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감각이 살아 있는 생활
*** 감각이 살아 있는 생활 /에베소서 4:13-24
에베소서 4:13-24,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 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들어가는 말
군 생활을 할 때 알고 지냈던 통신병이 있었습니다. 통신병은 유. 무선 통신장비와 통신설비를 담당하는 병과입니다. 내가 알고 지낸 통신병은 박 상병이었는데, 우리 중대의 통신설비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전역하는 날 예비 사단에서 만났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박 상병은 ‘통신선로를 설치하다가 고압선을 건드려서 사고가 났다.’라고 했습니다. 고압 전기로 몸의 약한 부분이 파열되어 국군 통합병원에서 6개월을 치료하고, 이제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예비 사단에 왔던 것입니다. 다른 부분은 많이 회복되었는데 왼쪽 팔의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왼손은 사용할 수는 있지만, 감각이 없어서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감각이 있습니다. 육신이 느끼는 감각과 영혼이 느끼는 감각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영이 죽은 상태여서 영의 감각은 없습니다. 본문 18-19절에서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하셨는데, “감각 없는 자”가 바로 영이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로마서 8:1-2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하셨고, 15절에서는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입니다. 이런 우리는 영의 생명이 있는 사람이어서 당연하게도 영의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감각이 살아 있는 생활을 하겠습니까?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는 교회의 본질에 관하여 자세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았다면, 이제는 세상 욕망을 따르는 옛사람의 습성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의 습성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본문 23절의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는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영의 생명을 회복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의 감각이 살아 있는 생활을 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옛사람을 벗어버린 새사람입니다. 옛사람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의 세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뜻하고, 새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뜻합니다. 즉, 내 몸이 원하는 대로 살지 말고, 내 속사람인 영이 원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의 감각이 살아 있는 생활을 하려면, 마땅히 옛사람의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서 옛사람의 습관대로 살면, 그것은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거짓된 삶입니다. 갈라디아서 6:7-8절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이렇게 영의 감각이 살아 있도록 생활해야 함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영원한 영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 왜 영의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합니까?
김장하기 위하여 배추나 무를 소금에 절일 때, 무작정 오래 절이지는 않습니다.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깨끗한 물로 소금기를 씻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짜거나 싱겁게 되어 먹기에 부적합하게 되겠지요. 매실을 설탕에 절일 때도 적당한 기간이 있습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서 매실의 성분이 추출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시기를 넘기면, 신맛이 나거나 매실 씨앗의 독소로 좋은 매실청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은 적당한 시기가 있으며, 그 시기가 지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든지 변화되어야 합니다. 곤충이나 파충류 중에는 껍질을 벗는 종류들이 있습니다. 애벌레나 유충기 때부터 점점 성장하면서, 작아진 껍질을 벗어버리고 탈피나 우화를 하게 됩니다. 만일 작고 낡아진 껍질을 벗고 탈피나 우화를 해야 할 시기를 놓치면 성장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영의 감각이 살아 있어서 영적인 시기와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들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끝이 이를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기회 즉, 시기와 때를 적절하게 잡고 사용하기 위하여 영의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5:12-13절에서 말씀합니다.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신앙생활을 한 지 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철없는 말과 행동을 나타낸다면, 영이 성숙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감각과 판단이 미숙하여 많은 제약이 따르는 것처럼, 영적인 어린아이도 영의 감각이 둔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의 감각이 둔하여 영적인 어린아이에 머물면, 하나님의 은혜도 제한됩니다. 히브리서 5:14절입니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그래서 본문 15-16절에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 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영의 감각은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더욱 힘써야 합니다.
※ 어떻게 하면 영의 감각이 민감해질 수 있습니까?
역사가들은 조선이 망한 이유를 대원군의 부패, 민비의 간교함, 백성들의 무지함 때문이라고 평가합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와그너’ 교수는 그 이유를 한마디로 “관료나 국민 모두, 외부의 변화를 읽지 못해서 개혁의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정치나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도 삶의 감각에 따라서 판이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적인 감각이 생사화복(生死禍福)을 가르게 됩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1:16-1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이는, 예수께서 영적인 감각이 죽어서 올바르게 반응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16:2-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왜 예수께서 영적으로 무감각한 유대인들을 강하게 책망하셨겠습니까? 그 해답이 마태복음 16:5-11절에 있습니다.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것은, 믿음도 작았고, 깨닫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영의 감각이 민감하게 되려면, 믿음의 분량을 키우고 말씀을 깨닫도록 하나님을 향하여 영이 열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믿음의 분량이 커지고, 하나님 말씀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0:17절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믿음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들음으로써 시작되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4:45절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만나셔서 깨닫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즉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만 고집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 8:43-44상)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분량이 커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원하면, 말씀 듣기를 힘쓰며 깨닫고 분별하도록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1:13절에서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십니다.
※ 왜 이렇게 믿음의 분량을 키워야 합니까?
본문 14-16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 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신앙생활을 한 지 수년이 지나도 성장하지 못하고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칼이나 위험한 물체를 만지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어린아이에게 어려운 일이나 많은 돈을 맡기지도 않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린아이는 옳고 그름이 잘 분별 되지 않아서 온갖 사상에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처럼 믿음이 어리고 분별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중요한 일이나 많은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만일, 초등학생인 자녀가 부모님에게 ‘내가 지금 급하게 필요해서 그러는데 백만 원만 주세요.’라고 한다면, 선뜻 내주겠습니까? 하지만, 장성하여 직장에 다니는 자녀가 똑같이 말한다면, 돈이 있다면 선뜻 주겠지요. 영적으로도 이렇게 믿음의 분량이 커지고 분별력 있는 지혜를 가지도록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라고 하십니다. 우리 육체는 나이가 들수록 성장하고 분별력과 지혜도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11절에서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영혼도 신앙의 연륜을 따라 깊고 풍성하게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변하는데 우리의 신앙은 성장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에 머문다면, 탈피하지 못한 곤충이 죽음을 맞듯이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분량이 커지도록 말씀을 많이 읽고 들으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깨닫고, 시대를 깨닫도록 성령 충만과 분별력을 구하십시오. 그리하여 영의 감각이 살아 있는 생활로 하나님께 쓰임 받으며, 영과 육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