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여호와를 잠잠히 신뢰하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231회 작성일 2018-03-03 15:10

*** 여호와를 잠잠히 신뢰하라. / 이사야 30:15-19

 

  이사야 30:15-19, “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17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들어가는 말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일컫는 말이 여럿 있습니다. 예컨대, 정보화시대, 디지털 세대, 스마트세대, 첨단과학 시대 등 현대의 특징적인 표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신용사회’라는 말이 첨단과학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필요를 일컫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컴퓨터로 제어되는 스마트화가 되어 가고 있으며, 이제는 카드마저 스마트 기기의 앱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서로 대면하지 않고도 물품구매와 금융거래까지 가능하가 때문에 무엇보다 개개인의 신용이 중요시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용(信用)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 바로 기독교 신앙입니다. 로마서 1:17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박국 2:4절을 인용한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정의합니다. 이 믿음이 세상적으로 말할 때 ‘신용(信用)’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신뢰(信賴)’라고 합니다.

 

  지난 주일의 말씀 제목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이었는데,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출발점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난 다음 단계는 ‘신뢰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고 멈춘다면 이는 신앙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알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온전하게 되는 조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잠잠하게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우리가 어떻게 신뢰 할 수 있을지를 살펴봅시다.

 

※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 목사는 반 나치운동을 벌였습니다. 본회퍼 목사는 1943년 나치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2년간 수감생활을 하다가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5월에 사형 당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자유는 불의와 타협한 안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면서 옳은 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본회퍼 목사처럼 극심한 박해나 생명의 위기 속에서 혹은 힘들고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를 잠잠히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백했던 에스더.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당신의 우상에게 결단코 절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이스라엘 군대를 능욕하던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 장수를 향하여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소리치며 물맷돌을 들고 나갔던 소년 다윗. 예수님의 옷만 만지고서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던 혈루병 여인. “말씀만 하셔도 하인의 병이 낫겠습니다.”고 고백한 백부장. 등등.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과 박해와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여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체험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즉 본문 15절에서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능력’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란,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시편 37:5절에서는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라고 하셨으며, 잠언 16:3절에서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리스도인이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5:10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그리스도인이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계명들은 많습니다. 산상수훈으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비유와 이적과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우르는 계명이 요한복음 15:12절에 있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계명을 아우르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며, 이것마저 하나로 하면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란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으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 내 삶에서 어떻게 신뢰를 나타낼 수 있습니까?

 

 앞에서 본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으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것을 알지만 어떻게 이것을 내 생활 속에서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말의 뜻은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를 않지요? 모든 건축물들은 설계도가 있습니다. 건축주(建築主)의 의도를 설계사가 설계도를 만듭니다. 그리고 건축가들은 설계를 따라서 시공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자신의 삶에서 행동할 수 있는 영적인 설계도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설계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여 깨닫는 것과 기도의 교통을 통하여 만들어집니다. 사도 바울과 그의 전도단이 2차 전도여행 길을 아시아 쪽으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번번이 길이 막히고 환경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두고 바울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지시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6:9-10절입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하나님께서 바울 전도단이 해야 할 영적인 설계도를 환상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 한 예가 사도행전 10:1-48절 전체에 걸쳐 나오는 백부장 고넬료와 베드로의 사건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정한 기도시간에 옥상에서 기도할 때에 각종 동물이 가득 든 큰 보자기 환상이 보이면서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라며 거절했고,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환상이 세 번 거듭되었고, 이 환상이 끝나자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로써 베드로를 초청하여 가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에 유대인은 이방인과 교제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환상을 보여주지 않으시고 이방인이 왔다면 베드로는 결코 그 초청에 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8-29절입니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않고 왔노라.”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고넬료의 가정에 보내시려고 계획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의뢰하지 않고 자신의 뜻과 계획을 고집합니다. 본문 15-17절을 봅시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17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사람들이 하나님께 맡기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고집하여 행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뜻대로 고집하여 살려고 하면 패망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지금 이 시대의 많은 교인들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자신의 뜻을 고집하며 삽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에게는 때때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뜻대로 행할 때에는 바울과 베드로에게처럼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라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일을 쉬지 않아야 하며, 기도 또한 쉬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나 바울에게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게 하신 것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경우는 베드로나 바울이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일반적인 교회법을 따라서 행하려고 했기 때문에 주어졌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거나 계획할 때에 하나님의 의도대로 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영적인 설계도를 그려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 중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 일에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35절입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그리고 누가복음 6:12-13절입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이렇게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전하시기 전에,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중요한 일을 행하시기 전에 항상 기도로 영적인 설계도를 그리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러한 영적인 설계도가 없다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삶의 설계도가 없으면 육신적인 경영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매일 혹은 모든 일마다 하나님의 의도대로 그린 삶의 영적 설계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여 자신의 삶을 맡기고 의뢰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 말씀이 바로 본문 18-19절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여 나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인생설계도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영적인 생명을 중심으로 하나씩 정비합시다. 세상 환경에 따라 요동하지 말고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합시다. 그리고 매일 매 순간 말씀과 기도에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의도대로 영적 삶의 설계도를 그려서, 나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으로 순종합시다. 그리하여 항상 부끄럽지 않는 담대한 삶을 이루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가 가득한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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