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전천후 신앙인의 삶(고전9:19-27)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9,414회 작성일 2001-09-28 21:45
Title 전천후 신앙인의 삶 / Scripture 고전9:19-27 / Space 대복교회

*** 들어가는 말

1885년 어느 날 밤, 다미안 신부는 늘 그렇듯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날의 피로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목욕을 하면 좀 풀리려니 하고 목욕물을 끓였습니다. 그러다가 잠깐의 실수로 뜨거운 물을 발등에 쏟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가슴이 덜컥했습니다. 덴 자리가 조금도 아픔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감각의 상실, 그것은 확실한 나병의 증상입니다.
그는 1840년 벨기에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앙심이 독실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회’라는 수도회에 들어가 하와이 군도의 선교사로 부임하였습니다. 1873년에는 몰로카이 섬에 유배된 문둥병자들의 참상을 보고 자원하여 나환자 격리지에 들어가서 그들을 위하여 집을 지어주고, 그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10년이 지났지만 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다미안 선교사가 문둥병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환자들은 “너는 정상인이니까 충분히 하나님을 찾고 감사할 수 있다.”고 말하며 복음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나환자가 되고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야 나환자들에게 전도할 자격을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감사했습니다. 그는 온 섬을 복음화하고 끝내는 나병으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복음은 생명이 걸린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질적인 삶을 살면서 복음을 전하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우리 옛말에도 “과부가 홀아비 신세를 안다.”고 했습니다. 서울 청계천의 빈민가에서 ‘활빈교회’를 세우고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김진홍’목사님의 메시지가 힘이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방법이었던 이 시간의 본문 말씀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이러한 경우가 ‘전천후 신앙인의 삶’입니다. 전천후 신앙이라 함은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신앙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유인이며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스스로 종이 된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처럼 그들과 더불어 삶을 나누면서 복음을 전하여 그 영혼을 구원코자 함이었습니다.
지금도 온 세계 곳곳에서는 오직 복음에 참례하기 위하여, 자기를 버리고 그 환경 속에 들어가서 더불어 살면서 복음을 전하는 많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 환경을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자신의 일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전천후 신앙을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자신의 자유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무는 땅을 경계로 하여, 두 가지의 특징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땅 위의 부분은 무조건 위로 향하여 자라는 본능이요, 땅 아래 부분은 무조건 아래로 향하여 뻗어 가는 본능입니다. 그런데, 이 본능을 움직이는 조건이 있습니다. 땅 위의 본능은 태양을 향하며, 땅 아래 부분은 물과 공기를 향합니다. 사람도 본능적인 욕구가 있는데, 이는 ꡔ자유ꡕ라는 것입니다. ‘페트릭 헨리’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부르짖었듯이, 사람은 자유를 향한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았고, 또한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한 말씀인 로마서8:1-2절에서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까지라도 복음을 위해서 제어하는 것입니다. 참 자유인은 자신의 자유까지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자유를 제어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을 제어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자유인은 자신의 인생의 우선권(Priority)을 하나님의 일에 두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청을 먼저 수락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로써, 내 삶의 최고의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제된 신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린도전서10:23-24절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제어하여 성도를 섬기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자유 했지만 스스로 종이 되어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특권과 자유를 가졌을 뿐 아니라, 복음 안에서 참 자유를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종이 되어 형제들을 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 자랑거리가 많았습니다. 정통 유대인의 가문에, 구별된 바리새파에, 당대의 최고의 학벌을 가졌으며, 유대문화와 헬라문화에 정통했습니다. 아마도 오늘에 있어서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서도 복음을 위하여 그처럼 낮아져서 자비량 선교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오히려 조건 좋은 교회에서 사역하기 위하여 없는 학벌까지 만들어서 자신을 꾸며대는 현실이 아닙니까?!
우리의 관심사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고, 나아가서 주님의 선한 청지기로 충성하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로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친히 연약한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주님의 섬김을 받는 사람 중에 우리가 끼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주님의 사랑으로 성도를 섬기며, 불신 이웃들을 불쌍히 여겨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2. 자신의 영적인 목표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24-27절을 봅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26절 말씀에,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나아가는 삶의 방향과 신앙의 목표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처럼 목표를 잃지 않으면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삶에서 실패하는 자들은 모두 자기 앞에 있는 목표를 알지 못했거나, 어떤 이유로 그 목표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전천후 신앙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목표를 알고 있어야 하며, 어떤 경우를 만나도 그 목표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전래동화 가운데 지금까지도 자손대대로 전한다고 하는 유명한 우화가 있습니다. 한 추장이 늙어서 자기의 추장 직을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세 아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갔습니다. 숲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큰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뭇가지에 독수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추장은 맏아들에게 물었다. “저 앞에 무엇이 보이느냐?” 맏아들이 대답했습니다. “하늘이 보이고 나무가 보입니다.” 추장은 실망하여 둘째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저 앞에 무엇이 보이느냐?” 둘째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나무가 보이고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독수리가 보입니다.” 추장은 역시 실망한 빛으로 막내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저 앞에 무엇이 보이느냐?” 막내아들이 대답했습니다. “독수리가 보이는데 두 날개가 있고 그 날개들이 마주치는 곳에 독수리의 가슴이 보입니다.” 추장은 기쁨으로 외쳤습니다. “그곳을 쏴라.” 막내아들의 화살은 독수리의 가슴을 명중시켰습니다.

물론 추장은 막내아들에게 추장의 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자기의 목표하는 바를 확실하게 내다보는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교훈하는 인디언의 전래동화입니다. 그들이 들로 나온 목적은 사냥이었습니다. 하늘을 보거나 나무를 보거나 막연하게 독수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습니다. 목적은 사냥이므로 독수리를 보아야할 것이며, 쏘아야 할 목표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본문25절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썩지 아니할 것, 즉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입니다. 이 목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일과 관계 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장차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로써,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복음 증거야말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장차 얻을 것은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들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간직하고 있는 한, 우리는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환경에도 견딜 수 있는 전천후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류태영 박사의 간증)

빌4:12-13,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러분의 삶이 이처럼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신앙인의 삶을 이루어가는 전천후 신앙인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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