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흥하는 길과 망하는 길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094회 작성일 2017-02-08 17:25


*** 흥하는 길과 망하는 길 / 호세아 4:1-10

호세아 4:1-10,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내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4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라. 5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를 잊어버리라. 7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8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9 장차는 내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10 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목하니 이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 들어가는 말

세상에는 모든 것에 음과 양의 원리처럼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 삶과 죽음, 복과 화, 성공과 실패, 남과 여, 영과 육 등등. 오늘 주제인 흥하는 길과 망하는 길, 이 두 길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길이 망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한다고 잘되고 흥하는 것도 아니며, 내가 싫어한다고 망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이사야 45:7절입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그리고 전도서 7:13-1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사람들은 자신의 앞날을 알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고 오직 하나님의 권한에 두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의 삶에서 흥하는 길과 망하는 길 이 두 길 중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바로 이 길을 제시하면서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30:19-20절입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이처럼 생명과 사망, 복과 화의 길은 우리 각자에게 선택권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말씀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 열매를 선택하지 않고 선악과를 택한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여호와를 버리며 자신들의 악한 길을 택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생명과 사망, 복과 화, 생명나무 열매와 선악과, 천국과 지옥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여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고 있는 길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호세아 선지자는 북쪽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보낸 이유는 북 이스라엘이 죄와 우상숭배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특히 호세아에게 방탕한 여인인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도록 하셔서 이들 부부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사랑이 어떠한지’를 보여주셨습니다. 호세아는 멸망해가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서 악한 일에 빠져들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내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이렇게 하나님의 마지막 사랑의 손길조차 뿌리친 이스라엘은 결국 호세아의 사역이 끝난 다음 해인 B.C 721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오늘의 사람들도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좋아하고 세상의 것들을 따라갑니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도 언젠가는 거두어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몇 번인가 했던 예화인데 다시 한 번 들어보십시오.

옥스퍼드 대학교의 강사를 지낸 영국의 신실한 그리스도인 작가인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가 쓴 ‘엄청난 이혼(The Great Divorce)’이라는 우화적인 글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 세상의 장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뜨겁고, 날마다 비가오고, 언제나 어두운 거리에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단 하루도 거기에 살고 싶지 않은 환경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곳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천국으로 삶의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쉬운 길을 마련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삶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천국으로 향하는 정기 버스(Shuttle Bus)를 매 시간마다 보내셨습니다.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천국행 버스를 타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스 정거장에 시간을 맞추어 나옵니다. 그런데 버스에 타는 사람이 없습니다. 요금은 무료이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못 타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천국행 버스를 타지 않을까요? 그들은 정거장에 나와 버스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저쪽으로 가면 못할 일이 많아진다. 남의 흉을 보던 즐거움도 없어진다. 약간의 재주로 어리석은 인간들의 박수를 받고 보스 노릇할 만족도 없어진다. 지위노름(status game)이 거기서는 안 된다. 자랑할 수도 으쓱댈 수도 없는 세상에 무엇 때문에 가는가? …”
그래서 그들은 일주일에 한번쯤 정거장에만 나왔다가 버스는 타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한 가지 예고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정기버스가 운행 중지 되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꼭 지금 우리의 시대를 풍자한 이야기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그리 멀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그냥 세상에 젖어 삽니다. 베드로후서 3:3-5절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망하는 길이며 죽음의 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흥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 자신의 삶이 흥하기를 원하면 하나님 알기를 힘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즉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본문 1절과 6절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고 탄식합니다. 그리고 6:3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애타게 권면하며, 6: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호세아가 사용한 “안다”라는 말은 두 가지입니다. 본문 1, 6절과 6:6절에서 사용한 말은 “아는 것(daath / knowledge)”이라는 말로써, ‘지식’,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6:3절에서는 “알자(yada / to know)”라는 말로써 ‘관찰과 반성에 의해서 아는 것’, ‘경험에 의해서 아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종합하면, 먼저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아야 하는데 이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을 읽는다든지, 설교를 듣는 것으로 채울 수가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경험과 깊은 묵상을 통해서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감성적인 앎입니다. 즉 부부가 오랜 부부생활 속에서 경험으로 체득하여 서로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은 이론적인 앎이 아니라 경험과 묵상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성숙한 지혜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어느 여 성도의 간증 일부를 인용합니다.
이 여 성도는 성공적인 사업가의 아내였으며 세 딸을 키웠고 지금까지 사랑스런 가정을 유지해왔습니다. 여 성도는 지역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적인 여성으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들이 장성하여 집을 떠난 후, 여 성도는 삶이 공허했으며, 고독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인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 역시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일에 돈을 쓰기보다는 주님의 일에 헌금하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영적인 삶에는 깊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항상 교회에 나가 예배드렸지만 그들의 신앙생활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깊고 친밀한 교제를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여 성도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동생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언니의 고독감과 좌절감을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언니의 영적인 삶에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언니에게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권면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도록 권면’ 했습니다. 동생의 충고에 따라 이 성도는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발전시켜 나갔고, 점점 그녀의 태도는 변화되었습니다. 여 성도는 대학 시절 이후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교회학교 교사를 지원했고, 자기가 맡은 아이들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성도는 문득 자신이 최근 몇 달 동안 고독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간증처럼, 하나님을 아는 것과 깨달은 것을 생활로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교제의 삶을 통하여 성도의 걸음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정기적으로 읽고 묵상하며, 항상 기도로 주님과 교통하여 하나님 알기를 힘쓰고 아는 대로 순종하여 생활에서 실천하십시오. 그리하면 자신의 삶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자신의 삶이 흥하기를 원한다면 믿음에서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맺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인격적인 교제를 맺고 있는 성도는 그 마음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본문 6-8절을 봅시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를 잊어버리라. 7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8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은 정함이 없었습니다. 항상 세상과 자신의 생각에 따라 변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흔들리는 마음을 호세아 6:4절에서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하나님께로 향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마음이 일정하지를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해가 떠오르면 사라지는 “아침 구름”이나 “이슬”처럼 마음이 쉽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우생마사 (牛生馬死)'라는 말을 아십니까? 동물들은 대부분 헤엄을 잘 칩니다. 말과 소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저수지에 말과 소를 동시에 넣으면 둘 다 헤엄쳐서 나옵니다. 그런데 말의 헤엄 속도가 훨씬 빨라서 거의 소의 두 배의 속도로 헤엄쳐 나옵니다. 그런데, 어느 장마 때에 큰물이 나서 갑자기 불어난 물에 소와 말이 물에 떠내려갑니다. 놀랍게도 소는 살아서 나오는데, 헤엄을 잘 치는 말은 익사를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말은 헤엄을 잘 치지만 강한 물살을 이겨 내려고 물을 거슬러 헤엄칩니다. 1미터 전진 하다가 물살에 밀려서 다시 1미터 후퇴하기를 반복 합니다. 그렇게 한 20분 정도 온 힘을 다해 물살과 싸우며 제 자리에서 맴돌다가 지쳐서 물을 마시고 익사해 버립니다. 그런데 소는 절대로 물살을 위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냥 물살을 등에 지고 같이 떠내려갑니다. 저러다 죽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떠내려가면서 조금씩 강가로 헤엄을 칩니다. 그렇게 2~3Km 정도를 내려가다가 강가의 얕은 모래밭에 발이 닿으면 걸어 나옵니다. 그래서 우생마사(牛生馬死)라고 합니다.

흥하는 사람은 물살을 거스르지 않은 소처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순종하면서 꾸준하게 한 길을 가며 인내합니다. 히브리서 12:1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일정하지 못하고 변덕이 심한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사람의 기도조차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에서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삶이 잘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을 없을 터인데 진정으로 흥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알기를 힘쓰고 아는 대로 실천하십시오. 그리고 그 마음이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도록 붙잡으십시오. 그렇게 하면 본문 9절 말씀처럼 우리의 행실대로 갚아 주실 것이며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사야 26:3절의 약속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이렇게 흥하는 길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서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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