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기쁨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333회 작성일 2017-11-01 16:36

*** 기쁨 / 요한복음 16:19-24

요한복음 16:19-24,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니라.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들어가는 말

미국의 한 고등학교 학생이 배우가 되고 싶어서 할리우드로 갔습니다. 하지만 영화 관계자들은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퇴짜를 놓았습니다. 어느 날 한 영화사로부터 배우 선발 면접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면접관들은 오랜 면접 때문에 지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한 면접관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자료는 이미 다 살펴봤으니 소개할 필요는 없고, 당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대답해보세요.”
그는 씩씩하게 면접관에게 대답했습니다.  “네. 저의 특기는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입니다.” 면접관은 그의 말에 체념하듯 대충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여기서 한 번 보여주세요. 빠르고 간단할수록 좋습니다.”
그러자 그는 곧바로 면접실의 문을 열고 밖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면접을 기다리는 여러분! 이제 그만 집에 가서 식사하세요. 면접관들이 나를 채용하기로 했습니다.” 면접관들은 그의 행동에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면접관들에게 자기를 각인시켰고 그 영화사에 채용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세계 영화 애호가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며, 1930~90년대까지 '미국 코미디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은 희극배우 '밥 호프'입니다.

지쳐있는 사람들 앞에서 웃음을 주는 사람. 지금 우리는 신선한 감동과 진실한 기쁨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하고, 그 불안감을 잊어보려는 듯이 보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로 가장 위기의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남북한의 위기, 경제와 고용의 불안정, 진보정치가들의 막가는 정치, 국외적으로는 주변 강대국들의 수구파 지도자들의 장기 집권으로 한반도 정세가 더욱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심각한 이야기들을 싫어합니다. 게다가 어떤 사회학자들은 지금의 우리나라 사회를 ‘분노하는 사회’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무차별로 아무에게나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거의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불안감이 그렇게 분노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신선한 감동과 기쁨입니다. 유명한 철학자 ‘니체’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독실한 기독교 배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독교를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내가 예수 믿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니체의 말처럼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앞의 예화처럼 삶에 지쳐서 기쁨을 잊고 삽니다. 잠언 17:22절에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뼈로 마르게 한다.”는 말은 ‘자신이 시들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기쁨이 사라진다는 것은 영의 생명이 고갈되었다(시들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삶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 곧 너희를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3절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근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나라를 회복하고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아리송한 말씀을 제자들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자신들에게 어둠이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한 예고’입니다.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처형당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선생님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소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슬픔과 두려움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염려로 가득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본문 22-24절입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니라.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제자들의 근심과 두려움은 잠시일 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에는 기쁨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세력도 결코 빼앗지 못할 영원한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이 기쁨을 부여받았습니다. 아직 이러한 기쁨을 가지지 못했다면 다시 찾으시기 바랍니다.

※ 기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슈바이처’ 박사는 현대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물 없는 강이 많습니다. 모래 언덕 사이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 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만큼 초라하고 비참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물 없는 강처럼 억지로 흘러가는 신앙생활, 메마른 정신, 형식과 전통만 겨우 유지하는 교회를 많이 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의 신앙이 아니라 억지로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잘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은 ‘기쁨’에 있습니다. 기쁨이 없으면 감사도, 찬송도, 어떤 신앙생활도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세계에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어느 누가 날마다 한숨 쉬고, 짜증내고, 걱정하고, 피곤해하는 그리스도인을 닮고 싶어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16절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비추는 빛 중에는 기쁨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6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시며, 빌립보서 4:4절에서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살리셔서 자녀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항상 함께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또한 기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모든 삶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일 때문에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한다면 이는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비가 많이 온다고 불평하거나, 장사가 잘 안 되어서 걱정한다면 이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모든 일이 뜻대로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빌립보서 4:6-7절을 봅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 아뢰면 됩니다. 욥은 이유 없이 재난을 당하고 고난을 겪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가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고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면서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욥에게 배나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기쁘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복을 받는 힘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하면 기쁘게 살 수 있습니까?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시계가 벽에 걸린 채로 똑딱똑딱 하며 잘 가다가 어느 순간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매일 매초마다 ‘똑딱’을 한번씩 하고 있으니, 일분이면 120번을 똑딱 해야만 하는구나! 그렇다면 한 시간에 7천2백번을 똑딱거려야 한다는 말인가? 하루를 내가 똑딱거린다면, 아이쿠! 무려 17만2천8백번을 해야 되는 것이네! 일주일은? 이게 웬일인가! 자그마치 1백20만9천6백번을 똑딱거려야 하고, 1년에는 6천2백89만9천2백번을 항상 같은 일로 똑딱거려야만 된다는 말인가? 아이고 맙소사!”
여기까지 생각해보던 시계는 하도 기가 막혀서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신경 쇠약으로 쓰러져 버렸습니다. 시계는 병원으로 운반이 되었습니다. 의사는 고장 난 용수철을 갈아 끼우고 시계를 고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시계에게 물었습니다. “왜, 어쩌다 이렇게 되었소?” 그러자 시계가 한숨 쉬며 말했습니다. “글쎄, 내 사정 좀 들어보세요. 내가 일 분 동안을 가려면 120번을 똑딱거려야 하고, 한 시간을 가려면 자그마치 7천2백번을 똑딱거려야 하고…” 이때 의사가 시계의 말을 막으며 물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한 번에 ‘똑딱’을 몇 번이나 하기에 그렇다는 것입니까?”
“그거야, ‘똑’한 번, ‘딱’한 번씩만 하지요.”
“그렇다면, 내가 좋은 비결을 일러줄 터이니 그대로만 하세요. 그저 한 번 ‘똑’이든 ‘딱’이든 한 개 씩 정성을 들이겠다는 생각으로 사세요. 그러면 병도 들지 않고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계가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는 것처럼, 매일의 삶이 반복되고 중첩되는 것 때문에 압박감과 지루함과 권태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생활이 무의미하게 맴도는 것 같아서 싫증과 권태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위기의 극복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로 70년 동안 바벨론의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이제 그 70년이 끝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손들은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고국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누구하나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숱한 일거리들만 쌓여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비통함과 근심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돌아 온 이스라엘의 총독이 된 ‘느헤미야’와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는 근심에 빠진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하나님의 율법 책을 백성들 앞에서 낭독하고 그 뜻을 풀어 깨닫게 했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울며 통곡했습니다. 선조들과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범죄 했고, 그 죄 때문에 징계를 받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죄를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그 때 느헤미야와 에스라, 그리고 레위 인들이 백성들에게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며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 8:12절입니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준 말을 밝히 앎이라.”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도자들이 가르쳐준 말씀을 밝히 깨달았을 때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 때에 그동안 지키지 않았던 유월절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서 유월절 예배를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역대하 30:1절입니다.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이렇게 유월절을 지켰고 백성들이 너무나 기뻤으므로 다시 칠일을 더 지켰습니다(대하 30:23, “온 회중이 다시 칠일을 지키기로 결의하고 이에 또 칠일을 즐겁게 지켰더라.”).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여 예배를 회복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기쁨을 주실 뿐만 아니라 기도도 응답하셨습니다. 역대하 30:26-27절입니다.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기쁨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그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리고 그 기도 소리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이르렀더라.”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예배를 회복했을 때 기쁨이 충만하게 되고 기도도 응답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손해를 보며, 때로는 고난도 당하고, 비난도 받고, 억울한 일도 당하겠지만 부활의 주님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어 주십니다. 본문 22절에서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이유는 물을 필요도 없이 알고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녀로서 기쁘게 사십시오. 그리고 필요한 것이 있거나, 어떤 어렵고 두려운 일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받게 될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기뻐하는 삶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밝게 나타내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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