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947회 작성일 2017-10-23 22:44
***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 막 8:14-21

마가복음 8:14-21,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어느 해운회사에서 무선사를 모집했습니다. 1차 시험인 이론시험에 합격한 20여 명의 지원자들이 2차 시험인 면접을 받기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음에도 접견실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고, 대기실에는 감미로운 음악 소리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지원자들은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청년이 아무 소리 없이 벌떡 일어나더니 접견실로 들어갔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다른 대기자들은 “어, 저 사람이 왜 저러지?!”라며 의아해 했습니다. 10여 분이 지난 후에 좀 전에 들어갔던 청년이 싱글벙글 웃으며 나왔습니다. 대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여러분들처럼 초조하게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는데, 음악 소리에 섞여 ‘뚜두뚜 뚜 뚜…’하는 무선 신호(모리스부호)가 반복해서 들렸습니다. 그 내용은 ‘이 소리를 듣는 사람은 즉시 접견실로 들어오시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들어갔는데 합격했습니다.”

무선사의 특징을 살린 대단히 기발한 전형방법이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든 일은 하나님에 의하여 계획되고 운행됩니다. 매일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일들,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등. 지금 우리 시대에는 머리가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매일 접하는 정보의 양이 많습니다. 그 많은 일들 속에서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부여하신 일이 있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앞의 예화처럼 많은 사람들은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뒤섞여 별 다른 생각 없이 매일의 일을 반복하거나 자신의 생각에 집중하면서 살아갑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의 생활 속에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담아 두셨습니다. 그런데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와 세상의 삶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고 깨닫지를 못합니다. 마치 앞의 예화 속의 무선사 지원자들처럼 노래에 빠져있고 상황에 빠져 있으면 그 속의 작은 소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15-16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삶에서 누리려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동쪽인 광야 지역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며 작은 생선 두어 마리와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후에 갈릴리 서쪽의 달마누다 지역으로 가셨을 때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즉 당시의 종교지도자 그룹들이 예수님을 극렬히 비난하면서 표적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탄식하시면서 다시 갈릴리 동쪽의 광야지역으로 가셨습니다. 본문말씀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떠나서 광야지역으로 가는 갈릴리의 배 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어리석음과 교만을 탄식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그들의 가르침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배 안에 음식이 없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를 ‘우리가 떡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신다.’고 하면서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음을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의 의도를 아신 예수님께서는 탄식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논의하느냐?”(마태복음 16:8)

예수님은 제자들마저 바리새인들처럼 깨닫지 못하는 어두운 마음을 탄식하시면서 바로 얼마 전에 행하셨던 두 이적을 통하여 주의를 환기시키십니다. ‘작은 생선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남자 장정만 오천 명을 먹였고, 작은 생선 두어 마리와 떡 일곱으로 사천 명을 먹였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그 때에 얼마나 남았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의 기억을 새롭게 하시는 방법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삶을 보시면서 무엇을 기억하며 무엇을 깨닫기를 바라시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심으로 본을 보이신 일들과 가르치심을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이신 일들과 말씀으로 가르치신 것을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 복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잘 되고, 자녀들이 세상에 잘 적응하여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편 128:1-2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삶이 제자리걸음을 합니다.

본문 14-16절을 봅시다.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불과 하루나 이틀 전에 자신들이 직접 보고 경험했던 놀라운 이적의 사건조차 깨닫지를 못합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작은 생선 두어 마리와 떡 일곱 개로 무려 20세 이상의 남자 장정만 사천 명을 먹이셨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그보다 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고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배 안에 떡 하나뿐이라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 놀라운 이적의 사건들이 있기 이전의 믿음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의 삶이 이적 이전이나 이후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나 시각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고 탄식하십니다. 왜 이렇게 제자들은 깨닫지를 못하겠습니까? 고린도전서 2:14절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이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결국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육신적이고 세상적으로 보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13:19절을 봅시다. “아무나 천국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여러분이 매 주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매일 말씀을 읽는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사탄이 모두 빼앗아버립니다. 그러니 삶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고 삶이 제자리걸음만 하게 됩니다.

삶이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것은 곧 후퇴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대가 앞으로 나아가고, 세상의 모든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내가 제자리에 머물고 있으면 저절로 뒤로 밀리는 것입니다. 결국 자꾸만 하나님과 멀어지고, 천국은 멀리 떠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마무리 지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다가올 때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길로 가도록 버려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가는 사람은 계속 악을 행하여 하나님과 반대 길로 갈 것이며, 제자리걸음으로 하나님과 멀어지는 사람도 역시 그렇게 멀어질 것이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은 그대로 나아가도록 ‘사람들이 임의대로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서운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도록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거나 하나님께로 가까이 돌아서지 않는다면 두려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버림받은 마음이 그렇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에 대하여 말씀한 다니엘 12:10절입니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그리고 호세아 4:6절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를 잊어버리리라.” 그러므로 지금 우리 시대에 여러 모양으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마음을 기울이고 힘써야 합니다.

※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여야 받습니다.

세상의 일에 마음 빼앗기고, 별 생각 없이 신앙생활하면 하나님의 뜻을 전혀 깨달을 수 없고 하나님의 복을 알지도 못합니다. 앞의 예화에서처럼 면접관들이 지원자들을 부르는 소리가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음과 스피커의 음악 소리에 묻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똑 같은 현상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모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도 꼭 그와 같습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 왕후의 박해를 피하여 도망하던 엘리야 선지자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고 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9:11-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지금도 우리가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고 소망하고 바라보아야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마음을 기울여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놀라운 일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17-21절입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까?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시던 그 당시에만 놀라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 일을 행하셨던 의미뿐만 아니라 그 이적 자체도 잊어버렸습니다. 만일 조금만 생각했더라도 지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떡 하나면 충분함을 알았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왜 이 66권이나 되는 이 많은 성경말씀들을 주셨겠습니까? 이 말씀 안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수많은 일들이 사실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20:30-3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이 말씀을 믿고 깨닫고 순종하여 영원한 생명의 복을 받게 하려고 이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생활 속에서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인류 모두에게 허락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택하신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2절에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이 특권을 잘 사용하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앞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속에서 여러분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마음을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그 깨달은 하나님의 뜻에 성실하게 순종하십시오. 그렇게만 살면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이적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이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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