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마지막 고백(요21:15-17)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967회 작성일 2001-08-24 22:36
Title 마지막 고백 / Scripture 요21:15-17 / Space 대복교회

***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사랑이 모양이 있다면 어떤 모양이겠습니까? 아마도 믿음직하고 든든하며 바다처럼 넓은 바위 같은 모양일 것입니다. 왜냐고요? 어떤 환경과 여건에서도 변함이 없으며, 변화무쌍한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포용하시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의 짧은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베드로와 나누신 대화입니다. 베드로에게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은 잔잔하면서도 다짐하시는 듯하며, 그에 답변하는 베드로의 음성은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전전긍긍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베드로의 배반에 대하여는 단 한 마디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셨습니다. 마치 허랑방탕하던 탕자가 돌아 왔을 때 그를 맞이하던 아버지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배반의 수치심과 깊은 고뇌를 안고 있을 베드로를 잊지 않고 찾아주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풀어주시며, 새로운 사명으로 확고하게 무장시키시기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신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은 베드로의 진실한 고백을 듣고자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1. 주님의 물음과 우리의 생각

주님은 이미 우리의 생각을 알고 계시며, 우리의 행할 일을 알고 계십니다. 즉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직한 고백’을 듣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진정한 신앙의 고백이 아니라 인간적인 고백일 때가 많습니다. 왜 그렇게 어리석을까요? 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생각이나 내가 아직 행하지도 않은 행동에 대하여 알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보면서 생각을 정리해 봅시다.
주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 베드로는 줄곧 당당한 수제자였습니다. 다혈질의 그의 성품 그대로 장담 잘하고 나서기를 좋아했습니다. 물론 그만큼 실수도 많았습니다.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확인하고는 자신도 물 위로 걷고 싶다고 했으며, 금방 물 속으로 빠져버리는 수치를 당했습니다.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겠다.”는 주님의 말씀에 ‘자신은 죽어도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주님이 잡히실 때에는 칼을 빼서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주님이 잡히셨을 때 그는 ‘주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모른다.’고 했으며, 부활하신 주님의 소식을 듣고서도 낙심한 채 갈릴리 고향으로 돌아섰던 그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알려 주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리 알려 주신 이유는 그런 일을 당할 때, 그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고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되는 베드로의 실수는 무엇을 말합니까? 이는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결국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신을 아시고 하신 말씀들을 무시하고 자기 나름대로 신앙의 기준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베드로의 모습이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오늘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 기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신앙의 기준은 대부분 왜곡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도 자신의 기준에 따라 받고 받지 않고를 결정합니다. 또한 그 기준은 자신의 잘못과 죄에 적용하기 보다는 남의 잘못과 죄를 헤아리는 데 사용합니다. 이러한 신앙의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껴보지 못했으며,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어느 날, 주일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우리의 죄악을 하나님께 인간적으로 고백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공과학습을 마치고나서 아이들이 잘 받아들였는지를 확인하려고 질문을 했습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 고백하고 싶은 죄가 얼마나 있나요?” 그러나 아이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앉아있었습니다. 마침내 키가 작은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하나님께 고백할 죄가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만 죄를 고백해야 될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어요.”

이 아이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시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어떤 규정으로부터 예외가 되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죄의 고백이나 회개, 고난, 징계 등 이런 것으로부터는 더욱 예외가 되기를 바라겠지요. 하지만 영의 일에 있어서는 예외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기준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2. 고백적인 신앙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은 마음으로 믿는 것과 입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로마서10:10절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은 믿음과 행함입니다.

1992년에 서울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님이 템플턴(Templeton Prize)이라는 상 받았습니다. 템플턴 상은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명예로운 상입니다. 수상 후 축하하는 모임에서 한 목사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셔서 참석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바로 일제하에서 신사참배 했던 일에 대한 발언이었습니다. 1992년 6월 18일 여의도 63빌딩에서 그날 목사님의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나는 이상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상은 결코 나 개인에게 준 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락교회에 준 상이고 한국 교회에 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고백을 하기가 쉬웠겠습니까? 그것도 존경받는 목회자로서 영광스러운 수상 축하 자리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 고백은 신앙의 쓰디쓴 실패의 잔을 마셔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하는 고백이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진실한 고백입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고백은 그동안 나서기 좋아하고 장담 잘 하던 지금까지의 베드로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쓰디쓴 실패를 경험한 베드로의 진지하고도 조심성 있는 새로운 결심의 표현이었습니다. 과연 베드로는 그 이후 자신의 생명을 다하는 충성스러운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주님 앞에서의 이 마지막 고백을 날마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도 이와 같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초기 서신에는 자신이 ‘사도’임을 구태여 변명하며 강조했습니다. 로마서1:1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당당하게 자신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당당함은 겸손함으로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15:9절에서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다가 복음으로 인하여 감옥에 갇히고 순교의 날이 가까울수록 그의 고백은 더욱 진지해 집니다. 디모데전서1:15절에서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했으며, 에베소서3:8절에서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베드로처럼 또한 바울처럼 그리스도인은 주님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낮아지며 진실하고 겸손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며,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거룩한 고백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고집하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자신들의 죽음을 위한 풀무불 앞에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지막 고백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담대한 외침이었습니다.
풍전등화와도 같은 민족의 위기 속에서 에스더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께 나아갔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의 마지막 고백이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이 말씀은 사도 바울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즉 선한 싸움과 믿음을 지킨 생애가 자신의 모든 것과 더불어 제물위에 부어졌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은 생의 마지막에 어떤 고백을 하기를 원합니까? 그 고백을 위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날마다 순간순간의 삶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고백적인 삶이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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