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충성된 사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984회 작성일 2017-01-16 15:06


*** 충성된 사람 / 누가복음 16:10-13

누가복음 16:10-13,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의 성품 중에 충성(忠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충성된 사람은 신임하는 대상이 됩니다. 충성이라는 말의 한자어를 보면 마음 심(心)자 위에 가운데 중(中)자가 충성 충(忠)자이며, 말씀 언(言)변에 이룰 성(成)자가 정성 성(誠)자입니다. 글자의 의미대로 하면 ‘마음의 중심이 잡혀있고 한 말은 반드시 실행하는 것’이 충성이라는 말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정성’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의 성품에는 반드시 ‘충성’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도 일꾼과 관계된 것에는 충성이 들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2절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리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도 충성이 있고, 디모데전서 1:12절에서도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충성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뺄 수 없는 성품입니다.

일꾼에게 있어서 충성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2:1-2절에서 예수님께서 앞서 본을 보이면서 가신 길을 제시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성부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이루기 위하여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사시는 동안 오직 성부하나님의 뜻에만 집중하셨으며, 그 고난의 길에서 마지막 호흡 때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시며 성실하게 충성을 다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30절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그리고 요한계시록 3:14절에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당연히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누가복음 16:1-13절까지를 내용으로 하는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입니다. 설교의 본문으로 읽은 말씀은 이 비유의 결론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세상의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깨우치시려 하신 것입니다.

어떤 부자가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를 두었는데, 그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지는 않고 오히려 낭비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주인이 화가 나서 청지기를 불러 소문에 대하여 따지면서 ‘지금까지 관리한 목록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주인의 재산으로 호의호식하던 청지기가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일을 하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고, 그래서 한 가지 꾀를 냈습니다. 외상 장부를 보면서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한 사람씩 불러서 그 빚을 조금씩 탕감시켜 주었습니다. 즉 빚진 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선심을 선 것입니다. 그렇게 선심을 베풀어 두면 쫓겨난 후에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이 불의한 청지기가 한 일을 알고는 그를 칭찬했습니다. 왜 끝까지 불법을 저지른 청지기를 칭찬했겠습니까? 그가 한 일이 옳아서 칭찬 한 것이 아니라 그 지혜를 칭찬한 것입니다. 8절에서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말씀을 통하여 영의 일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깨우치시는 것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행하여야 하겠는가?’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본문 11-12절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지극히 작은 것, 세상의 재물, 다른 사람의 것 등. 마음이 가지 않는 일이라고 무시하고 소홀히 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 영원한 것을 맡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일, 어떤 환경 속에서도 중심 잡힌 한 마음으로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충성은 어떤 것입니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지나친 것은 오히려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에는 충성된 사람에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필요한 이유가 들어 있습니다. 어느 열쇠전문가가 은퇴할 때가 되어 기술을 물려줄 후계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데리고 있던 두 제자에게 금고를 열게 했습니다. 한 제자는 십분도 안 되어 금고를 열었고, 두 번째 제자는 삼십 분이 지나서야 간신히 열었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 본 스승이 두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금고 안에 무엇이 있더냐?”
첫 번째 제자는 “돈과 금이 가득 있었습니다.”라고 했고, 두 번째 제자는 “금고 열쇠만 열었지 안에는 보지 않았습니다.”고 했습니다. 스승은 느리게 열쇠를 연 두 번째 제자를 후계자로 결정했습니다. 첫 번째 제자가 물었습니다. “왜 제가 탈락했죠?” 열쇠장인이 말했습니다. “내가 시킨 것은 열쇠를 열라고만 했단다.”

첫 번째 제자는 자신의 길에서 지나쳤습니다. 즉 금고 자물쇠를 열면서 “금고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또 다른 마음을 품었던 것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마음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즉 자신의 일에만 최선의 정성과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은 빗나간 마음이 되어 한 곳으로 마음을 쏟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6-8절에서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품어서는 안 되는 두 마음은 본문 13절에서 잘 표현합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과 재물을 향하는 마음입니다. 재물은 육신적인 욕망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충성이란 오직 나를 부르시고 일을 맡기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앞의 예화에서 열쇠 장인이 후계자를 선택한 기준이 ‘오직 자신의 일에만 전념하는 것’이었습니다. 골로새서 3:1-3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졌음이라.”

고대의 청지기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가를 약속하고 고용된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종으로서 청지기 직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에서 말씀한 ‘청지기’는 주인으로부터 일정한 보수를 받고 고용된 사람입니다. 2절에서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청지기들은 주인으로부터 주어진 일을 해야 하며, 전적으로 주인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만일 주인의 뜻을 어긴다면 당연히 청지기 직분을 잃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람인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이 주신 일을 하며 전적으로 주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만일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불의를 행하게 되면 버림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7:21-23절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충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일을 하며, 전적으로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맡겨진 일을 할 때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비록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의 것이고, 보잘 것 없는 것이며, 남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 일에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크고 신령하고 귀한 자신의 것을 주실 것입니다.

호세아 11:12-12:6절을 봅시다.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1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며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2 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3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5 그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6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이 말씀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에게 세상을 따르던 불의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의 말씀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11절에서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충성되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과거 이스라엘의 허물과 죄악은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야곱의 삶과 그가 걸어온 길은 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이자 우리가 걸어갈 길의 본보기입니다. 위의 호세아 12:3-4절에서 야곱에 대하여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라고 하십니다. 야곱이 어머니 태에서부터 지지 않으려고 형의 발꿈치를 잡았고, 하나님과 겨루기까지 하는 욕망의 사람이었지만,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철저히 의지했습니다. 야곱처럼 우리도 비록 세상의 욕망 속에서 살지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도 야곱의 이야기를 하면서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 현실에 적용시킵니다. 6절입니다.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이 말씀에서 “바랄지니라.”는 단어는 ‘기다리다.’ ‘소망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소망하며 살아야 함을 뜻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충성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바람을 우리는 수없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더 바라고, 명예나 지위나 돈을 더 기대하며 삽니다. 본문 13절 말씀처럼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은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그 마음의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고 모든 일에 하나님만을 바라며 의지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자리와 길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해야 할 때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느끼겠지만 지금 이 나라의 상황은 답답한 정도가 아니라 심각합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영웅이 나타난다고 했듯이 환경이 혼란스럽고 앞길이 어두울 때는 충성된 그리스도인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나라를 살리고, 우리의 헌신된 삶이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예레미야 18:7-8절입니다.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는 충성된 사람이 많아질수록 재앙과 고난은 물러나게 됩니다.

올 해에는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충성된 사람들이 되어서 개인과 가정과 교회, 직장, 사업장,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와 나라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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