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환경이 이해되지 않고 고통이 쌓일 때
*** 환경이 이해되지 않고 고통이 쌓일 때 / 시편 18:1-6
시편 18:1-6, “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4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5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 들어가는 말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께서 고난받으시기 전, 예루살렘으로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날입니다. 그날 예수님의 사역을 알던 많은 사람이 길가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 죽음을 위해 입성하셨습니다. 이날을 시작으로 부활하시기 전날까지를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특히, 십자가에 달리셨던 금요일을 ‘성 금요일(Good Friday)’이라고 합니다. 사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던 주님은 하나님이시면서 당신께서 창조하신 사람에 의하여 이해할 수 없는 불의와 멸시,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불의한 사람들에 의하여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고난받으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때때로 우리가 당면하는 이해되지 않는 환경과 고통의 현실을 살펴보려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 시편은 다윗이 하나님께 올린 노래입니다. 사무엘하 22장에 이 노래의 전편이 다 실려 있습니다. 본 시편에서는 성전의 노래로서 찬양 인도자에게 주어진 내용입니다. 본 시편을 설명한 내용이 사무엘하 2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다윗이 자신을 ‘여호와의 종’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라는 사실보다 여호와의 종이라는 것을 더 큰 영예로 여겼음을 알게 합니다. 시편 116:16절에서도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라고 고백합니다.
이 노래의 내용은 대적에게 쫓겨 다니며, 사울 왕으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당했던 큰 위기와 고통을 표현합니다. 또한, 자신의 힘든 삶의 길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했음을 나타냅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자신을 구원하셨음을 노래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그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첫 구절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내용이 본 시편 전체의 요지(要旨)이며 자신의 노래가 의도하는 내용입니다. 이 다윗의 고백적인 노래를 통하여 우리도 우리에게 닥친 환난으로 삶의 무게가 힘이 들 때,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 이해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을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본문 1-3절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이는 다윗이 환난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표현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 나름으로 고통과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따르는 예수께서 앞서 그 본을 보이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21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처럼 취급당하셨고 죄인들이 가야 할 죽음의 자리까지 가셨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자리를 피하려 하거나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하게 순종하셨습니다.
송명희 시인을 아시지요? 뇌성마비를 앓으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말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그 분이 지은 시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나’라는 시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 시에 최덕신 선교사가 곡을 붙여 복음송으로도 애창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 중증 장애인에게 그렇게 기쁨과 감격의 삶을 살게 하겠습니까? ‘나’라는 시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 전도자로서 온갖 수모와 박해를 받아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삶이 절망적이었지만, 그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그 고난 속에서 이룩한 수많은 교회와 복음 사역들이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환경과 닥치는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근본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애가 3:33절에서,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성도에게 왜 이런 고난과 아픔과 같은 인생의 가시를 주셨겠습니까? 이 일에 대표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7-11절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육체의 질병을 고쳐주시기를 세 번 간구했습니다. 이 질병으로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했으며, 무엇보다 고통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고 하시며, 고쳐주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말씀을 기뻐하며 오히려 자기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게 이해되지 않는 환경이 주어지고, 고통스러운 삶이 있을 때는 나를 향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고, 능히 이길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더하십니다.
※ 이해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을 때는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본문 3절에서는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하였고, 6절에서는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힘들고, 환경이 어려울 때 차분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아버지!’ ‘주님!’이라는 부름만으로도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읽으십니다. 그래서 다윗도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강력한 능력의 도구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이며,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7:7-8절에서 분명하게 약속하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그래서 다윗도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라고 고백합니다. 기도는 확신 없이 중언부언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기도는 확신하는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5:15-16절에서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혹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비록 믿음의 기도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의 고통스러운 질병을 위해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기도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을 때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간절하게 아뢰십시오. 하나님께서 믿음대로 이루게 하시든지, 아니면 이기는 길과 능력을 주십니다. 미리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말고, 믿음으로 구하며 담대하게 나아가십시오.
다윗의 형편은 블레셋을 비롯한 다윗과 전쟁을 치렀던 나라들이 다윗을 찾고 있고, 안으로는 사울 왕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 하신다.’라는 사실을 알고는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이웃 나라들과 광야를 전전하면서 생명을 위해 도피해 다니고 있습니다. 이 삶이 얼마나 힘들었든지 자신의 처지를 본문 4-5절에서 이렇게 짧은 말로 표현합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이 표현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절박하고 위협적인 상황에 빠져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삶이 힘들었던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사도 바울’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23절 이하에서 자신이 당면한 환경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참으로 엄청난 고난의 삶입니다. 이처럼 다윗이나 사도 바울이나, 구약의 의인으로 소개된 노아, 다니엘, 욥,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이들의 삶도 만만찮게 힘든 삶이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도 성경의 의인들이나 바울과는 비견할 수 없지만, 일상적인 삶의 무게가 힘들게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의로운 사람들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게 하셨습니까?
베드로전서 4:1-2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사람은 생활이 넉넉하고 편하면, 엉뚱한 생각을 품게 됩니다. 솔직히 돈 많고, 시간 많고, 편하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좀 더 즐기고 싶고, 해외에도 가고 싶고, 더 좋은 집, 더 좋은 옷, 더 좋은 자동차 가지려 하겠지요. 이런 삶을 요약하면 ‘육신을 따르는 삶’입니다. 삶이 편하면 세상 즐거움을 찾아 죄를 범하게 되고, 삶이 힘들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환경과 상황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역대상 4:10절입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주님께서는 나의 생활뿐만 아니라, 내 삶의 필요까지 아십니다. 그리고 내가 당면한 환경과 상황도 아십니다. 때때로 내게 이해되지 않고 삶의 고통이 쌓일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아뢰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채우시는 은혜를 누리기시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