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변함없는 열정의 사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066회 작성일 2017-08-08 22:23


*** 변함없는 열정의 사람 / 갈라디아서 1:11-24

갈라디아서 1:11-24,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 들어가는 말

어느 H 그룹 회장의 비서실장을 수년간 지낸 사람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회장님은 직원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망이라도 하면 해당 부서장을 호출합니다. 그리고 지갑에서 현금(수표)을 전부 꺼내 주면서 직원을 격려하라고 합니다. 물론 돈이 얼마인지 세어 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이 세지 않고 건네 준 현금이 얼마의 금액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직원 격려 등으로 수표를 사용하면 비서실에서 다시 정해진 금액을 보충해 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장님에게서 현금을 세지 않고 받은 부서장들의 행동은 같지 않다는 것이 비서실장의 경험입니다.
다수의 부서장은 비서실장에게 “어제 회장님이 주신 돈으로 가족을 격려하고, 장례까지 잘 마쳤습니다.”라고 보고하는 것으로 끝입니다. 그런데 일부 부서장의 보고는 좀 다릅니다. “어제 회장님이 450만원을 주셨는데, 병원비에 300만원, 장례비에 95만원을 지원하고, 55만원이 남았습니다.”라고 하며 영수증과 함께 남은 돈을 반납합니다. 비서실장인 나는 전달받은 그대로 회장님께 보고 합니다. 그 때 회장님은 “그 친구 참, 철저하구만…”하고 웃고 맙니다. 하지만 이 순간이 그가 장차 임원 승진 후보자로서의 1차 관문을 통과한 것입니다. 격려금 전달이라는 작은 일 처리를 보고 회장님은 그 사람의 신뢰도를 측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회장의 마음속에는 “철저한 사람”으로 신뢰를 얻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닙니다. 따라서 누가 다음에 임원으로 승진을 하느냐는 것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비서실장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차기 임원 승진심사 때가 되면 신뢰를 얻어 1차 관문에 통과된 사람들을 거의 탈락시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3개월쯤 지난 후에 “그 사람 요즘 어찌 지내? 한번 알아 봐”하고 비서실장에게 지시합니다. 비서실에서 비밀리에 알아보면 승진에 탈락한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입니다. 불만을 갖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를 조사 후에 “김 부장은 전혀 불만 없이 활기차게 직원들을 이끌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하면, 회장님은“그래?”하고 말합니다. 임원 승진의 2차 관문에 통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회장님은 김 부장과 같은 사람을 다시 남들이 다 싫어하는 한직이나 기피부서 예컨대 시리아 건설 현장 같은 곳으로 발령을 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1년쯤 지나면 회장님은 다시 비서실장에게 묻습니다. “거, 시리아로 간 김 부장은 요즘 어찌 지내? 비공개로 알아 봐.” 조사 후에 “김 부장은 현지에서 불만의 소리가 전혀 없으며, 직원들과 관계도 좋고 업무 성과도 좋습니다.” “그래, 그럼 다음 승진심사에 상무로 발령 내고 본사로 불러들여.” 3차 관문까지 통과되어 진정으로 회장님이 신임하는 임원이 되는 순간입니다.

이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읽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H 그룹 회장이 직원들에게 현금을 맡겨보고, 승진에서 탈락시켜 보고, 기피 부서로 발령을 내 보는 것은 인재를 훈련시킬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회사에 대한 열정과 신뢰도를 지켜보는 과정입니다. 회장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는 큰일에도 충성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큰일을 맡기기 전에 작은 일을 맡겨보고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6: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열정을 가지신 분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일을 본 제자들의 표현입니다. 요한복음 2:17절입니다. “제자들이 성경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한 것을 기억하더라.” 구약에서는 열왕기하 19:31, 이사야 9:7, 32절 등에서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하나님의 열정을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모든 일에 변함없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의 주된 목적은 갈라디아교회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자유 함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은 자유하게 하는 복음을 설명하기에 앞서 자신의 사도권에 대하여 변론합니다. 이렇게 사도권을 변호하는 이유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진실성과 정당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모든 교회들이 예배에 사용했던 말씀들은 사도들이 전하거나 사도들의 글이었습니다. 물론 후대에 신약성경으로 될 수 있는 조건 중에 하나도 ‘사도들의 글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란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신 제자를 말합니다. 바로 본문 11-12절이 자신도 사도임을 나타내는 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직접 부른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부른 제자는 열 두 명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자신도 예수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이해를 시켜야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오늘 읽은 본문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찾아내고자 하는 내용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정한 열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도 바울의 이러한 열정을 보시고 일꾼으로 부르셨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9:15-16절에서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을 부르신 이유와 목적을 밝히셨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변함없는 열정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위하여 바울을 부르신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몸 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꾼을 부르십니다.

※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호숫가에서 생명의 떡에 관한 말씀을 하시던 중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요 6:28)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에서 여러 가지 일에 봉사하고 섬기며 바쁘게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이시며 나의 주인 되심을 믿고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전에 어느 신앙소설에 나오는 성도가 목사님에게 “어떻게 믿어야 잘 믿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목사님은 “물에 빠지듯 풍덩 빠져 믿으시오. 거지 오쟁이 짊어지듯 믿으시오.”라고 했습니다(참고, ‘오쟁이’는 ‘짚으로 엮어 만든 작은 가방 같은 자루’를 말함). 이 말은 ‘오로지 예수님께 푹 빠져라.’는 표현입니다. 이 모든 표현은 ‘오직 열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자고로 세상의 삶이든지 신앙의 삶이든지 열광적이 아니고는 위대한 일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보셨지요? 그들뿐만 아니라 프로 선수들, 군인들,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기능공들 어떤 삶의 분야에서든지 자신의 열정을 다하지 않고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일들이 이러한데 하물며 영원한 생명이 누릴 영광을 위한 영의 일에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천국비유를 하시면서 ‘밭에 감추인 보화’와 ‘진주를 구하는 장사’비유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44-46절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은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이 비유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얻으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과 의논하지도 않고, 사람을 의지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직후부터 3년 동안을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이 기간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연단하시고 훈련시키시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광야에서의 훈련은 세상의 어떤 것도 의지하지 못하도록 하며,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드로의 양을 치며 훈련 받은 것도 그러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도록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세상의 환경이나 돈이나 권력을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2:22절에서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고 하시며, 시편 62:10절에서는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라고 하십니다. 바울이 지금까지 자신의 능력과 의를 의지하며 살아왔던 그 과거의 잔재를 씻어내고, 대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훈련의 자리가 광야였습니다.

혹시 오늘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삶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삭막하여 마치 광야와 같습니까? 아무리 일을 해도 끝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으로 주저앉고 싶습니까? 이런 인생의 광야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우리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들으면 다 옳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도무지 삶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비록 그럴지라도 너무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신약성경을 열 세권이나 썼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뵈옵고 친히 말씀을 들었던 사도 바울도 이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7:15-25절에 그 고민이 적나라하게 나타납니다. 18-19절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 23-24절입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처럼 내 마음은 영적인 하나님의 법과 육신이 따라가는 세상의 죄의 법이 내 속에서 싸우는 격투장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바울이 이 싸움에서 내린 결론은 25절에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즉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영과 육신의 일의 갈등을 해결하는 길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철저하게 바라보는 길은 항상 모든 일을 예수님께 아뢰고 맡기고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본문 15-17절을 봅시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앞부분에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이시며 나의 주인 되심을 믿고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을 할 때에 세상의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16절에서,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에서 “혈육과 의논”이라는 말은 ‘인간적인 어떤 의논’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했다.’는 것은 ‘인간적인 계획을 포기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성도가 자신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에 의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본문 앞쪽의 10절을 읽어봅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로 이 말씀이 갈라디아서의 주제이며,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핵심 된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좋게 하는 것,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 첫 번째의 일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확신합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사울이 바울로 된 것처럼, 우리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정하신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시기와 방법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믿고 인내하면서 어떤 환경에서도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따르는 열정이 있는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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