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앞이 캄캄할 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6,184회 작성일 2018-05-18 16:18

*** 앞이 캄캄할 때 / 요한복음 11:17-27, 43-44

 

  요한복음 11:17-27, 43-44,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요즘 답답한 일이 많으시지요? 저는 지금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 이 나라 대한민국의 상황, 우리나라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상황, 중동을 둘러싼 세계열강들의 움직임 등.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지?’라는 막막함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을 느낍니다. 세부적으로는 국가인권위원회, 법무부까지 나서서 인권이라는 명분으로 소수성애자들을 옹호하는 법을 만들고, 낙태죄폐지, 학생 성 인권교육, 이제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까지 내세워 병역법 88조 1항(양심적 병역거부를 위한 병역법) 위헌판결 촉구 기자회견까지 열렸습니다. 법무부와 헌법재판소가 나서서 이 법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이제 군에 가기 싫은 젊은이들이 물밀 듯이 여호와의 증인으로 등록을 할 것입니다. 게다가 이슬람의 난민신청자들이 몰려오고 국가는 이들을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기본권을 주는 헌법개정안도 내놓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3차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으로 국무회의에 상정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계략은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시도입니다. 정말 산 너머 산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시면 그리스도인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됩니다. 지금 이 내용은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내 살기도 벅찬데 이런 답답한 이야기를 하는가?’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자기 생활에 빠져 잠잠하게 되면 나중에는 죽음을 마주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 나라의 교회, 이 나라 대한민국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신지 너무 궁금합니다. 그래서 그저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용서하시고 살려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를 살리시고 회복시키실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본문 25-26절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이 나라를 회복시키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환경을 고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여 우리를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예수님의 이적 이야기의 일부분입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예수님께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시고 사랑하셨던 베다니에 사는 세 남매의 가정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와 오빠인 나사로 세 남매였습니다. 그런데 가정의 기둥이자 가장 역할을 했던 오빠인 나사로가 심한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다급한 자매는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빠가 병들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고쳐주시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듣고서도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시고는 그대로 이틀을 더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사로를 깨우러 가자’며 나섰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나사로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나사로는 죽었고, 장례까지 치른 상태였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는 예수님께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하면서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며 자신의 희망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셨고, 아직 잘 깨닫지 못하는 자매에게 부활의 신앙을 깨우쳐주십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무덤으로 향하시고 나사로를 살려내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 속에서 마르다와 마리아 두 자매가 겪었던 그 암울함과 답답함이 느껴지십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에서는 조급함이나 답답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여유로움만 느껴집니다. 본문 앞쪽의 3-4절입니다.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하시더라.” 그리고 6절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이 말씀에 우리가 찾을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 앞이 캄캄할 때에는 멈추어 서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앞서 잠깐 설명한 대로 지금 한국교회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미래가 달린 영적인 전쟁 중에 있습니다. 사탄과 그 하수인들은 교회를 파괴하고 그리스도인을 파멸시키려합니다. 만일 이 전쟁에서 지게 되면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손실은 물론이거니와 생명의 위협까지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이런 현실은 교회 전체가 직명한 일이지만, 각 개인이나 가정에서도 여러 가지 상황으로 앞이 캄캄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할 때에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가장 우선 된 일은 딱 한 가지, 잠시 삶을 멈추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 때에 모압과 암몬 연합군이 유다를 치러 왔습니다. 그 대군을 본 여호사밧 왕은 자신은 그들을 대적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온 백성에게 금식을 공포하고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왕 자신도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역대하 20:12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힘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결과는 어떠했겠습니까? 유다 백성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대하 20:17) 결과는 역대하 20:22절에 있습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이처럼 자신의 수단을 모두 멈추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셨습니다.

 

우리 옛말에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처럼 사람들은 갑자기 다급한 일을 당하면 무엇이라도 도움을 바라고 잡거나 의지하려 합니다. 그래서 몸이 좋지 않으면 용하다는 의사를 찾고, 좋다는 약을 다 수소문하고, 경험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 일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에서 사람들은 캄캄한 일을 만나고 답답할 때에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도움을 구하고 대처하려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처럼 자신의 능력이나 세상을 의지하려는 것이 영적인 걸림돌이 됩니다. 시편 146:3절에서는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라고 하시며, 이사야 2:22절에서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십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을 질투한 대신들의 모함을 받아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개의치 않고 하나님을 섬긴 다니엘을 사자들의 입에서 건지셨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세 친구들은 죽음의 위협을 받고서도 하나님을 의뢰하고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아서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머리털 하나 그을리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17:5-8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이처럼 우리 앞에 환경과 상황이 캄캄하고 답답하고 어려울 때에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 남매는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가정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도 삶의 위기는 닥쳐옵니다. 오늘의 성도인 우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위인들에게 ‘생애에서 가장 잊지 못할 풍성한 은혜의 자리가 어디였는지?’를 묻는다면, 아마도 ‘생애의 가장 어둡고 차가웠던 자리’라고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한 배경에는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바쳐야 하는 뼈아픈 고통이 있었습니다. 요셉에게는 노예와 죄수라는 억울하고 괴로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수차례의 죽음의 고비와 핍박과 환난과 끝내 순교를 당하는 환난의 강을 건넜습니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면 할수록 사회와 이웃의 냉대와 시기가 따라옵니다. 세상은 자기와 삶의 색깔이 다른 그리스도인을 쉽게 용납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15:18-19절에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은 하나님의 더 큰 은혜로 향하는 길입니다. 야고보서 1:12절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어릴 때부터 지체장애자이면서도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체스터 스워’ 박사는 주님을 몹시도 전하고 싶어서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복종적이고, 헌신적이고, 쓸모 있고, 활동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으며 미국에서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는 자주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가진 최선의 것으로 나는 하나님을 섬길 것이며, 내가 그분을 필요로 할 때 그분이 그곳에 계실 것을 나는 압니다.”

어느 날, 조지아 주 아덴스시에서 그가 탄 차가 참혹한 사고를 냈습니다. 그는 사고 차에서 비집고 나와 길가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그는 피를 많이 흘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데 사고 지점을 첫 번째로 지나가던 차에는 뜻밖에 의사와 간호사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워 박사를 응급 처치하여 병원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는 생명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퇴원했을 때는 그의 손발이 이전의 장애 때보다 훨씬 더 나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앞서 보았던 본문 앞쪽의 4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나사로의 가정에서처럼 우리의 아픔이나 위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이 믿음으로도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때까지라도 내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영광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생각은 평안이며 잘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9:1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길은 분명히 가장 행복한 길입니다. 그러나 뜻밖의 어려움과 캄캄함이 닥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려운 상황들은 우리를 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더 큰 은혜를 베푸시려 함입니다. 그리고 또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일들은 내가 생각한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때에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에 즉시 가지 않으시고 이틀을 더 기다리신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시간을 기다리신 것입니다. 앞이 캄캄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전심으로 기도하십시오.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와 우리 교회와 이 나라의 교회와 이 나라에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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