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기
***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기 / 마태복음 19:23-30
마태복음 19:23-30,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들어가는 말
말씀 제목이 도전적이지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 세상에서의 이치로는 불가능한 일인데, 지금 우리에게는 가능한 일입니다. 지나온 여름에는 온 세계가 기상 관측 사상 처음으로 겪는다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는 이런 날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기상 예보로는 이번 겨울은 라니냐 현상이 나타나서 혹한(酷寒)이 될 것 같다고 합니다. 이참에 우리도 본문 말씀처럼,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첨단의 역사를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참 세월은 빨라서 2024년도 10월 중순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걸음을 주님의 시각으로 한 번 돌아보면서 올해 남은 시간을 알차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많은 차이점 중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영이 있다는 것과 자신을 성찰(省察,Reflection)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성찰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이 한 일을 깊이 되돌아보는 일’을 뜻하는데, 주로 자신의 내면적 활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나온 일들을 깊이 돌아보면서 잘잘못에 대하여 반성하기도 하고 스스로 장려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애가 3:40-41절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이 말씀은 영적인 자기성찰을 의미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살펴볼 일은 먼저, 베드로가 주님께 질문한 내용입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이 말씀을 바꾸어, ‘나는 주님을 따르면서 무엇을 버렸으며, 주님께 무엇을 얻을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나는 먼저 된 사람으로서 뒤로 밀리지는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세상에서의 셈법이 아닙니다. 영원한 영의 생명을 좌우하는 생명이 걸린 일이어서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부자와 천국 비유’처럼 여겨집니다. 이는 세상적인 시각으로 볼 때 그렇게 보입니다. 본문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의 자세’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이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재물이 많은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이 청년을 다른 복음서에서는 ‘부자 청년 관원’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청년이 예수께 온 목적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하는가?’를 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청년에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라고 하셨습니다.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마 19:20)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여 오히려 영생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이 예수님과 부자 청년과의 대화의 주제는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삶’ 즉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이 이야기 다음이 바로 본문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라는 말씀에서의 부자는 세상적으로 재물을 많이 축적한 사람입니다. 본래의 주제는 ‘자기 버림, 자기 부정(否定)’입니다. 본문 29절의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자기 버림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16:24-25절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본문 말씀과 일치합니다. 이를 조금 바꾸어서 표현한다면 ‘주님이 인정하시는 부자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 29절에서 주님이 인정하시는 부자는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며, 이들은 ‘세상에서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는’ 사람입니다.
※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역사는 무엇을 말합니까?
독일의 신학자인 '찡크'는 현대인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로 평가했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장비를 준비하였고, 무엇보다 중요한 식수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길을 떠난 지 며칠 만에 식수가 바닥나 버렸습니다. 그는 기진하여 쓰러졌고, 마침내 실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한참 후, 그는 희미하게 눈을 떠보니 눈앞에 야자수가 보였고,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렸습니다. 그는 “이제 죽을 때가 되어 환각이 보이는구나.” 하고 애써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그는 ‘아! 이제 환청까지 들리니 정말 내가 죽게 되는구나.’ 하며 그 소리를 외면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사막의 베두인이 어린 아들과 함께 오아시스에 물을 길으러 왔다가 물가에서 입술이 말라붙어 죽은 청년을 발견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이상했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은 왜 물가에서 목말라 죽었을까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여기 죽어있는 젊은이가 바로 현대인이란다.”
‘오이시스 물가에서 목말라 죽은 현대인’ 이 비유적인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러분은 그 의미를 찾았습니까? 많은 것들을 곁에 두고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이상한 현대인들이지요.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노후대책 때문에 오늘을 행복도 잊은 채 힘겹게 사는 사람들. 벌어놓은 재산은 그저 쌓아놓기만 했지 정작 인간답게 써보지도 못하고 자식들 헛바람 들어 망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 관하여 누가복음 12:16-21절에서 어리석은 부자 비유로 깨우치십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부자가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늘귀로 들어가려는 낙타처럼, 자기 생각에 빠져 사는 세상의 물질적 부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역사는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께서 부자에 관하여 하신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제자들은 자기들은 부자 청년처럼 세상 물질을 따르지 않고 모든 소유를 버리고 주님을 따랐으니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본문 28-29절에서 파격적인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의 소유를 포기하는 것’에서 일어난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지금 여러분에게 지금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혹 부자 청년처럼, 세상의 것을 포기하지 못하여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지는 않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에서 가진 것이 많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많이 어렵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명예권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모두 포기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은 모두 버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앞서 읽었던 어리석은 부자 비유의 마지막 21절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첫째는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주어진 물질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지 못하고 자기 유익만을 위하여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고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돈 많고 재산이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며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할 줄 안다면, 그는 자기 부를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얼마 전, 연예계 뉴스에서 68년 연기 인생을 마무리하는 89세 이순재(신구) 연극인이 자기가 평생 번 400억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했습니다. 불교가에서도 ‘휴암’이라는 승려는 “이 복에 환장한 불교인들아, 너희들의 스승은 진리를 찾겠다고 그 왕좌와 그 왕궁을 버리고 고난을 감수하며 수난의 길을 걸었는데, 도대체 너희는 그 스승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스승 앞에서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라고 했습니다. 요즘 억대를 기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도 우상 수행자들도 이렇게 자기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더 부와 명예, 권력, 즐거움 등. 세상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58:4, 6-7절입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부자 청년처럼, 생활이 따르지 않는 영생 추구는 진리의 길이 아닙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려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불가능한 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소망한다면, 이사야 말씀처럼 내 뜻과 내 생각, 내 소유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본문 30절입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 말씀의 의미를 위하여 예수께서는 20장에서 ‘포도원 품꾼 비유’를 하십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요약하면 ‘예수님을 일찍 믿었고, 오랜 시간을 주님을 위하여 일했다고 할지라도, 믿은 지 오래지 않은 사람들과 같은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먼저 믿고 오랜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불합리하고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신앙생활의 기간이 길어도 하는 듯 마는 듯한 신앙의 사람과 짧은 신앙생활 기간이라도 열정과 헌신적 신앙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열정과 헌신의 사람에게 더 큰 상급을 주십니다. 이제 여러분의 노력과 재물과 열정과 헌신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쏟으셔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