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밤이 오기 전에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040회 작성일 2017-11-06 22:01
*** 밤이 오기 전에 / 요한복음 9:1-12

요한복음 9:1-12,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니이까? 그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 들어가는 말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신 이적’이야기입니다. 성경에는 맹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여러 문헌들을 참고해 볼 때,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맹인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등장하는 ‘라오디게아’지역은 ‘안약’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영적인 맹인을 육신적인 맹인에 비유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육신적인 맹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제자들을 깨우치십니다. 우리도 이 말씀 안에서 깨달아야 할 중요한 주제인 밤이 오기 전에 마땅히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오래전 노르만이 영국을 정복하기 전의 영국이었던 앵글로 색슨(Anglo-Saxon) 제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선정을 베풀던 왕의 통치 때에 반역자들이 난을 일으켰습니다. 난을 평정하기 위하여 왕이 직접 많은 군대를 이끌고 출전(出戰)했습니다. 원래 백성들에게 신임을 받던 왕이었기 때문에 백성들과 군대의 도움으로 난을 평정했습니다. 왕궁으로 돌아온 왕은 전국에 방을 붙이도록 했습니다. 내용은 ‘왕궁의 정문에 촛불을 켜둘 동안에 반역음모에 가담했던 사람은 누구든지 자수를 하면 사면(赦免)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촛불이 타고 있는 동안에 한하여 용서의 기회를 준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기회가 있습니다. 본문 4절의 말씀인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는 말씀대로 지금 일할 수 있는 이 삶의 환경이 낮입니다. 언젠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밤이 올 것입니다. 밤이 오기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맹인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날 때부터 육신적으로 맹인이었습니다. 말씀의 내용을 보면 아마도 이 맹인은 많이 알려진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니이까? 그 부모니이까?”제자들의 반응은 그 당시의 사회적인 통념을 보여줍니다. 즉 맹인으로 난 것은 자신이나 그 부모의 죄가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마저 사회적인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즉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원인은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기회’에 대하여 제자들을 깨우치십니다. 즉 육신의 환경에 매어서 영적인 상황을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맹인들을 깨우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본문 아래쪽의 39-4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예수님은 영적으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던 바리새인들이 영적맹인이라고 하십니다.

지금의 우리들도 육신적인 삶에만 매어 살게 되면 본문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들과 당시 유대인들처럼 영적인 맹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 맹인은 매일 당면하는 일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육신적인 필요와 욕망으로 보게 되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기회와 나에게 맡기신 일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 낮과 밤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프랑스의 종교개혁가 ‘존 칼빈(John Calvin)’은 사람들이 남의 고난을 볼 때에 세 가지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그 고난이 죄 때문이라고 정죄한다.’는 것입니다. 내 불행은 의(義)때문이라고 하며 다른 사람의 불행은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는 의를 위하여 고생하고, 다른 사람의 고생은 벌 받는 것이라고 하여 죄 문제로 돌려버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의 고난에 대해서 이해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해해보려고 하거나 관대한 눈으로 보려 하지 않고 엄격하게 심판해버리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지금 얼마나 어려울까?’ 또는 ‘얼마나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까?’ 이렇게 상대방의 고통을 깊이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욥의 세 친구들과 같습니다. 셋째는 ‘자신을 예외 시 한다.’는 것입니다. 나와 상대방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처럼 생각하고 자신은 예외 규정에 넣어 버립니다. 그래서 남을 쉽게 정죄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3-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이는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말씀합니다. 저는 욥기를 읽을 때마다 욥의 세 친구들이 하는 말에서 화가 납니다. 자신들이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면서 욥을 정죄합니다. 욥은 말할 수 없는 끔찍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그 친구들은 위로하기는커녕 욥의 고난이 죄 때문이라고 구박하며 스스로 의롭게 여긴다고 정죄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대 반전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욥기 42: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이렇게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밤입니다. 물론 밤에 대한 외면적인 의미는 ‘건강 악화나 상황이나 환경적으로나 일을 할 수 없는 시기’를 말합니다. 하지만 내면적인 의미로는 ‘깨닫지 못하는 때’가 일하지 못하는 밤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조건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나, 깨닫지 못해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나 같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자신이 간절히 찾던 사람이 옆을 지나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알지 못하는 상황’이 있지요? 그럴 때면 ‘야, 옆을 봐, 지나가고 있잖아!’라고 말해주고 싶지요? 그런 일이 드라마나 영화에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시편 49:20절에서는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시며, 호세아 4:14절에서는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고 하십니다.
본문 4절에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고 하셨는데, 낮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예레미야 13:16절입니다. “그가 어둠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이 말씀대로 우리가 재난이나 병이나 어떤 환경으로 일할 수 없는 시기가 이르기 전, 즉 아직 건강하고, 환경이나 모든 상황이 일을 할 수 있을 때가 낮입니다. 내면적인 의미로는 본문 5절인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는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을 낮이라고 합니다. 즉 깨어있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는 때가 낮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기회이며, 믿음으로 나아가면 이루게 하십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부름을 받을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염소를 찾으려고 다니다가 결국 사무엘 선지자에게로 가게 됩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사울이 올 것이니 ‘이렇게 하라.’고 미리 일러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계획이 시행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10:6-7절을 봅시다.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깨어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주어지는 모든 일이 기회가 됩니다. 이 때를 낮이라고 합니다.

※ 밤이 오기 전에 일해야 합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맹인을 만났을 때 측은히 여기거나 도와줄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죄인이라고 정죄했습니다.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잘못된 지식으로 고집하다가 사실이 밝혀지면서 낭패를 당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계속 판단하고 정죄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과 기준으로 스스로 미련한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밤의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야 합니다. 죄악의 자리에서 도망쳐야 합니다. 그리고 내 생명이 있고 내 삶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갑니까? 요한복음 15:10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2절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즉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뜻을 알게 됩니다.

작가 이어령 씨가 쓴 ‘아들이여 이 산하를’이라는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옛날 어느 시골에 수염을 길게 가꾸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사는 꼬마 아이 하나가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할아버지를 만나자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밤에 주무실 때 그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십니까? 아니면 끄집어 내놓고 주무십니까?” 할아버지는 “얘야. 미안하다. 나도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니 하룻밤만 자보고 대답을 하마.” 그리하여 그날 밤 할아버지는 수염을 붙들고 씨름을 합니다. 수염을 이불 속에 넣으면 답답하고 끄집어 내면 쓸쓸하고. 그리하여 30년 동안 달고 다닌 수염이지만 수염의 위치를 알지 못하고 맙니다.

이어령 씨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30년 동안 자신의 몸에 달고 다닌 수염이 이불 속에 있어야 하는지 밖에 있어야 하는지 밤샘을 해도 깨닫지 못하듯이, 내가 지금 예수 안에 있는지 예수 밖에 있는지, 내가 지금 진리 안에 있는지 진리 밖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자세’를 꼬집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내가 해야 할 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성령께서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가야 할 길, 머물러야 할 자리를 알게 하십니다. 이사야 30:20-21절입니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오른 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게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이는 성령께서 우리의 스승이 되셔서 걸음을 인도하시는 표현입니다.

지금 여러분 자신이 어둠에 있다면 신속하게 벗어나야 삽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 행하십시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신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마음을 기울여 따라가십시오. 주님의 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떤 일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내 날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3:13절에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언젠가는 일할 수 없는 밤이 올 터인데 그 때는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발버둥 쳐도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밤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뜻에 깨어 일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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