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빛으로 오신 예수님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968회 작성일 2016-12-27 22:15


*** 빛으로 오신 예수님 / 요한복음 3:16-21

요한복음 3:16-21,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오늘은 성탄절이자 2016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올 연말은 국내적으로 충격적인 일들이 많아서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들도 성탄장식조차 하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우리교회 성탄장식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장식이 아름답네요. 성탄장식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좋습니다. …’ 이런 내용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런 긴장감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가 그렇습니다. 이러한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많은 기독교 매체들이 ‘예수님의 재림’ ‘휴거’ ‘전쟁’ ‘종말’에 대한 예언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때의 장면들이 머리에 스칩니다. 마태복음 24:6-8절입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어떤 분들은 ‘이 괴로운 세상, 차라리 주님이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고도 했습니다. 이렇게 세기말적인 현상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합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 가리지 않고 옵니다. 그리고 어떻게 다가올지는 모릅니다. 어떤 분이 한자의 ‘죽을 사(死)’자를 풀이한 것을 보았습니다. ‘한 일(一)’자에 ‘저녁 석(夕)’에 ‘비수 비(匕)’자가 합해진 글자라는 것입니다. 해석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느닷없이 비수처럼 찾아오는 것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비수처럼 찾아오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렇게 나약한 존재입니다. 모두 예외 없이 비수처럼 찾아오는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믿든지 믿지 않든지 영원한 심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절입니다. “한 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이 죽음 후에 있게 되는 심판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이 심판을 준비하는 현명한 지혜를 알려주십니다.

※ 먼저, 본문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이 있는 3장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니고데모라고 하는 사람이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최고 의회인 ‘산헤드린공회’의 회원이었고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생각으로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밤중에 찾아 왔습니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 중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에 대하여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연의 이치와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사실을 곁들이시면서 니고데모에게 복음의 진수를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과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삶의 형태까지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과 역사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6-17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진리를 알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 온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진리는 갈급하게 찾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신분과 명예와 권력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1:12절에서,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셨고, 7:7-8절에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값진 진주의 비유’나 ‘밭에 숨겨진 보화의 비유’를 통하여 천국은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물론 구약에서도 예레미야 33:3절에서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라고 하셨으며, 잠언 8:17절에서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을 이처럼 간절하게 찾습니까? 이 말씀 안에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본문 19절에서 “… 빛이 세상에 왔으되 …”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9-10절을 봅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이 말씀 속에서의 “빛”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수님은 빛의 본질이십니다. 즉 태양이나 별처럼 광명 체에서 비추는 빛이 아니라 빛의 원형이신 근본적인 빛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디모데전서 6:16절에서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라고 표현했으며, 요한계시록 21:23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인 새 예루살렘을 설명하시면서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8:12절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이 빛이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본문 19-21절을 봅시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빛이 세상에 왔는데 빛을 사랑하는 사람과 빛을 미워하고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즉 구원의 대상이 되는 빛을 사랑하는 사람과 심판의 대상이 되는 빛을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빛으로 오셨다는 것은 생명의 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빛은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을 주는 존재입니다. 본문 1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성탄절은 세상 모든 사람이 즐거워하고 환영하는 날입니다. 성탄절의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빛이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구원의 빛이 아니라 심판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14:5-7절입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이 말씀에서 나타내시는 “날”은 세상의 마지막 날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날입니다. 이 날에 임하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마태복음 25:31절 이하에서 ‘양과 염소의 비유’로 표현하셨습니다. 31-33절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이 구분이 빛을 사랑하여 빛으로 오는 사람과 빛을 미워하고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의 구분입니다. 여러분은 빛을 사랑하고 빛으로 나아오는 빛의 사람들이지요? 자신의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1:35절입니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그래서 지금 첫 성탄을 기뻐하며 기념하는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해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은 빛을 품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빛이 아니라 빛이신 예수님을 모신 사람 즉 빛을 품은 사람입니다. 빛을 품었다는 것은 빛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본문의 표현으로 하자면 21절의 말씀대로입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빛은 빛과 화합이 되며, 빛의 사람이 어두워지면 실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에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사는 유대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선생님,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1:9-10절입니다.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이 말씀은 세상의 광명체가 비추는 빛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에 대한 비유적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12:35-36절을 보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는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의 삶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빛 안에서 사는 삶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봅시다. 첫째로 빛 안에서 산다는 것은 ‘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분별하는 삶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4:1절을 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어지는 5-6절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지금처럼 온 세상이 혼란스럽고 무엇이 옳은 진리의 길인지 알지 못할 때에는 분별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복음을 말한다고 무작정 믿으면 안 됩니다. 그들이 말하는 길이 바른 길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곁에는 이단들, 사이비 종교, 이념이 다른 사람들이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을 넘어뜨리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십니다. 마태복음 24:24절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그러므로  분별의 은사를 구하십시오.

두 번째로 빛 안에서 산다는 것은 ‘빛을 품었으므로 그 빛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12절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빛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종종 그리스도인을 등불에 비유합니다. 등은 그리스도인이며 불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등에 불이 켜지면 당연히 주변을 밝히겠지요. 그래서 등불은 모든 것을 비추도록 높은 곳에 둡니다. 마태복음 5:15절에서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자신이 품은 빛으로 주변을 밝힌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합니다. 이어지는 16절을 봅시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에게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리스도인이 빛을 나타내는 것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선하고 진실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정말 그리 멀지 않습니다. 아직은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 때에 빛이신 예수님을 품은 등불로서의 삶을 분명하게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성탄을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머무는 자리마다 예수님을 품은 우리의 삶에서 빛의 아름다운 삶을 나타내어 주변을 밝힐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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