 이곳의 아르바이트생들은 모두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들입니다. 때로는 직전에 받은 주문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주문과는 다른 메뉴를 가져다주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최선을 다해 일하고 계십니다. 웃음을 잃지 않고 노력하고 계십니다.

많은 자원봉사자와 더불어 운영되고 있는 이 식당은 치매 환자들에게 자신들도 사회구성원의 일부분이라는 소속감을 주고, 함께하는 공동체 의식을 불어 넣어주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깊은 배려와 관심을 느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식당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많은 부분은 배려와 관심의 부재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이 안 되는 것도 배려와 관심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대에 대하여 경고하신 말씀도 관심의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24:12절에서 예수님은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또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세상에는 진실하게 법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너도나도 적당히 법을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적발이 되고 징계를 받게 되면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불법의 성행으로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관심이 멀어지면서 사랑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세상이 기독교를 상대로 거세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세력들은 자신들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백성들도 미혹하려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의 영적 상태는 전쟁 중입니다. 마귀들은 아예 기독교를 말살하려합니다. 인터넷상에서 ‘안티기독교’사이트들을 비롯하여 이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동성애, 퀴어축제, 무슬림, 인권법 등을 통하여 공격적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강 둔치에 반기독교 현수막과 피켓을 설치하고, 기독교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 사진과 글들(단군상이 파괴된 만큼 십자가를 부숴드릴까요?, 반기독교 선언문, 교회의 분쟁, 비리, 음해성 글 등)을 공원에 전시하여 사람들을 부추겼습니다. 왜 이러한 일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입니까? 또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물음에 대한 해결 방법을 본문말씀에서 제시합니다. 그 중심 구절이 16절“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말씀입니다.

 

※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현실이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을 알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현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는 거짓과 불법이 난무하여 진실한 사랑이 고갈되었고, 마귀들의 권세를 무장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최 권능 목사님처럼 ‘예수 천당, 불신지옥’이라고만 외쳐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지금은 선물을 들고 찾아가도 반가워하지도 않고, 아예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진실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니 관심가질 일도 없습니다. 자기 관심거리 외에는 귀찮은 존재일 뿐입니다. 사회는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조차 그들이 하는 것처럼 외면하고 무관심하거나 대적해도 되겠습니까? 그래도 된다면 본문에서처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지도 않았겠지요.

 

초대교회 당시에도 문제가 되었던 것은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진실한 사랑이 식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7,18절 말씀에서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하십니다. ㅁㅁ이 사실은 야고보서에서도 실질적으로 강조합니다. 야고보서 2:14-17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이 말씀에서도 강조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현실은 행함이 있는 진실한 사랑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큰 사랑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진실한 사랑으로 가는 길인 배려와 관심조차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요즘 자주 매스컴에 등장하는 주제인 ‘분노하는 사회’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폭력으로 분노를 표출합니다. 특히 기독교를 향한 사람들의 불신과 미워하는 감정이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본문 13-15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이유와 자신의 소속을 가늠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이‘참된 생명’ 즉 ‘영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소속이 다른 것이 미움을 받는 주된 원인입니다. 요한복음 15:18-19절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미워함이 지금 사회는 마귀의 조종을 받는 사람들에 의하여 권력을 힘입어 폭력적인 방법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더욱 우려하는 상황은 이런 폭력적인 방법이 무슬림들의 유입으로 현실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난민문제가 바로 순수한 난민이 아니라 무슬림들의 유입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무엇이겠습니까?

 

※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진실한 사랑입니다.

 

앞서 마태복음 24:12절 말씀을 보았었는데 공동번역 성경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또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사회가 이렇게 기독교를 박해하고 폭력적으로 변하자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을 움츠리고 사회에 대하여 경계하거나 마음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는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을 말뿐인 사람들로 치부하고 더욱 거세게 대적합니다. 이러한 악순환적인 현상이 지속되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쪽은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악한 그대로 살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사랑을 잃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준엄한 책망과 판결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현실의 해법은 단 하나입니다. 주님이 에베소교회에게 하신 말씀을 봅시다. 요한계시록 2:4-5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느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 말씀을 읽은 이유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당시 에베소교회의 현실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큰 섬김과 봉사, 희생만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사소하고 작은 배려와 사랑을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인사하기, 미소 짓기, 좋은 대화 나누기, 칭찬하기, 자리 양보하기 등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한 가족처럼 대하는 사랑입니다.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은 머릿속에 채워진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나타내는 실천적인 사랑입니다. 본문 18-19절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사랑은 이렇게 나타나는 사랑을 통하여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곧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미국 신시내티의 빈야드 교회(치유사역을 중심으로 하는 ‘존 윔버’ 계통의 빈야드 교회와는 다름)가 모범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빈야드 교회는 ‘2-20전략(Two twenty strategy)’이라는 전도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종으로 섬기는 전도’를 말하는데, 이 방법을 통하여 급성장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2-20전략이란, 복음 전도를 위해 한 달에 두 시간 이상 지역 사회를 섬기고, 20달러 이상을 사용한다는 내용입니다.

신시내티의 빈야드 교회는 청소 팀을 만들어 교회 주변 식당의 화장실을 자원해서 청소해주고, 상점에서 물건을 무료로 포장해주며, 무료로 세차를 해주고, 세차 중에 음료수까지 대접했습니다. 더 나아가 공중전화를 걸 동전을 제공하고, 시간초과 주차비를 대신 내주며, 오후에 피곤해 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장미꽃을 준비하여 한 송이씩 선물하는 등. 삶의 현장에 찾아가서 몸으로 직접 실천하는 적극적인 봉사 활동을 펼쳤습니다. 상식을 벗어난 예상치 않은 대접을 받은 주민들이 당황하며 그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어느 교회에서 왔는지, 또는 교회를 소개해달라고 하면 자기 교회가 아닌 인근의 작은 교회를 소개해주었다고 합니다.

 

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작더라도 진실한 사랑이며, 실천하는 사랑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듯이 지금 세상은 정보의 홍수입니다. 텔레비전, 인터넷, 휴대폰, 일반 전화기, 신문, 잡지 등 온통 자신을 보아달라는 선전과 정보 때문에 몸살이 날 지경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이런 것을 ‘스팸 메일’이라고 부르는데, 사람들마다 스팸 메일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의 말 잘하는 입술까지 보탠다면 사람들이 어느 쪽으로 폭발하겠습니까? 당연히 자신들과는 생각이 다르고 소속이 다른 교회 쪽이겠지요. 그러므로 지금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진실한 사랑을 실천할 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배려와 관심으로 세상에 다가가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그들도 마음을 열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폭력적인 공격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이러한 사랑의 실현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서 은혜를 입게 됩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이것이 일거양득입니다.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있는 신영복 교수가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신 교수는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20년간 복역했습니다. 1988년 8월 15일에 특별가석방 되어 그해 이 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책은 그가 수감생활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보낸 작은 편지들을 모은 것입니다. 신 교수는 이 책에서 진실한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차가운 빗속을 거닐 때, 남은 우산을 하나 빌려주는 것보다, 그와 함께 그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 참다운 사랑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했는데, ‘입장의 동일함’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나타내신 사랑이 동병상련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생명이 없는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이러한 동병상련적인 실천하는 진실한 사랑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이를 통하여 이 어두운 세상에서 작은 불을 밝히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그 기쁨을 영원토록 누리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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