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
***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 / 고린도후서 5:14-21
고린도후서 5:14-21,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들어가는 말
옛 속담에 ‘호사유피(虎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이라고 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이지요. ‘이름을 남긴다.’라는 것은 ‘그 사람의 지나온 자취’를 말합니다. 그런데, 미래 세계는 현대 기술의 발전으로 자취조차 남지 않는 ‘가상현실 세계’가 열린다고 합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은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여 사용자를 실제 세계에서 분리하여 가상 환경 안으로 이동시키는 기술입니다. 사용자는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손에는 VR 컨트롤러를 들고 가상 공간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주여행이나 깊은 바다 탐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도 있습니다. 증강현실은 현실 세계 위에 가상의 요소를 추가하여 보여주는 기술입니다. 사용자는 스마트폰, AR 안경 등을 통해 현실 세계를 보면서, 추가 정보나 가상의 물체를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아이들에게 유행했던 포켓몬스터가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 앞에 다가오는 세상은 진실이나 사실이 아닌, 허상과 가상의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전에는 허상과 가상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새로운 창조 안에서 삽니다. 이 사실을 본문 16-1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이 아닌,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새로운 세상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허상과 가상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을 포함하는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로 편을 갈라서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등. 이들에게 사도 바울은 서로 화목을 이루도록 이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하게 하시려고 세상에 오셨고, 자기 목숨까지 주셨음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도 화목을 이루어야 한다.’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죽음이 왔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생명의 빚을 진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본문 17-19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람들 사이에서 화목을 이루는 역할을 맡기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20-21절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룰 것을 명하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이 만들어야 하는 세상은 화목을 이루는 세상입니다.
※ 어떻게 화목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까?
먼저 화목한 세상을 만들어야 할 이유부터 봅시다. 첫째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8-19절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화목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두 번째는 영원한 생명이 달린 경고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14절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정말 심각한 경고입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분쟁과 분열, 다툼의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옛 속담에도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라고 했듯이, 그리스도인은 화평과 일치를 이루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9:50절입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손이 범죄하면 손을 찍어버리고, 발이나 눈도 범죄하게 하면 찍어버리고 빼버리라.’라고 하시는 43-48절까지의 죄에 대한 단호함을 가르치는 말씀에 대한 결론입니다. 그 교훈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영생을 얻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옥에 던져질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화목을 이루게 되면 지옥 형벌을 면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한다면, 화목의 직분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면, 화목한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까?
옛날이야기 하나 합니다.
이름난 스승이 있었습니다. 그 스승 밑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가르침을 받고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고 감흥이 돋은 한 제자가 말했습니다. “저것 봐. 나뭇가지가 움직이고 있군.”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제자가 “어허 무슨 소린가. 저건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게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고 있는 거야.”라며 딴죽을 걸었습니다. 결국, 두 제자는 서로 자기가 옳다고 입씨름을 하자, 주위에 있던 다른 제자들도 한 마디씩 참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뭇가지가 움직인다. 바람이 움직인다. …’ 급기야 제자들이 두 패로 나뉘어서 서로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스승이 나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라네.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네들 마음일세.”
이 이야기는 뜻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면 분열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말로는 화해와 일치, 소통을 말하지만, 실상은 작은 일상에서조차 자기 뜻을 고집하면서 서로 인정하고 양보하기를 어려워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친히 본을 보이시면서 가르치신 삶의 표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38-42절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정말이지, 지키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명령하신 우리 그리스도인의 표준적 삶입니다. 화목과 화평을 이루려면 이처럼 자기의 권리마저 포기하고 자기 이익까지도 양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항상 주님처럼 자신을 낮추어 섬김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화목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화목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 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을 통하여 이루어야 할 세상입니다.
골로새서 4:6절입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그리고 에베소서 4:29절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아주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마태복음 12:36-37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말은 영원한 생명뿐만 아니라 상급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살면서 모든 대화나 언어적인 표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향기가 될 수도 있고, 주님을 욕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도 만남이나 대화를 통하여 덕을 끼치고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가시덤불 같은 아픔도 줍니다. 한마디의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게도 합니다. 그래서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말로 어떻게 화목한 세상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을 인정해주고, 높여주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뭉클한 감동이 일어나게 합니다. 이러한 감동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올바르고 곧은 말, 정직하고 진실한 말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비난이나 업신여기는 듯 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잠언 25:15절에서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부드러운 표현으로도 얼마든지 올바르고 정직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아무리 좋은 말도 목소리를 높여서 비난 조로 말하면, 상대방은 불쾌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잠언 27:14절에서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말일지라도, 상황이나 어감에 따라서 불쾌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말할 때도, 여러 환경과 상황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할 때 소금으로 맛을 내듯이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원수까지도 화목하게 하십니다. 잠언 16:7절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이처럼, 화목을 이루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과의 화목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본문 18-19절은 사람과의 화목, 20-21절은 하나님과의 화목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18-19절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직분대로 세상에서 사람들과 화평하며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과의 화목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순종함으로서 이루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허상과 가상으로 가득한 세상에 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만들어야 할 세상은,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화목한 세상입니다. 화목과 화평을 이루려면 자기의 권리마저 포기하고 자기 이익까지도 양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항상 주님처럼 자신을 낮추어 섬김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화목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화목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성탄의 계절에 예수님의 오심을 기리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 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을 통하여 이루어야 할 세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살면서 모든 대화나 언어적인 표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향기가 될 수도 있고, 주님을 욕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소금으로 맛을 내듯이 하라.’라고 하심처럼, 말할 때도 여러 환경과 상황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2024년 성탄의 계절에 우리 대복교회가 세상에서 화목과 화평을 이루며, 맛을 내는 교회로 일어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며, 우리의 삶에도 주님으로 인한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성탄의 계절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