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문이 닫히기 전에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972회 작성일 2017-06-06 13:15


*** 문이 닫히기 전에 / 누가복음 13:22-30

누가복음 13:22-30,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 들어가는 말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7:31절에서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하십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라는 전도서 3:1절의 말씀처럼 모든 일에는 정해진 기한이 있습니다. 재난이나 행운이 한없이 계속되지 않듯이, 각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도 계속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셨던 하나님의 구원의 문도 아직은 열려 있지만 닫힐 때가 있습니다. 루이스가 쓴 ‘엄청난 이혼’(The Great Divorce)이라는 우화적 작품이 있습니다. 이 예화는 몇 번 사용한 것이어서 내용을 들으면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루이스(C. S. Lewis)가 쓴 ‘엄청난 이혼’ (The Great Divorce)이라는 제목의 우화적인 작품입니다. 내용은 지옥의 장면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뜨겁고, 날마다 비가오고, 언제나 어두운 거리입니다. 하루도 거기에 살고 싶지 않은 환경입니다. 그러나 빛나는 천국으로 옮겨갈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이 마련하셨습니다. 천국행 정기 버스(Shuttle Bus)를 보내신 것입니다. 매 시간마다 떠나기 때문에 기회는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천국행 버스를 타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버스 정거장에 시간 맞추어 나옵니다. 그러나 버스에 올라타지를 않습니다. 요금은 무료이기 때문에 누구나 탈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거장에 나와 버스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저쪽으로 가면 못할 일이 많아진다. 남의 흉을 보던 즐거움도 없어지고, 약간의 재주로 어리석은 인간들의 박수를 받고 보스 노릇할 만족도 없어진다. 지위노름(status game)이 거기서는 안 된다. 자랑할 수도 으쓱댈 수도 없는 세상에 무엇 때문에 가는가?…”
그래서 그들은 일주일에 한번쯤 정거장에만 나왔다가 버스는 타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한 가지 예고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정기버스가 운행 중지 되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우화에서처럼 지금 이 세상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구원의 문이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발전하면서 날이 갈수록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세상의 쾌락과 부귀영화에서 쉽게 돌아서지 못하여 망설이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롯의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멸망당하는 소돔 성에서 피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멸망당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세상의 미련을 떨쳐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세상의 삶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여 세상을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오늘 날의 성도들에게 불순종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종말적인 표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지만 세상에 미련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요한일서 2:15절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렇게 구원의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문이 닫히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뒤늦게 통곡하며 울지 않으려면 지금, 문이 닫히기 전에 영의 생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길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문이 무엇이며, 닫히는 때는 언제입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러 마을을 돌면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여, 구원 받는 사람이 적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물은 이유는 이 사람이 당시의 영적인 분위기를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로 보아 이렇게 물은 사람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인 듯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문’이 ‘구원의 기회’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7-9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자신이 “문”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은 영적인 양식뿐만 아니라 육적인 양식도 얻게 하는 통로입니다. 즉 ‘문’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구원의 통로일 뿐만 아니라 육신적인 삶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과 육신의 모든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문이 닫힐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하여 이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25:10-12절입니다.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본문 25-27절을 봅시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두 말씀의 내용이 같지요? 마태복음 말씀에서 문이 닫히는 시기를 ‘혼인잔치 때’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 혼인잔치는 어떤 때를 말합니까? 요한계시록 19:7-9절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하고 또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라.’ 하기로” 이 말씀에서 혼인잔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어린양 즉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성도들과의 혼인잔치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던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신분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이것은 죄인 된 인생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주시기 위한 특별하신 배려입니다. 그러므로 ‘문’은 구원의 문이며 영과 육신의 삶의 문이신 예수님이시며, 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때가 문이 닫히는 때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이 문이 닫히는 시기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문이 닫히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터넷에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습니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 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저에게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신이여! 열심히 훈련했고 잘 배웠지만 나는 단지 인간 사슬의 한 부분입니다. 지옥 같은 불 속으로 전진 할지라도 신이시여, 나는 여전히 두렵고, 비가 오기를 기도합니다.

인간적이면서도 철저하게 사명감으로 채워진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글입니다. 세상에 사는 모든 인생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심지어 돌 하나, 풀 한 포기까지 의미 없이 지으신 것이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명(召命)’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는 이 소명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와 ‘므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에서는 각자 주어진 달란트의 양이 달랐지만 그 결과에 대한 보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남긴 자에게는 남긴 양과 관계없이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에 참여할 권한인 구원의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반면에 주어진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임의대로 자신의 삶을 산 사람에게는 ‘버려짐’의 징벌이 주어졌습니다. 마태복음 25:21절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30절에서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의 므나 비유에서는 주어진 므나의 양은 같았지만 남긴 양은 각각 달랐습니다. 여기서는 남긴 양에 따라서 차등적으로 보상이 주어졌으며, 역시 묻어두고 자기의 삶을 산 사람에게는 ‘빼앗김’의 징벌이 선언되었습니다. 열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 선언하십니다. 누가복음 19:17절입니다.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의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시고,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는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두 비유는 똑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사명의 삶’을 말합니다. 하지만 의미는 다릅니다. 달란트 비유는 충성된 자에게 주어지는 동일한 상급인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할 권한’을 말하며, 므나 비유는 ‘영적 삶의 결과에 대한 보상’을 말합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은 잘 감당했을 때 두 가지 보상이 따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이 노력한 결과에 대한 보상인 성과급입니다. 히브리서 11: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은 상급이 분명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12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이 말씀도 역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보상을 말씀합니다.

성경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행하여야 할 수많은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결정판이 마태복음 7:21절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일은 최선을 다하여 좋은 결과를 내야 합니다. 이것이 문이 닫히기 전에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를 지금 잘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에게 주어진 사명은 목양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서 잘 양육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영의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주어지는 일이라면 사양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육신이 사는 일에 바빠서 영의 일에 관심을 두지 못한다면 기회의 문, 구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셔야 합니다. 로마서 8:12-13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 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이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본문 26-28절에 나오는 안타까운 탄식을 하지 않도록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자신의 사명의 길을 성실히 수행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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