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삶을 간편화 하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842회 작성일 2017-04-10 14:47

*** 삶을 간편화 하십시오. / 누가복음 10:38-42

누가복음 10:38-42,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 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사자성어(四字成語)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은 욕심이 지나쳐서 끝없이 모으고 쌓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서라도 가지려고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죄의 성향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부터 사람을 지배해 왔습니다. 왜 이런 더 가지려는 죄성(罪性)이 생겼을까요?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으로 만족하도록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인 되신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린 후 인간의 죄가 시작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떠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만족할 수 있었던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떠나신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그 빈자리로 말미암아 사람은 무엇인가 빈 듯한 허전함이 생겼고 이 허전함을 채우려고 무엇인가를 계속 채우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것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하지 않는 것은 우리 안에 만물의 주인인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13:5절에서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제 마지막 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의 지리적인 배경은 베다니라는 곳입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쪽으로 약 2.7㎞ 거리에 있으며, 감람산의 기슭의 언덕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이 마을에 들리셨습니다. 이 마을에는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그의 오빠 나사로가 살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사역 말기에 종종 여기에 오셨습니다. ‘베다니’라는 이름은 ‘번민하는 자의 집’ 또는 ‘가난한 자의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푸른 과일의 집’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베다니는 가난하고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오시자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이 마르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세 남매를 많이 아끼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을 때에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것을 본 유대인들이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였는가?”(요 11:36)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방문을 받은 마르다는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동생인 마리아는 언니의 바쁨도 제쳐두고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말씀만 듣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께 하소연합니다. 본문 40절을 현대어성경으로 봅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보시고도 왜 가만히 계십니까? 어서 저를 도와주라고 말씀해주십시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마르다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는 말세를 사는 우리가 반드시 깨닫고 따라야 할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 내 삶에서 꼭 필요한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을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이 왜 그토록 바쁜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현대인이 바쁜 이유는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려는 자기욕망 때문입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던 ‘행복지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객관적인 평가로서의 행복지수인데, 일인당 GDP, 사회적 지원, 건강 수명, 인생 선택의 자유도, 관용 정신, 국민의 사회의식 수준 등을 포함하는 평가입니다. 이 평가로는 당연히 선진국이 상위권에 있습니다. 얼마 전에 유엔에서 155개국에 대한 2017년 각 나라의 행복지수 랭킹을 발표했습니다. 1위는 노르웨이, 2위는 덴마크, 3위는 아이슬란드, 4 스위스, 5 핀란드 등등. 우리나라는 56위, 가까운 일본은 51위, 중국은 79위였습니다. 또 다른 행복지수는 이런 객관적인 자료가 아닌 국민의 심리적인 만족과 행복도를 평가한 것입니다. 이 행복지수는 영국에 본부를 둔 유럽 신경제재단(NEF)이 국가별로 행복지수를 조사해서 발표했습니다. 이 조사에서는 방글라데시나 부탄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부탄은 1인당 국내총생산이 2,000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응답한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답변했습니다. 부탄에 비해 1인당 국내총생산이 10배나 높은 대한민국은 143개국 가운데 68위였습니다. 방글라데시도 역시 최빈국이지만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제일 높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삶의 질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평가에서도, 자기중심적 행복지수에서도 둘 다 어중간한 자리에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부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삶의 본질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즉 꼭 필요한 것이 아닌 부수적인 것에 마음과 시간과 노력을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에 열심인 듯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닌 부수적인 교회생활과 성도들 간의 관계로 인한 분주함이 대부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요리문답 1번)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영과 진리로 하는 예배,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오늘의 수많은 교회에서 신앙의 본질은 사라지고 부수적인 행사들로 바쁘게 돌아갑니다. 이렇게 바쁜 것이 마치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인 양 착각을 일으켜서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현대교회를 위태롭게 합니다. 로마서 10:2-3절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즉 ‘부수적인 것으로 바빠하지 말고 본질적인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영국 속담에 “흐트러진 둥지에는 성한 알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미 새가 알을 품을 때에 만일 둥지가 어수선하고 알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으면 부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고 쓸데없는 일들에 시간과 노력을 빼앗겨 진리를 놓친다면 영의 생명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마태복음 7:21-23절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본질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이 곧 이 말씀입니다.

※ 덜 중요한 것을 버리고 삶을 단순화 하십시오.

2006년에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도서전에서 최대의 화제를 모으면서 단숨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단순하게 살아라.’는 책이 있습니다. 독일의 목사이자 저널리스트인 ‘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가 자신의 강의와 경험을 집대성한 3권의 시리즈물입니다. 저자는 “복잡한 삶을 단순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즉 33 가지의 제안을 통해서 삶을 단순화시키고 역량을 집중하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줄여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만개의 물건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먼저 서랍 속부터 정리하라고 하면서, '이 물건을 지난 3년 동안 쓴 일이 있나?' 스스로 물어보고 없다면 과감하게 버리라고 합니다. 가정 편에서는 저자와 그의 아내 ‘마리온 퀴스텐마허’는 아침마다 아이에게 옷을 입히느라 한바탕 치러야 하는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비롯하여 아이들과 여유 있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법 등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환경을 단순하게 하라. 재정을 단순하게 하라. 시간과 인간관계와 가정, 그리고 자신의 생활을 단순화시키고 좋은 습관을 구체화시키라고 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덜 중요한 것을 버리고 삶을 단순화 하라는 말은 ‘핵심가치에 집중하여 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교회로서의 가치에 집중하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치에 집중해야 합니다. 즉 쓸데없는 군더더기들을 버리고 본래의 의미와 핵심적인 가치를 찾아서 집중적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7:29-3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촉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진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일에 얽매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즉 없어질 세상의 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예수님과의 만남을 위하여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9:25절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세상과 함께 없어질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하도록 있을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소망하며 추구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여러분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마태복음 16:26절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하신 말씀대로 여러분의 생명이 중요한 것을 안다면 이제는 자신의 삶을 단순하게 만드십시오. 기도할 시간도 말씀을 읽고 묵상할 시간이 없도록 바쁩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뒤로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이렇게 하고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들림 받을 수 있다고 장담하십니까? 이제는 정말 이제는 더 미루지 말고 생명을 위하여 삶을 간편화하고 시간을 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히려 단순합니다. 우리를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포기하지 못하는 욕망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것을 의미합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여러 가지 일에 너무 얽매여 걱정하고 있구나. 참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일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그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고 싶지 않다.”고 하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르다처럼 자신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서 자신이 생각하는 선을 행하며,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7-9절에서 고백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런데 이렇게 내 삶에서 군더더기를 버리고 정리하고 간편화하는 것이 쉽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느 인류학자가 인류학 강연을 하고 마지막 결론으로 제시한 말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은 존재하는 것보다 소유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사람은 소유하려는 것에 집착합니다. 비록 이렇게 삶을 간편화하는 것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차지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1:12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이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고 이 세상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는 없습니다. 그 대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세상적인 것을 단편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 영광의 자리를 위하여 우리 모두 자신의 삶을 잘 정비하여 언제라도 주님 만날 만반의 준비가 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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